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셰익스피어도 못 한 일? 난 인간 욕망 파헤치는 리얼리스트"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2022. 2.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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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윤덕 기자의 사람人]
'결혼작사 이혼작곡 3'로 돌아온 '문제적 작가' 임성한 단독인터뷰

“셰익스피어도 못 한 일!”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시즌2’에 달린 시청자 비평이다. ‘셰익스피어도 못 한 일’이란, 불륜을 들킨 남편과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사이에 치열하게 오가는 언쟁을 70분간 보여준 파격의 2인극(12화)이다. 어떤 등장인물도 없이 오로지 두 남녀가 격분해 치고받는 말·말·말은 작가 임성한이라 가능했다. “아무리 쿨한 부부도 10분 만에 싸우고 이혼 서류에 도장 찍는 경우는 없으니까. 변명, 궤변, 절규, 분노를 반복하는 부부싸움의 리얼리티를 보여준 것뿐이다.”

임성한이 돌아왔다. 26일 밤 9시, ‘결혼작사 이혼작곡-시즌3’의 첫화가 방송된다. 시청률 17%로 치솟은 시즌2 마지막회에 충격적 결말을 던져 놓고 사라졌던 ‘문제적 작가’를 지난 15일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만났다.

모자, 코트, 벨벳 원피스까지 작고 마른 몸을 온통 블랙으로 휘감고 나타난 그는 딴 세상 여인 같았다. ‘은하철도999’ 주인공 메텔 같다고 하자, “오늘은 수수하게 입은 편”이라고 했다. 새빨간 스웨이드 롱부츠가 그제야 눈에 띄었다. 사진 촬영은 거절했다. “백화점 화장실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귀신같이 알아보는 팬들 때문에!”

물방울 무늬 장갑을 벗으며 마주 앉았을 땐 이런 양해를 구했다. “나는 글을 쓰면서 기가 다 손으로 갔다. 그래서 입으로는 잘 안 터진다. 적확한 표현이 생각 안 나 대답이 늦을 수도 있으니 이해하시라.” 직접 끓여 보온병에 휴대하고 다니는 죽염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그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자, 이제 물으세요!”

'결혼작사이혼작곡' 시즌3 포스터
임성한의 '결혼작사 이혼작곡'에는 완벽한 선역도, 완벽한 악역도 없다. 시즌3에서는 불륜한 남편과 갈라선 세 명의 여자 주인공들이 한 명의 남자를 두고 구애 경쟁을 펼친다. 왼쪽부터 이시은 역의 전수경, 부혜령 역의 이가령, 사피영 역의 박주미, 서반 역의 문성호. 오른쪽 일러스트는 사진 촬영을 거절한 임성한 작가를 인터뷰 당일 입고 온 의상을 바탕으로 삽화가 유현호씨가 그린 것이다. /TV조선, 일러스트=유현호

◇충격의 피날레… “그게 꿈이라면 사기!”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라디오 방송사에서 일하는 PD 사피영, DJ 부혜령, 작가 이시은 세 여자가 남편들 불륜으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그 흔한 불륜 소재를 임성한은 완벽한 선역도, 완벽한 악역도 없는 캐릭터들로 그려내며 인간 욕망과 본성을 파헤치는 웰메이드 극으로 승격시켰다. 문제는 ‘시즌2’ 마지막회. 예상을 빗나간 커플들의 결합으로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황당한 결혼식 장면으로 ‘시즌3’를 예고했다. 꿈이다, 상상이다, 해석이 분분하다.

“그게 상상이면 상도덕에 어긋나는 것이다. 시청자에게 사기 치는 것 아닌가.”

-시즌3는 첫 회부터 엄청난 반전이 펼쳐진다던데.

“음…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편집하던 스태프들이 가슴을 ‘심쿵’하게 만든 멜로 장면이 있다고는 하더라. 힐링이 될 것이다.”

-시즌2에서 세 여자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급부상한 서반의 대반전도 있다던데. ‘SF전자’ 회사 장남이라 유튜버들 사이 ‘서반은 로봇’이라는 엉뚱한 예측도 나오더라.

“하하! 스토리에도, 연기에도 반전은 있다. 옛날 어느 댓글 중에 ‘임성한은 실성한’이라고 적혀 있어 박장대소한 적 있다. 댓글들 보며 놀랄 때 많다. 시청자가 (대본을) 써도 되겠다 싶을 만큼(웃음).”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6년간 쉬었고, 드라마 트렌드도 변했는데 ‘결사곡’은 17% 시청률을 올리며 대히트했다. 비결이 뭘까.

“쉬는 동안에도 책 읽고 잘 되는 드라마는 국내외 할 것 없이 다 봤다. ‘D.P.’ ‘오징어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다 봤다. 현업에 있는 몇몇은 작품들이 별로다 하던데 대중의 눈높이를 모르는 것이다. ‘오겜’의 황동혁 감독은 내공이 굉장했고, ‘지옥’의 연상호 감독에겐 천재 끼가 있구나, 했다. 좀비를 학교에 접목한 ‘지우학’도 ‘킹덤’의 좀비보다 새로웠다.”

-대중의 눈높이를 정확히 읽으시나.

“물론이다. 내가 재미있으면 터지고 재미없으면 망한다.”

-‘결사곡’은 마지막 파이널 컷까지 관여한다 들었다.

“채널 돌아가게 해놓은 편집은 되돌려놔야 하니까. 군더더기는 쳐내고, 못마땅한 신(scene)은 다시 찍게 한다.”

-불륜은 올드한 소재인데, 이삼십대도 본다.

“나는 30대만 보고, 50대만 보고, 특정 성향 가진 사람들만 보는 드라마는 만들지 않는다. 젊은이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재미있어 할 교집합을 찾는 거지. 어떤 작가들은 자기 하고 싶은 소재만 다루면서 시청률 2~3% 나와도 마니아 드라마라며 만족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자기 돈으로 제작하는 거면 상관없지만, 남의 돈으로 만드는 거면 여러 사람에게 최고의 즐거움과 만족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내놔야 한다.”

◇“톱 배우들은 다 파먹은 김칫독”

-‘결사곡’은 과거 임성한 작품들과 달랐다는 평을 받는다.

“일일극이 아니라 주말극이어서 퀄리티 높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왜 주로 일일극을 쓰셨나.

“방송사가 원해서. 일일극은 9시 뉴스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일일극만 하다가는 내가 죽게 생겼더라. 최악의 대본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오고. 살기 위해 절필을 선언했다.”

-파격의 2인극에서 ‘결사곡’ 최고의 명대사가 나온다. 신유신의 ‘내 몸 가지고 내 맘대로 좀 했어’.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등장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를 능가해 전국의 조강지처들을 분노하게 했다.

“어릴 때 어른들이 수군대는 얘길 들었다. 동네에 살던 해군 장교가 대학까지 나온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그 집 가정부와 바람이 났는데 이혼은 안 해준다는…. 바람은 피웠지만 가정은 지키고 싶은 남자들 이기심이랄까. 아미와 바람은 피웠으나 완벽한 아내 사피영을 포기할 순 없는 거지. 그 인물의 입장에서 극도로 몰입하다 보면 그런 대사가 떠오른다.”

-판사현 역의 성훈, 신유신 역의 이태곤, 김동미 역의 김보연씨가 시즌3에선 하차한다.

“나는 내 손으로 감독이나 배우를 교체한 적이 없다. 더 좋은 작품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을 막는 건 경우가 아니다.”

-신유신 역의 지영산, 판사현 역의 강신효는 생소한 얼굴인데.

“최대한 배역에 맞는 배우들을 찾아냈다. 서반을 연기한 문성호만 해도 ‘AI’라는 별명처럼 초반 연기는 굉장히 어색했다. 지금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었고 일취월장하는 중이다.”

-임성한 대본에 배우는 누가 되든 문제 되지 않는다는 뜻일까.

“예전에 연기의 신으로 불린 중견 배우가 우리 드라마에 와서 초반 2~3주를 엄청 고생했다. 연기파 배우인데도 캐릭터가 바뀌고 센 에피소드가 많으니 적응을 못 하더라. 하물며 신인들이야.”

-임성한은 신인을 발굴하는 매의 눈을 가졌다고 한다.

“톱 배우들은 다 파먹은 김칫독이다. 어른들 표현에 따르면 이미 다 불려먹어서 더 이상 나올 기(氣)가 없는. 아직 안 풀린 사람들은 갖고 있는 기가 많다. 그걸 잘 풀어내면 된다.”

-말 잘 듣는 배우만 고른다는 얘기도 있더라.

“극중 인물과 배우가 맞는지 여부는 작가만이 알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PD나 제작진은 모르지 않나. 예전에 어떤 배우가 감독과 방송사 국장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캐스팅 압력이 들어오더라. 전화기를 꺼버렸다.”

-작가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늘이시여’의 자경이 역을 캐스팅 할 때 감독과 제작진은 오디션에 참가한 김아중을 강력하게 밀었다. 그런데 난 윤정희를 택했다. 초반부터 원성이 자자했다. 발음도 이상하고 연기도 나무 토막처럼 한다고. 그래도 기다렸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절절한 자경이로 빙의하더라. 드라마 끝나고 나서 감독이 ‘선생님이 옳았다’고 하더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난데, 왜 자꾸 내 에너지를 빼는지 모르겠다.”

-뜻대로 안 되는 배우도 있지 않을까?

“내가 스타로 만든 한 배우는 그다음 작품에선 인물에 빙의하지 않고 적당히 시늉만 하길래 더 이상 캐스팅하지 않겠다 공언했다. 대본에 지문을 한가득 써줘도 8 정도밖에 안 하더라. 그러면 나와는 끝이다. 반대로 ‘결사곡’에서 사피영을 맡은 박주미는 연기에 완전히 물이 올랐더라. 내 드라마 한번 찍으면 ‘연기의 신’이 된다(웃음).”

-예고편을 보니 신유신이 아내와 애인에게 같이 살자고 한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상상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여자들은 안 그런가? 남편도 사랑하지만 젊고 멋진 남자 배우들 보면 한번 보고 싶고, 데이트 해보고 싶다는 생각 안 하나?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그린 것이다.”

-‘결사곡’ 세 커플의 전쟁을 보면 가부장과 페미니즘이 격돌하는 양상으로도 읽힌다.

“나는 ‘온달과 평강공주’주의다. 남자를 여자와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면 해법이 없다. 대여섯 살 먹은 애라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가야지(웃음).”

-불륜녀가 본처한테 “언니 동생처럼 지내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머리채 잡고 싸우는 건 너무 옛날 방식이니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지만 여자끼리 뭉칠 수도 있는 세상이고. 이시은 남편을 빼앗는 임가빈은 외동딸로 큰 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황이라 언니처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사곡 3’ 또한 임성한표 권선징악으로 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인생은 닦은 대로 가고 지은 죄대로 받는다. 서울대 나와도 안 풀리는 경우 많이 봤다. 착한 사람은 결국 끝이 좋고 자식도 잘되더라. 덕을 쌓아야 한다.”

'결사곡' 시즌3는 시즌2 마지막 회에 등장한 황당한 결혼식 장면에 대해 풀어가는 스토리다. 사진은 사피영(박주미)이 서동마(부배)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 /TV조선
신유신(지영산)과 아미(송지인)가 극장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이다. /TV조선

◇빨래판 복근? 농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991년 KBS 드라마게임으로 데뷔한 임성한은 MBC일일극 ‘보고 또 보고’가 시청률 58%로 대히트 하며 단숨에 스타 작가가 됐다. 이어 ‘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 ‘신기생뎐’ ‘오로라공주’ 등 내놓은 작품마다 히트했지만, 소재의 파격과 기상천외한 이야기 전개로 ‘막장드라마의 대모’란 수식을 얻었다. 일부 시청자들의 안티 운동이 일어나고 건강까지 나빠지자 2015년 절필을 선언한 그는, 6년 뒤 ‘결혼작사 이혼작곡1·2’를 성공시키며 ‘여왕’의 건재를 알린다.

-임성한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한다.

“상처 없는 영혼이 있던가. 현실은 더 졸렬한 막장이고, 드라마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생을 그려가는 것이다.”

-남자의 복근에 빨래를 하고(오로라 공주), 개그 프로를 보다 웃겨서 죽고(하늘이시여), 귀신에 씐 아버지가 눈에서 초록색 레이저가 나오니(신기생뎐) 막장 소리 듣는 게 아닐까.

“‘빨래판 복근’ ‘웃겨서 죽을 뻔했다’는 표현들 사용하지 않나? 재미를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진 것뿐인데 너무들 촌스럽게 군다. 미국인들이 장례식장에서 짓궂은 농담하는 것, 오선지에 쉼표를 찍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초록색 레이저는 심했다.

“나는 대본에 ‘눈에서 강한 레이저가 나온다’고 썼을 뿐인데 조연출들이 CG로 초록색을 입혔더라. (심은하 나왔던) 드라마 ‘M’처럼(웃음). 나도 이건 아니지, 했는데 그날이 경쟁 드라마 마지막회와 붙는 날이라 발버둥을 좀 친 셈이다.”

-개콘 ‘드라마의 제왕’으로 희화화됐을 만큼 시청률 지상주의로도 비판받았다.

“시청률이 저조하면 배우들과 제작진, 방송국 간부들 맥이 다 빠진다. 나로 인해 고통을 줄 수 없으니 재미있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다. 내가 인터뷰를 안 하다 보니 언론에 찍힌 측면도 있다. 내 작품을 매년 최악의 드라마로 꼽더라. 착한 아이라고 칭찬받으며 컸는데 작가 되고 나서 그 많은 욕을 다 먹었다.”

-드라마 ’왕꽃선녀님’은 신내림 받은 딸 이야기다. 임성한에게 신기(神氣)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왕꽃선녀님’ 쓸 때 점집에 처음 가봤다(웃음). 김동리 소설 ‘무녀도’가 모티브였는데,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조용헌씨에게 역술 관상 무속의 대가들 소개받아 취재하며 공부했다. 무당집 가면 뭐에 저절로 씌는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아니더라. 처음 신내림 받을 때만 영발이 세다는 것, 그러다 돈을 밝히기 시작하면 신들이 떠나가서 영력이 떨어지는 걸 취재하면서 봤다. 오히려 주위에서 점 보러 간다고 하면 말린다. 스스로 지닌 기와 판단력만 뺏긴다.”

-‘오로라 공주’에 등장하는 ‘암세포도 생명이에요’란 대사도 논란이 됐다.

“맞는 말 아닌가? 의료계, 종교계에선 태클 한마디 안 들어왔다. 그 대사를 비웃는 사람이 무식한 거다. 유방암 말기 선고받은 배우 이주실씨 투병기를 읽었는데, ‘암세포야 너도 먹고 살아라, 나도 살게, 우리 같이 살자’ 하는 대목에 감동받았다. 그분이 아직 살아계시다.”

-임성한 대본집은 ‘디테일의 끝판왕’이라고 한다. ‘식탁에 반찬이 놓여있다’가 아니고, ‘고사리나물, 계란프라이는 반숙으로 둘, 오이무침이 놓여 있다’는 식으로 적혀 있다고.

“네 식구가 아침을 먹는데 잔칫상 차려 놓은 드라마를 본 적 있다. 재벌집도 아침은 그렇게 안 먹는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내가 좀 더 수고하는 것뿐이다.”

-배우들 머리 스타일, 의상까지도 지정한다던데.

“배우들한테 맡겨두면 촌발 날리게 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사피영, 황마마, 아리영, 구왕모 등 주인공들 이름도 특이하다.

“시청자들 기억에 확실히 남게 하려고. 자경이는 순수하면서도 정감 있고, 사피영은 똑부러진 PD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름 하나까지 공들여 만드느라 내가 살이 안 찐다, 하하!”

-가장 아끼는 작품은 뭘까.

“‘보고 또 보고’를 쓰다가 내 발로 걸어서 신경정신과에 입원했다. 일일극이다 보니 하루 너댓 시간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잤다. 자리가 불편해야 깨니까. 그러다 불면증에 걸렸다. 호텔로 작업실을 옮겼는데 거기서도 못 자 밤중에 택시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수면제 처방 받고 죽다 살아났다. 약에 취해 환상이 보일 만큼 고통스럽더라. 시청률 58% 올리며 13개월간 방영된 작품이 그렇게 해서 나왔다.”

결사곡3 촬영 현장. 송원(이민영)이 판사현(강신효)의 넥타이를 매주고 있다. /TV조선

◇“백일장에서 상 받아본 적도 없다”

임성한은 서울 토박이다. 어릴 때부터 병약해서 초·중·고를 겨우 마친 뒤 전문대에서 전산학을 공부했다. 초등학교 컴퓨터 강사로 일하다 드라마 작가 된 사연이 뜻밖이다. “양호 선생님과 친했는데 그가 보던 여성지를 읽다보니 어느 방송 작가 인터뷰가 실렸더라. 이런 직업도 괜찮겠다 싶은데, 내가 원고 쓰는 요령을 모르더라.”

-글을 써본 적 없다는 뜻인가.

“전혀. 백일장에 나가본 적도 없다. 작가 되려고 처음 드라마라는 걸 봤다. 저것보다는 내가 더 재미있게 쓸 수 있겠다 싶더라. 작가협회 강의를 6개월 들었다.”

-그게 전부인가?

“악성 빈혈이라 학교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숙대 불문과 다니던 언니 책장에 꽂혀 있던 러시아 문호들 작품을 읽은 정도다. 오히려 엄마의 가정 교육이 컸다. 아픈 막내를 보듬고 조근조근 들려주시던 이야기들. 엄마는 늘 사람은 마음을 잘 써야 한다, 음식 버리면 복 달아난다, 내 것이 조금 더 가는 게 낫다, 이 세 가지를 가르치셨다. 인생은 선택인데, 그때마다 내가 선택을 잘할 수 있었던 건 엄마 덕분이다.”

-지금은 최고 몸값의 작가가 됐다.

“60년생 쥐띠로 한여름, 한밤중에 태어났다. 쥐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시간에 태어나 그런지 인생이 숨 넘어가게 바쁘더라. 집 욕조에 몸을 담가본 적 없고 식탁에 앉아 우아하게 밥 먹은 적이 다섯 번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 흙 수저니 다이아몬드 수저니 하면서 불평하는 것에 할 말이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 중 다이아몬드 수저가 있던가. 세상이 다이아몬드들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하나씩 재능이 있고, 그걸 성실하게 밀고 나가면 기회는 온다. 나 역시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어려운 시절 있었고 건강도 나빠 체육시간에 늘 벤치에 앉아 있던 아이다. 그때 펄펄 날던 친구들은 지금 할머니들 돼서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한다(웃음).”

-막장으로 치닫는 대선판을 드라마로 만들 생각은 없으신지.

“정치 이야기도 갖고 있다. 다만 대통령 될 사람이면 종교인, 무속인을 능가할 그릇과 혜안을 갖춰야 한다는 게 내 소박한 바람이다. 가정 교육과 소양의 문제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가족에게 그렇게 험한 말을 하고 모욕을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됐을 때 자신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 무시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

-임성한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택시를 타고 가다 기독교방송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하는 걸 들었다. 사람을 볼 때 지위와 지식의 고하를 보지 말고 그에게 지혜가 있나 없나를 보라고 하시더라. 불교에서도 분별하지 말라 가르친다. 모든 고통이 거기서 오기 때문이다. 진보냐 보수냐는 분별이자, 가르는 것이다. 내공 있고 실력 있던 MBC가 진보와 보수로 갈리면서 결딴이 났다. 권력을 잡으면 서로 쫓아내다 넝마가 됐다. 그래서 해피한가?”

문제적 작가 임성한이 추구한 건 막장이 아니라 리얼리즘이었다. 도덕주의, 엄숙주의 만연한 우리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며 셰익스피어도 놀랄 ‘임성한 월드’를 구축했다. 한때 퇴출 운동의 대상이었으나, 그는 “인생은 견디는 것”이라며 웃었다. “작가들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이다. 내가 이기지 못한 건 아이스크림과 디저트뿐.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 나를 무너뜨리는 건 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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