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연 묻고 뜯긴 A4용지만..씁쓸한 3·1운동 기념 버스정류장

조다운 2022. 2. 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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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가 시위한 곳인가. 설명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네요. 유관순 활동 터라는 정류장 이름도 처음 알았고요."

2019년 서울시가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자 그가 생전에 다녔던 이화학당 인근에 있는 이 정류장에 '유관순 활동 터'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별다른 설명이나 표식이 없는 정류장에서 유관순을 기억하는 시민은 많지 않아 보였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서울시의 '버스정류장·독립운동가 활동 터 병기 사업'이 별다른 진전 없이 3년째 공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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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2019년 3·1운동 100주년 맞아 정류장에 독립운동가 병기
설명문 훼손됐거나 없는 곳도 많아..3·1운동 알리려는 청사진 퇴색
28일 오전 찾은 '혜화동로터리, 여운형 활동 터' 정류장 [촬영 김준태 수습기자]

(서울=연합뉴스) 홍규빈 조다운 기자 = "유관순 열사가 시위한 곳인가…. 설명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네요. 유관순 활동 터라는 정류장 이름도 처음 알았고요."

28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경찰서·농협은행, 유관순 활동 터'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던 정미란(34)씨는 이곳이 왜 유관순 활동 터인지 알고 있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2019년 서울시가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자 그가 생전에 다녔던 이화학당 인근에 있는 이 정류장에 '유관순 활동 터'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별다른 설명이나 표식이 없는 정류장에서 유관순을 기억하는 시민은 많지 않아 보였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서울시의 '버스정류장·독립운동가 활동 터 병기 사업'이 별다른 진전 없이 3년째 공전하고 있다.

자세한 설명 없이 정류장에 독립운동가 이름만 붙이거나, '활동 터'처럼 뜻이 모호한 단어를 넣다 보니 "독립운동을 기릴 거라면 제대로 하자"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오전 찾은 '유관순 활동 터' 정류장. 설명문이 없는 모습이다. [촬영 오지은 수습기자]

2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2019년 2월부터 시내버스 정류장 12곳, 마을버스 정류장 3곳 등 총 15개 버스 정류장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했다.

'남대문시장 앞' 정류장에는 '이회영 활동 터', '효창공원 삼거리'에는 '윤봉길 의사 등 묘역' 등의 이름이 붙었고, 인근에는 장소의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문이 부착됐다. 서울시는 2019년에 이 같은 정류장을 100개소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찾아간 현장은 서울시의 청사진과는 달랐다. A4용지 크기의 안내문은 먼지와 훼손 흔적으로 읽기 어려웠고, 이마저도 사라진 곳이 많았다.

1919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서울역 버스환승센터·강우규 의거 터' 정류장의 안내문도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A4용지 크기의 안내문은 매연과 스티커 자국으로 훼손돼 있었고, 그마저도 7개 승강장 중 한 곳에 어지러이 다른 유인물과 붙어있었다.

승강장에 있던 김익휘(26)씨는 "설명문을 알아보기가 힘들다"며 "다른 정류장에는 크게 광고물을 붙여놓지 않나. 명색이 의거 터인데 설명문이 관리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찾아간 '서울역버스환승센터, 강우규 의거 터' 정류장 [촬영 서대연 수습기자]

마을버스 정류장인 '인사동들머리, 3·1독립선언터', '효제초교·연동교회, 김마리아 활동 터', '북촌한옥마을입구, 정세권 활동 터'에는 설명문조차 없었다.

활동 터라는 명칭 자체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거나 모호해 독립운동을 기리는 이름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여운형 활동 터'라는 이름이 병기된 혜화동로터리 정류장은 여운형이 1947년 7월 극우성향 청년에게 암살당한 곳인데, 생전 여운형이 활동한 종로구 계동 자택 등 실제 활동지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시민들이 독립운동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사업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혜화동로터리의 여운형 활동 터 병기를 두고 "부적절하다"며 "표지판 내용을 바꿔야 한다. 여운형이 3·1운동을 실질적으로 끌어낸 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정류장들을 두고는 "3·1운동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3·1운동을 멀게 느낄 것"이라며 "정확한 정보를 표기해 시민들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 경위와 향후 계획과 관련된 질문에 "담당 부서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28일 오전 찾은 한성대학교, 조소앙 활동 터 정류장. [촬영 김준태 수습기자]

alllu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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