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말띠 그녀들, 투표하라

한겨레 2022. 3. 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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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다음날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성평등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상읽기] 우석진|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남녀 성비라는 것이 있다. 인구 구조를 크게 남녀별로 구분하는 지표로서 여성 100명당 남성의 수를 의미한다. 2020년 시행된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내국인의 남녀 성비는 99.3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약간 적은 편이다. 서울특별시의 경우에는 94.4로 여성이 좀 더 많고, 울산은 105.6으로 남녀 성비가 가장 높은 편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출생 성비라는 것도 있다. 1년 동안 태어난 여아 100명당 남아의 수를 나타낸 것이다. 인구총조사를 기준으로 보면 0~4살의 출생 성비는 105.3 정도가 된다. 105라는 숫자는 이른바 자연 성비이다. 부모가 자녀의 성별에 대한 특별한 선호 없이 출산했을 때 관측되는 성비라는 의미에서 자연 성비라고 불린다.

출생 성비는 각 나라의 사회·문화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남아 선호 성향이다. 초음파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대체로 자연 성비가 유지되었다. 1970년대 이후 태아 성감별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출생 성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특히 첫째 자녀의 성비보다 둘째, 셋째가 될수록 출생 성비는 크게 증가하였다. 남아 선호에 따라 선택적 출산이 일어났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1990년대는 이러한 전통적 남아 선호 현상 외에도 두 가지 사건이 출생 성비에 영향을 주었다. 하나는 1990년이 경오년 백말띠라는 사실이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1990년은 백말띠의 해라고 해서 이때 태어나는 여아는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이 나돌았다. 그러다 보니 선택적 출산이 진행되었거나, 출생 신고를 좀 더 일찍 혹은 좀 더 늦게 하는 일들이 있었다. 1989년의 출생 성비는 111.8, 1991년의 출생 성비는 112.4인 데 반해, 1990년의 출생 성비는 116.5까지 올라가게 된다. 특히 1990년 첫째 자녀의 출생 성비가 108.5인 데 반해, 셋째 자녀의 출생 성비는 189.5까지 되었다. 이렇게 높은 출생 성비는 1990년 이전에도, 1990년 이후에도 관측된 바 없다. 결과적으로 애꿎은 여아들이 근거 없는 소문에 의해 사라진 것이다.

출생 성비에 영향을 준 두번째 사건은 아이엠에프 외환위기이다. 1997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외환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외국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되면서 외환 보유고가 바닥났다. 정부는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기는 했지만 외환위기의 결과는 참혹했다. 단기간에 대규모의 기업 파산, 실직 등이 발생했다. 경제위기로 인해 단기 부채의 연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실질성장률은 -5.5%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남아 선호와 결합되면서 선택 출산으로 연결되었다. 1997년의 출생 성비는 108.2, 1999년의 출생 성비는 109.5였는데, 1998년의 성비는 이보다 높은 110.1이었다. 규모로 보면 1990년 백말띠 에피소드에 비해 차이가 작기는 하다. 하지만 출산 결정이 경제위기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이수형 서울대 교수의 ‘소녀와 소년: 경제위기, 출산율, 출산 결과’(<응용 계량경제학 저널>)라는 논문에 잘 분석되어 있다. 이 연구에서는 엄마가 임신 중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여아의 출생이 2% 감소하였고, 특히 두 자녀 이상일 때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90년대에 태어난 여아들은 지금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에 이르는 이대녀가 되어 있다. 20~34살의 남녀 성비는 112.3으로 어느 연령대보다도 높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지탱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수의 이대남들은 지난 보궐선거에서 유의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 과정에서 각 정당은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병사 봉급 월 200만원 보장’ 공약이다.

상대적으로 이대녀에 대한 공약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수가 적은 90년대 출생 여성들은 투표율로써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보통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의 투표율보다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열세를 극복하려면 좀 더 높은 투표율이 절실하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백말띠 그녀들의 실력 행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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