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나이 땐 뭘 해도 안 하는 거보다 이득이야"[천현우의 쇳밥이웃](5)

2022. 3. 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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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복병처럼 꼭꼭 숨어 있던 추위가 야습을 감행한 지난해 11월. 마침내 은인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경기도 고양시까지 막노동하러 갔던 ‘포터 아저씨’가 8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경남 창원으로 귀환했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인터뷰 좀 따겠다고 하니 제일 먼저 “국가의 충견께서 늙고 병든 노인네 취조해 무엇 하려 그러시오”라는 대답부터 돌아왔다. 변함없이 어마어마한 입담이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오미크론의 먹구름이 덮치기 직전, 전국 유흥주점 밀집도 1위에 빛나는 창원 상남동의 밤은 복닥복닥했다. 일관성 없는 조명들, 한 건물에 번잡스레 들러붙은 간판, 요란한 음악을 쿵작대며 배회하는 유흥주점 광고차 등 화려하되 알맹이 없는 풍경은 적당한 한산함에 익숙한 마산 사람들에겐 그다지 익숙지도 편안치도 않았다. 마음속 불편함은 반가운 모습과 마주하자 싹 사라졌다. 포터 아저씨는 7년 동안 변한 게 없었다. 듬성듬성한 머리숱, 깎고 일주일쯤 방치한 너저분한 수염, 패딩에 ‘추리닝’ 하나 덜렁 입고 아디다스 슬리퍼를 끌고 온 그 모습이 너무도 반가웠다. 감격이 과했던 나머지 괜히 악수를 청하자 아저씨는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남세스럽게 앵길라 그래. 양복쟁이들한테 이상한 거만 배워가지구. 얼른 술이나 빨러 가자. 안 그래도 오랫동안 알코올로 목구멍 소독을 못 했거등. 담배 찌꺼기 한 무데기 쌓였겠다.”

근처 아무 고깃집에나 들어갔다. 삼겹살이 미처 나오기도 전, 파절이와 메추리알을 안주 삼아 건배했다. 뭐하고 지냈느냐는 물음에 아저씨는 “별거 있나. 그놈의 전염병 때문에 일감 없어서 전국팔도를 쏘다녔지.” 건조하게 대답했다. 인터뷰 뽑을 건데 재밌는 얘기 좀 하라고 닦달하니 손을 휘휘 저었다. “원래 늙다리들 삶은 시시한 거야. 딴짓거리하고 싶어도 못 하지. 그래서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거고.” 신선 같은 소리나 하며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쉽지 않은 인터뷰가 될 듯했다. 바삐 술잔을 채우며 과거 얘기로 밑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인연

2015년 6월. 빚더미에 깔린 내 사정을 어렴풋이 알게 된 삼촌 한분이 주말 조경 일당직을 알선해줬다. 이때 파트너로 포터 아저씨를 소개해 줬는데 토요일 아침마다 날 픽업하러 오곤 했다. 워낙 말주변이 좋은 양반이라 금방 친해졌고, 내 진심을 곧잘 털어놓곤 했다. 한번은 편입 실패와 학벌 콤플렉스에 대해 횡설수설 떠들었는데, 아저씨는 의외로 진지한 표정으로 듣더니 말했다.

“야, 현우야. 우리 없으면 누가 다리 만들어 주냐? 우리뿐만 아냐. 청소쟁이, 간호사, 택배, 배달, 노가다 이런 사람들이 하루라도 일 안 하면 난리 나. 저기 서울대 나온 새끼들이 뭐하는 줄 알어? 서류 존나 어렵게 꼬아놓고, 돈으로 돈 따먹기만 하고, 땅덩어리로 장난질이나 치지. 그런 새끼들보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 기죽지 마.”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놀라웠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딜 가나 얼마 안 되는 승자들이, 패자가 응당 가질 몫까지 몽땅 빨아들이는 현실만 알아갈 뿐이었다. 스물다섯의 나는 일찌감치 사회에 투항했다. 승자독식에 의문을 느끼고 저항할수록 나의 초라함만 되새길 뿐이란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명문대는 공부 많이 했으니 유능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전문대는 공부 안 했으니 무능해서 못난 일만 한다. 그리 생각하면 세상만사가 일목요연 질서정연해졌다. 체념하면 모든 게 편할 텐데, 오히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라니. 확신에 찬 그 목소리가 참 멋졌다.

포터 아저씨는 토요일 아침에 날 픽업하러 왔다. 차 안에서부터 일하는 내내 대화를 했다. 일 끝나고 나면 늘 술을 마셨다. 국밥집에서 소주 한잔 걸치기도 하고, 회 한사발 사서 아저씨 집에서 마시기도 했다. 그땐 언제나 집안일 끝마친 형수님이 선반에서 화요나 안동소주 같은 비싼 술을 꺼내주곤 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쯤 불콰해진 낯으로 물었다. “형수님, 대체 이 형하고 와 결혼했답니까?” 형수님은 박장대소하며 서랍에서 사진첩을 꺼내 보여줬다. 색 바랜 사진엔 장발 미남이 청재킷 차림으로 통기타를 만지고 있었다. 아랫목에 있는 점 아니었으면 아저씨임을 못 알아볼 뻔했다.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은 그의 한마디

“웬수지 웬수라. 놈팽인 거 모르고 상판대기 보고 결혼했드만.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애새끼가 되드라니깐.”

형수님은 농담 속에 신세한탄을 섞어 말했다. 포터 아저씨는 원래 경남은행 본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IMF 여파로 2001년 해가 뜨자마자 정리해고 당해 실업자가 됐다. 간신히 마산수협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대학생 때의 인연이 닿아 결혼도 했지만, 아저씨는 원래부터 누구 밑에서 일하는 체질이 아니었다. 뜬금없이 마흔 줄에 아파트 대출금 다 갚으면 노가다를 하겠다고 선언했단다. 정해진 날 매일매일 일어나 출근하는 게 너무 싫었다나. 하도 간절하게 빌어 승낙해줬더니 오히려 지금 더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마흔 중반 돼서야 체질에 맞는 일을 찾은 셈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전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공부는 괴로웠고 일도 손에 맞지 않았다. 편입을 생각했지만 그마저 더 잘 알고 잘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전문대 졸업이란 콤플렉스 때문 아니었던가. 갑자기 든 생각에 문득 남은 회를 쓸어 담던 아저씨에게 물었다.

“용접은 어때예? 뭐 벌이라든가, 일자리라든가….”

“용접? 재밌지. 돈도 되고. 함 해봐. 니 나이 땐 뭘 해도 안 하는 거보다 이득이야.”

용접은 어디서 어떻게 배웠냐고 물으니, 건설 막노동하다가 알게 됐다고 했다. 자기는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어서 사비로 학원 끊었지만 내겐 국비 지원받는 게 나을 거란 팁도 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저녁 11시, 안주도 술도 다 떨어졌다. 세월호 당시의 혼란을 이야기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죽었는데 괴로워하는 내가 정상이냐 물었다. 아저씨는 조용히 고갯방아만 찧었다. 이어 선장을 욕하도록 유도하는 언론,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정부의 모습 속에서 대체 어떤 게 진실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저씨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10권 가까이 책을 가져왔다. 제목보다 저자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박성호, 유시민, 김어준, 김용민, 이동형…. 뭐하는 양반들인지 몰라 그저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아저씨는 친절하게 쇼핑백에 책을 담아 건넸다.

“정치를 몰라서 그래. 물론 정치를 몰라도 사는 데 아무 문제없어. 모르면 대통령이랑 국회의원 욕하면 되거든. 그런데 그럼 신문이랑 뉴스 볼 때마다 답답하지. 정치를 모르니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잖아. 만사 관심 끄고 살 생각 아니면 정치를 알아야 해.”

20대 중반의 내 인생을 통째 바꿔놓은 (아저씨의) 대사였다.

천현우 용접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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