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명산 : 울산 문수산]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얻어맞기 전에는

글·사진 김병용 북텐츠 대표 2022. 2. 2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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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문수산 600m, 남암산 543m
쉬워 보이지만 '한 방' 있는 산
숲길을 벗어나면 이처럼 산맥이 훤히 드러나 보이고, 뜻밖에도 보물 같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울산에는 신불산, 간월재 등 영남 알프스로 유명한 산들이 있다. 이들은 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산이다. 반면 문수산은 울산 시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울산 시민들에게만 사랑받는 산이다.
어머님에게는 문수산에 좋은 절이 있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에게는 등산 후 마시는 막걸리 맛은 어느 맛과 비교할 수 없다는 말로 설득했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면 따라오시기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지역에서만 알려진 숨은 맛집을 찾는 마음으로 울산 문수산으로 향했다.
율리 농협을 지나서 조금 걷다 보면, 문수산 들머리가 나오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정표에 그려진 지도를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들어 실제 문수산을 바라보았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면 곧바로 목탁 소리와 함께 문수사 입구를 볼 수 있다.
구릿빛 육체를 뽐내는 문수산
맑은 하늘 아래 마치 어깨동무하듯 땅에 걸친 문수산 자락이 눈앞에 펼쳐져 마치 우리가 문수산 손끝에 놓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수산 손끝을 간지럽히듯 사뿐히 산행을 시작했다. 나뭇가지에는 나뭇잎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잎이 없다 한들 그것이 대수랴. 흙길에 놓여 있는 낙엽들이 우리를 향해 속삭였다.
‘겨울 산의 매력’ 하면 다들 설산을 떠올릴 것이다. 초록 잎을 대신해 피어 있는 눈꽃과 햇살에 반사된 눈부신 하얀색은 장관이다. 산은 계절마다 그에 맞는 색으로 매력을 발산한다. 봄에는 푸릇푸릇한 매력, 여름에는 짙은 녹음의 매력,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매력, 그리고 겨울에는 하얀 매력. 산은 옷장에 걸어놓은 옷을 계절마다 바꿔가며 갈아입는다. 하지만 경상남도의 산들은 하얀색 코트를 장만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그들은 하얀 코트 대신에 구릿빛 육체를 드러낸다.
자칫, 싱그러움이 사라진 겨울 산을 삭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삭막함은 풍요로움이 넘치는 이 시대에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겨울 경상도 산만이 가지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들머리에서 조금 걸으니 목탁 소리가 들렸다. 망해사로부터 들리는 소리였다. 코스가 제법 긴 날은 시간의 성화에 휴식을 잊게 마련이다. 망해사의 목탁 소리는 시간의 성화를 잠재우고 우리를 잠시 쉬게 했다. 넉넉한 마음을 채우고 다시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 중간 중간에 탁 트인 전망을 만나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특히 깔딱고개를 앞두고 나타난 큰 바위 절벽은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깔딱고개 도착하기 전에 시선을 압도하는 바위들을 구경할 수 있다.
반전매력을 가진 문수산
재미없던 영화의 원인이 대부분 ‘기대’ 때문이었던가. 인터넷에서 수많은 후기를 보고 온 터라 깔딱고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렇지만 막상 내 눈앞에 펼쳐진 깔딱고개의 경사도는 완만해 보였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0.7km였다. 세 번 정도 숨 쉬고 나면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수산 들머리부터 깔딱고개 입구 전까지 편안하게 올라왔던 터라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상태였다. 자신감을 가지고 깔딱고개에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뒤에 타이슨의 명언이 생각났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맞기 전까지는.’
깔딱고개는 타이슨이었다. 타이슨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서 정상까지 다다랐다. 정상부의 풍경은 마을을 지나 공업지대로 나타나고 곧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탁 트인 수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수평선을 보았지만, 문수산의 수평선은 정말 장관이었다. 아마 골프를 즐겨 친다면 손에 쥐고 있는 스틱으로 스윙을 한번 휘둘러보고 싶었을 것이다.
울산 공업지대를 지나 넓게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새벽에 준비한 김밥을 정상에서 먹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다. 정상에서의 김밥은 ‘고생 끝에 맛이 있다’고 표현되었다.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 주로 ‘영축산’이라 불리던 산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문수산’이라 불렸다. 문수보살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우리는 문수사로 향했다. 문수사로 가는 내려가다 보면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대나무 숲길의 매력은 보는 것에도 있지만,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 소리에도 있다. 잠시 머물러 대나무 소리에 휴식을 청했다. 절벽 위에 위치한 문수사는 암릉이 비바람에 깎여 자연스럽게 문수사로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문수사에서 내려가다 보면, 중력이 실재하는 듯한 두 바위절벽을 만나 볼 수 있다.
앙증맞은 정상석 놓인 남암산
남암산을 가기 위해 문수사주차장으로 향했다. 문수사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문수산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곳이기도 했다. 오르는 길이 육산이었다면,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골산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수산이 암릉등반으로도 각광을 받는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풍경들이 연출되었다. 부모님은 문수산을 끝으로 주차장에서 원점 회귀지점으로 돌아갔고, 여자친구와 나는 오른쪽에 문수산을 두고 남암산으로 향했다.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남암산으로 걸어갔다. 조금만 걷다 보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오솔길을 따라갔다. 오솔길은 2명이 걷기에 오붓한 길이었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스피드를 내며 걸어갔다. 처음 산행하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해가 지면 낭패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남암산南巖山’이라는 지명은 옛날 남암이라는 절이 있어 부르게 되었다. 또한 남암산을 ‘김신기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 범공이 신라가 망하자 이곳으로 들어와 김신암이라는 절을 짓고 머물렀다는 설이 있어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남암산에서 저무는 해를 손으로 맞이한다. 찬란한 하루였다.
1시간 정도를 걸으니, 남암산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 근처 절벽에 바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바위 위에서 문수산 정상과 마찬가지로 공업지대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잠시 우리가 걸어왔던 발자취를 살펴보고 정상까지 남은 길을 살펴본다. 너무 가파른 것 같아 계단이 없다면 아마 정상까지 오르는 걸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반듯하게 놓인 계단이 있어 이를 밟고 남암산 정상에 오른다. 남암산 정상 기념비는 다른 산의 정상 비석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다. “보소. 정상 처음 올라 와 보는교?”라고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쨌든, 조금은 특별한 정상에서 귤을 먹은 후 넘어가는 해를 앞서기 위해 서둘러 하산했다.
문수사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을 수 있다.
남암산을 올라갈 때도 등산객을 보지 못했는데, 하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산 전체가 오롯이 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길은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바닥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약간 미끄러웠다. 그래도 온전히 나만의 산을 가지는 하나의 대가라 여기니 걸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지 못한 낙엽길 덕분에 하산 시간을 지체했다.
어디에선가 장작 타는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마을에 들어서니 안도감이 생겼다. 저물어가는 해를 뒤로하며 2km 정도 남은 울주 군청으로 향했다.
산행길잡이
영해마을~망해사~깔딱고개~문수산 정상~문수사~문수사 주차장~남암산/성불암 갈림길~남암산 정상~청송자연농원 갈림길~울주군청 (5시간 소요)
교통(지역번호 052)
직행 울산역 경부선(고속철도)에서 304번(율리 방면) 버스를 타고 영해마을에서 하차.
환승 울산역 경부선(고속철도)에서 1703번 버스를 타고 신복로터리에서 내려 432번 버스로 환승 후 율리공영차고지 종점에서 하차, 713번 버스로 환승해 영해마을에서 하차.
숙식(지역번호 052)
문수산은 여러 모로 접근성이 좋아 숙박은 울산역 근처에서 하면 된다. 하산해서 울주군청으로 가다 보면 꽁깍지 즉석 순두부(222-9005)가 있다. 문수산국수집(225-4560)은 잔치국수와 부추전, 그리고 두부김치를 맛 볼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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