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이 넓은 건축가·건축교육자 존홍(下)

효효 2022. 2. 2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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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18] 서울 연희동을 내려다보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외국인학교 캠퍼스 내 중복도 유형의 오래된 중학교 건물은 동일하게 반복되는 교실과 암기식 교육이 규범으로 여겨지던 과거의 전형이다. 그에 앞서 준공된 고등학교 건물은 널찍한 복도와 라운지, 유연하게 이용 가능한 학습 공간 등이 교실만큼이나 충분히 마련되어 대비를 이룬다.

초기 지명공모 단계에서 공지되었던 실내 리모델링 설계 지침은, 새로운 중학교 도서관(2018년)은 실용성과 이상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과제의 핵심 대상 공간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35년 된 반지하 중학교 건물의 1층이었다. 개방된 필로티 주차장이었던 1층은 캠퍼스의 중심 IT 오피스로 사용되고 있었다. 가동을 멈출 수 없는, 중앙에 자리 잡은 IT 서버룸으로 인해 벽을 털어내 가변적인 공간을 만들 수 없는 상태였다.

서울 외국인학교 중학교 도서관 / 사진 제공 = 존홍
존홍이 이끄는 프로젝트팀은 공간을 재미있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학교 측은 신축이 비용이 적게 든다는 걸 알면서도 인테리어 리모델링 방식에 동의하였다. 관건은 가운데 전산실을 둘러싼 좁은 복도의 해결이었다. 공간 전체를 최대한 넓게 만들기 위해 바깥으로 밀어내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도서관은 기존의 분할된 공간들을 활용해 개개인을 위한 공간과 학교 안의 다양한 집단들을 위한 공간을 연결하는 '건물들 속의 건물들'로 계획되었다. 1층의 파사드는 캠퍼스와 연결성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큐브 형태의 돌출 창은 햇빛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반사한다. 파사드 안이나 창 바로 앞에 있는 정원 데크의 양쪽 의자는 도서관 내부와 캠퍼스를 잇는다. 각 돌출 창의 일부분으로 구성된 파빌리온은 캠퍼스 사용자들의 다용도 공간으로 활용된다.?

서울 외국인학교 중학교 도서관 외부 / 사진 제공 = 존홍
도서관의 중심은 넓게 트인 공용 공간이다. 과거 고등학교 도서관용 의자를 재활용하였다. 반원형 모듈의 소파들은 강연, 대규모 수업, 또는 상시 열람 공간 등 필요에 따라 재배치될 수 있다. 가장 큰 개념적 특징은 기존 서버룸 유리벽을 통해 만들어지는 광경이다. 학교의 핵심 설비를 노출시켜 책들의 아날로그 세계와 현대 정보통신의 디지털 에테르와의 대비를 만들어냈다.

도서관 남측 사분면을 차지하는 서가에도 이전 도서관의 책장, 책상, 의자들을 재사용하였다. 책상을 중앙에 놓고 책장을 여러 겹으로 둘러 배치하였다. 책들을 최대한 노출시키기 위해 높이에 따라 책장을 놓았다. 자투리 공간으로 버려질 서가의 코너들에는 2층 열람 침대를 놓았다. 서가 옆 창고 공간이었던 복도는 만화책으로 채워진 '비밀 도서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벽 상부를 반사 재질의 금속으로 마감하여 반쪽 아치로 된 천장이 씌워진 좁은 복도를 볼트(vault) 천장을 가진 더 넓은 공간으로 보이게 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시대에 뒤떨어진' 기능주의 유형의 건물을 어떻게 전용할지에 대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 연희동 외국인 초등학교 도서관(2019년)은 리노베이션 이전, 아이들의 신체 크기와 성장 속도가 고려되지 못한 공간이었다. 활용도에서도 단지 책의 보관과 도서관의 최소 작동 기능인 독서대를 운영하는 수준이었다. 리노베이션 디자인의 목표는 유연성과 목적성이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건축, 가구, 책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초등학생들의 스케일을 고려해 일명 '아이들의 모듈러'를 적용하였다.

리노베이션은 놀이와 학습을 포함한 다양한 자세뿐 아니라 상이한 신체들이 맺는 관계를 포용한다. 이 프로젝트는 신장이 연평균 6㎝ 자라는 6세에서 12세까지의 아이들에게 유토피아적이며, 실용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서울 외국인 초등학교 도서관 / 사진 제공 = 존홍
기존 도서관은 내부를 채워 넣는 식으로 바깥에서 안쪽을 향해 설계되었고 주 출입구를 중앙에 두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이었다. 리노베이션의 첫 번째 단서는, 바닥 판의 외곽선이 원형과 사각형이 결합된 귓불 같은 형태에 착안하였다. 북측의 둥근 부분은 도시적 공원의 개념을 담아 기존보다 자유로운 형태를 수용한다.

기존에는 커튼월의 아래와 위가 가구와 설비를 가리기 위해 패널로 덮여있었고 천장은 높은 층고를 활용하지 못했다. 기존 설계의 덮개들을 제거하여 아이들의 눈높이에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하고 빛이 잘 들도록 했다. 공조 시스템을 개선, 가장자리에 45㎝의 층고를 추가 확보하여 복층의 독서 타워들을 배치하였다.

북측 타워들은 메자닌을 형성하는 해먹의 구조로서 놀이 공간이면서도 도서관 기능을 수행한다. 그물망의 하부는 차양 아래에 있는 듯하고, 상부는 해먹이 외부 유리의 곡선과 맞닿아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실내에 해먹을 장치하는 일은 예상보다 구조적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남측 끝에는 네 개의 독서 타워가 메자닌을 지지하고 있다. 건물 속의 건물처럼 보이는 타워들은 새롭게 비례 체계를 형성한다. 역사적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매스와 개구부들은 아이들이 더 자란 뒤에 '미래를 위한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 도서관의 비례 체계는 지평선의 개념을 여러 개의 들어 올린 층들로 확장해 건축과 신체 사이에 상호 관계를 만들어낸다.

키 작은 아이들의 스케일에서는 책장 속에 뚫린 부분들이 낮은 '창문'처럼 시야를 제공, 실제 도시 구조를 실내로 끌어들이는 경험을 하게 한다. 입구에 사용된 반사 패널이 캠퍼스 바깥의 풍경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반쪽짜리 아치를 반사해 가상의 아치를 형성하며 건축적 감각을 일깨운다. 서울 외국인 초등학교 도서관은 리노베이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AIA상을 수상했다.

부암동 프로젝트 조감도 / 사진 제공 = 존홍
'프로젝트 아키텍처'팀의 부암동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필자는 부암동 프로젝트 제안서 안의 겸재 정선의 '세검정도'(洗劍亭圖)에 주목했다.

그림은, 깊은 골짜기를 가르며 흐르는 시내 아래쪽에 정(丁)자형 정자 세검정(洗劍亭)이 나타나고 있다. 시내 위쪽 중앙에 솟은 산은 북악산과 인왕산이다. 건축물로서 정자 세검정은 시내와 주변의 암반과 산기슭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존홍은, 그러데이션(gradation)이 쳐진 캔버스 프레임 같은 창을 통해 트인 경관을 조망토록 했다. 내외부 공간이 작은 창을 통해 상호 관계를 맺도록 하였다.

한국 건축계 일각에서 정자(亭子)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건축물이면서, 현대 글로벌 도시의 어떠한 문화 경관 및 공간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미학적 가치를 지닌 조각이자, 설치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서울 강남 신사동 근린생활시설은 가장 일반적인 규모의 건물이다. 입면에서 현대적 독창성을 확보하면서 거리의 보행자들과 공간을 어떻게 연계짓는가가 중요했다. 6대 규모 주차가 가능한 전면 주차장을 기계식 주차장으로 변경하면서 건물의 뒤쪽 공간을 바라보도록 했고, 엘리베이터 등 코어를 바깥으로 배치했다.

바닥 커브에 따른 아치 형상을 반영, 창을 지그재그로 설계했다. 1, 2층은 상업 시설, 3, 4, 5층은 주택 용도가 가능하도록 여유를 두었다. 올 초 시공에 들어갔다.

팔당 복합문화공간 조감도 / 사진 제공 = 존홍
경기도 팔당 호반 인근, 주택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 다이어그램(diagram)은 건물이 산지 쪽으로 도로를 낀 배산임수에 위치, 도로 건너편 토사가 식수원인 팔당호로 흘러들어가는 경로상에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식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 복합문화공간은 사용자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다양한 지형(레벨)에서 산지와 호수 방향 각각으로의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점차적으로 시공이 이루어진다. 존홍은 이 작품 비주얼을 지난해 9월부터 이번 달 26일까지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개최되는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 건축 100년〉특별기획전에 출품했다.

존홍은 미국건축가협회에서 수여하는 AIA Awards를 17회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융합하는 흐름: 한국의 현대건축과 도시학』(Convergent Flux: Contemporary Architecture and Urbanism in Korea, 2012) 및 『새로운 주거방식의 조각들: 한국 현대사회의 도시주거』 (Fragments of a New Housing Language: Contemporary Urban Housing in Korea, 2016)가 있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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