[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사람 냄새 가득했던 100년 전 졸업식 풍경

2022. 3. 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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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코로나 장기화로 '비대면 졸업식' 아쉬움 100년전엔 학교별 졸업식 소개 기사 넘쳐 여학교부터 경찰학교·기생학교 졸업식까지

각 학교의 졸업식이 끝났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예년과 같이 떠들썩하고 신나는 졸업식은 없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 아쉬운 '비대면 졸업식'이었다. 100년 전 졸업식은 어떠했을까. '사람 냄새' 가득했던 그 때의 졸업식을 찾아 여행을 떠나본다.

1922년 3월 9일자 매일신보에 선린상업학교 졸업식 기사가 실려있다. "용산 선린상업학교의 졸업식은 어제 8일 오후 2시부터 동교 강당에서 거행하였는바, 온화한 봄바람, 따뜻한 날씨에 일장기는 교문에 펄펄 날린다. (중략) 총독이 임석할 예정이었으나 마침 부재 중이므로 시바타(柴田) 학무국장이 대리로 임석한 후, 타시로(田代) 교장의 개식사(辭)로 식이 열렸다. (중략) 이번에 졸업한 제군의 수는 합계 152명인바..."

졸업 시즌이 되면 신문 지면은 이렇게 졸업식을 소개하는 기사들로 넘쳐났다. "사립 경신학교 제15회 졸업식은 어제 23일 오후 2시부터 동교 내에서 거행되었는데, 졸업생은 12명이요, 그중 우등 졸업생은 이준철(李駿喆) 군이요, 내빈은 약 100여명이 참석하였더라(1921년 3월 26일자 매일신보)." "사립 휘문고등보통학교 제3회 졸업식은 어제 19일 오전 10시부터 동교 대강당에서 거행되었는 바, 졸업생 35명에 대한 졸업증서 수여가 있었고, 우등 졸업생은 윤보영(尹普榮), 전경석(全景錫) 등 두 명이라더라(1931년 3월 20일자 매일신보)." "사립 연희(延禧)전문학교 제1회 졸업식은, 어제 23일 오전 10시부터 동교 강당에서 거행하였는바, 어비신(魚丕信; Oliver R. Avison) 교장의 훈사(訓辭)와 졸업생 답사 등이 있은 후 식을 종료하였는데, 내빈은 동교 각 이사를 위시하여 약 20여명이 출석하였고, 이번 졸업생은 농과에 3명뿐이라더라(1921년 3월 25일자 매일신보)."

여자 학교 졸업식도 빠짐없이 실렸다. "시내 수송동에 있는 사립 숙명고등보통학교 제11회 졸업과 동교 부속 보통학교 제9회 졸업식이 오후 2시에 열렸는데, 본과의 금년 졸업생은 14명, 보통학교 졸업생은 42명이더라(1921년 3월 25일자 매일신보)." "사립 배화여학교 고등과 제10회, 보통과 제9회 졸업식은, 그제 23일 오후 8시부터 종교예배당에서 거행하였는데, 고등과 졸업생은 9명이며, 그날 밤에는 일반 참관자가 무려 천여 명에 달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더라(1921년 3월 26일자 매일신보)."

일반 학교 뿐 아니라 경찰학교, 권번(券番)학교, 잠업(蠶業)학교, 부기강습원 등의 졸업식 기사도 눈길을 끈다. 1922년 1월 7일자 '1천여명의 졸업 경관'이란 제목의 매일신보 기사다. "시내 광화문통에 있는 조선총독부 경관강습소에는 본과는 1년이요, 순사 강습생은 3개월임에 1년에 1천여명의 졸업생을 전선(全鮮) 각 지와 국경 방면으로 내보내며, 또 한편으로 신입생을 수용하기 위하여 매우 확장하는 모양인데, 타카하시(高橋) 소장은 말하되, '경관을 많이 양성하는 중이나 혹은 병으로 인하여 혹은 가사(家事)의 형편에 의하여 혹은 살해(殺害)됨에 의하여 결원(缺員)이 많이 생기는 까닭에 그만한 인원을 보충하지 아니치 못할 형편인데, 실로 경관 양성이 매우 곤란한 점이 많다'고 한다."

1920년 12월 14일자 조선일보에는 '대동권번 기생 졸업식'이란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경성부내 청진동 대동권번은 우창억, 백용진 두 사람의 열심 성의로 권번이 흥왕(興旺)함은 물론이요 가곡과 풍유를 졸한 기생이 다수 있기로 12월 15일에 대동권번에서 졸업한 기생들 매인 10원씩 지불하여 졸업식을 거행한다는데, 이화선, 양금은, 변향심, 서상원 등이 우등으로 졸업한다더라."

입학 당시와 비교해 졸업 비율을 다룬 기사도 보인다. 1929년 3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천신만고 입학을 해도, 졸업은 근 4할'이란 제목으로 "경성 시내 8개 고등보통학교의 입학 당시 학생 수는 1350명이나 졸업생 수는 575명으로 약 42%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같은 기간 일본 학생의 졸업생 비율이 약 70%인 것 보면, 조선 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했던 것이 드러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졸업을 하면 스승을 모시고 사은회(謝恩會)를 했던 모양이다. 이 사은회가 사회의 폐단이 되어간다고 지적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1922년 2월 3일자 동아일보기사다. "이번 남대문 밖 어떤 상업학교 졸업생이 주최한 사은회의 회비가 10원이나 된다 하는 것은 너무나 태과(太過; 너무 지나침)한 듯 합디다. 사은회라는 것은 그것이 사제 간에 정의(情誼)를 표하기 위함이요, 좋은 음식이나 이목(耳目)의 찬란한 것으로만 잠시 흥취(興趣)를 얻으려는 것이 아님은 여러 학생도 양해하는 바가 아니겠소. 아직도 학생 신분으로서 당당한 신사 연회의 회비보다 더 많이 쓰는 것은 너무나 과하다 하겠습디다. 이런 것이 잘못되면 또한 폐단이 될지도 모르지요."

그런가 하면 졸업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기부금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1921년 3월 26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배재(培材) 졸업생 일동이 사금(謝金) 2천원 기부'라는 제목의 기사다. "시내 정동 배재고등보통학교의 금년 졸업생 35명은 4년간 공부를 잘하여 비로소 값이 있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는 동시에, 감사의 예를 표하는 뜻으로 돈 2천원을 기부하기로 졸업식 당일에 그와 같은 뜻을 말하였는데, 가장 많이 낸 학생은 600원인바, 그 외에는 모두 50원 이상 자기 힘 자라는 대로 내기로 한 것이더라."

졸업(卒業)의 '졸(卒)'자는 마친다는 뜻도 있지만 '군사(軍士)' 또는 '죽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교육의 한 과정을 마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남을 죽일 수 있는 군사력을 하나 더 갖게 된다는 말로도 들린다. 또 '졸'자에는 '하인', '심부름꾼'이란 의미도 있다. 즉, 남을 죽이는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심부름꾼이 되라는 것이다. 졸업식이 이런 가르침을 받고 나오는 자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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