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RV 사서 국경을 넘었다, 완벽한 날씨와 마르가리타 한잔..

글·사진 정해영 다니엘 프리랜서 여행작가 2022. 2. 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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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여행
콘셉시온만의 아름다운 해변.
바하로 가는 길은 너무나 쉬웠다. 티후아나 미국~멕시코 국경에 지그재그 형태로 만든 바리케이드 통로를 따라 천천히 운전하며 통과한 시간은 불과 30초. 국경경비대 군인과 세관원이 지키고 있었지만 아무도 차를 멈추지 않았다.
건강할 때 배낭을 메고, 나이가 들면 차로 세계를 누비려는 내 계획은 코로나19로 완전히 뭉개지고 말았다. 그래서 당장 여행이 가능한 곳부터 하나씩 가보기로 하고 지도를 살피던 중 눈에 들어온 곳이 멕시코 땅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다. (참고로 바하반도 여행의 필독서는 문Moon 출판사의 바하 여행 안내서이며, RV 여행자에게는 앱 중 iOverlander가 필수적이다.)
여행 방식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주말 차박 여행과 미국에서 최근 유행하는 밴 라이프의 중간 형태를 취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중고 도요타 시에나Sienna를 구입한 후 앞좌석 두 자리를 남기고 의자를 모두 제거했다. 침상을 만들고 그 밑은 짐을 보관하는 저장 공간, 또 트렁크는 부엌으로 만들었다. 1,000W 배터리와 솔라 패널, 또 50리터 냉장고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미국 국경이 열리자 멕시코 땅 바하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났다.
황량하고 묘한 느낌과 영감을 주는 바하의 사막.
바하 캘리포니아는 남북으로 1,250km에 달하는 기다란 반도다. 북부와 남부 두 주로 나뉘며, 겨울철에도 따스한 기후와 빛나는 태양이 미국과 캐나다의 은퇴자와 관광객을, 또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대자연은 RV와 오프로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콜로라도강이 흘러드는 반도의 동쪽 코르테스만은 서쪽 태평양보다 훨씬 수온이 높고 겨울철에도 따스하고 파도가 잔잔하다. 고래, 돌고래, 범고래, 고래상어, 참치, 거대한 만타가오리 등 해양 동물의 보고다. 세계는 이곳을 해양수족관이라 부른다. 또 카약과 스포츠 낚시, 스쿠버 다이빙 등 해양스포츠의 천국이기도 하다.
서쪽 태평양 연안은 파도가 높아 서핑이 유명하고, 시원한 알래스카 연안에서 여름을 보낸 고래들이 8,000km 넘게 헤엄쳐 와서 새끼를 낳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때문에 태평양 연안 산 이그나시오San Ignacio와 오호 데 리에브레Ojo de Liebre, 마그달레나Magdalena만에선 겨울철이면 어디서나 고래를 볼 수 있다. 캐나다와 다르게 작은 선박들이 고래에 접근할 수 있고 인간과 고래의 접촉을 허용한다.
도요타 시에나를 차박용으로 개조해 바하 캘리포니아를 여행했다.
금주령이 키운 도시, 티후아나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는 유카탄 반도 이북의 모든 스페인 식민지의 영유권을 인양 받았다. 대한민국 영토의 40배 정도 되는 거대한 땅이다. 같은 시기 미국은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이름을 딴 루이지애나(현 미국 본토의 4분의 1 정도)를 전쟁비용이 필요한 나폴레옹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인다.
미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태평양 연안에 도달하고자 강력한 팽창주의를 선택한다. 국경이 애매해 충돌이 잦았고 중앙정치가 불안한 멕시코를 상대로 영토 야심이 많았던 제임스 포크 대통령은 1846년 4월 25일 전쟁을 선포했다.
멕시코는 수도 멕시코시티가 함락되는 수모를 당하며 텍사스를 할양한다. 또 헐값에 캘리포니아, 네바다, 뉴멕시코, 애리조나, 와이오밍, 캔자스, 오클라호마 이남의 거대한 땅을 넘긴다. 1848년 2월에 체결된 강제적이고 치욕적인 ‘과달루페 이달고’ 협정이다. 멕시코는 땅 55%를 잃었고, 현재의 미국~멕시코 국경이 이때에 완성되었다.
바하 캘리포니아는 계속 멕시코 땅으로 남았다. 미국과 캐나다의 차 번호판과 운전면허증을 가지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바하 캘리포니아와 옆 소노라주까지 허가 없이 운전할 수 있고, 이 경계를 넘어 멕시코로 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샌디에이고San Diego에서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Tijuana까지 불과 25km다. 주도인 멕시칼리Mexicali보다 미국 샌디에이고와 가까운 태평양 연안 바하의 북쪽 티후아나와 엔세나다는 날씨가 온화하고 생활비도 저렴한데다 문화적으로 미국과 유사한 점이 많아 은퇴한 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바하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차박을 즐기는 캠퍼들.
인구 170만 명, 이 지역 최대 도시인 티후아나는 과거 미국의 금주령이 키운 도시다. 금주령을 피해 술을 마시고 파티를 즐기려 국경을 넘은 미국인들로 인해 도시가 번창했다. 그러나 화려한 도시는 마약과 폭력의 온상으로 명성을 잃었고, 최근에야 예술과 멋진 음식, 관광으로 재도약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거리의 낙서와 무질서한 교통, 맛있는 노점상 음식과 최고급 레스토랑이 교차하는 번잡한 도시다.
티후아나에서 엔세나다까지 해안 유료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시간도 단축하고 해안의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다. 여기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피쉬 타코Fish Taco가 이곳 엔세나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반도 어디서나 맛있는 피시 타코를 먹을 수 있으며, 또 우리가 즐겨 마시는 멕시칸 칵테일 마르가리타도 엔세나다가 원조라고 주장한다.
또한 엔세나다 근교 과달루페 계곡은 새로운 와인 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의 포도주는 맛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엘 시엘로 포도원의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며, 이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라스 뉴배스 포도원의 테라스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는 것이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팁.
엔세나다 서남쪽 긴 해변가 부파도라Bufadora 길에 늘어선 캠핑장들 앞 모래사장은 썰물 때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이다. 땅을 10cm만 파도 뜨거운 온천수가 나온다. 밤에 모래를 파고 따스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감상하며 멀리 아름다운 엔세나다의 야경을 보면 여기가 지상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삭막한 갈색 대지에 뿌리 내린 선인장이 싱그럽다.
방어 통째로 내주는 멕시코 어부의 인심
멕시코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반도의 4분의 1 지점에 있는 도시 라사로 카르데나스Lazaro Cardenas를 지나면 여기서부턴 반도 끝까지 그야말로 건조하고 수많은 선인장 사보텐이 우뚝 선 사막이다.
700km를 내리 달려도 펼쳐지는 건 지루한 화산 지형의 험준한 산악과 평원을 가득 메운 선인장들, 모든 것을 녹여낼 것 같은 강렬한 햇빛과 뜨거운 바람만이 이 사막의 역사를 말해 준다. 그 단조함과 지루함이 주는 오묘한 영감은 특별하다.
여행 전 갓길도 없는 열악한 좁은 도로와 교통사고에 대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자에겐 이 오묘한 오지를 볼 수 있게 사람도 살지않는 이곳에 도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멕시코 사람들이 고맙다. 또 이 멀고 열악한 불모의 사막에 복음을 전하러 온 예수회 신부들의 수많은 숭고한 발자취도 사막 곳곳에서 둘러볼 수 있다.
바하 중부에서 차를 코르테스만 쪽으로 돌리면 바이아 데 로스엔젤레스Bahia de Los Angeles에 도착한다. 와이파이도 불안전한 이 오지는 미개발 어촌을 연상시키지만 이런 곳일수록 멕시코의 후한 인심과 코로나를 잊게 만드는 평화가 있다. 이곳은 고래상어와 함께 헤엄을 칠 수 있는 곳이지만 상어는 따뜻한 물에서 살기에 고래를 볼 수 있는 겨울시즌에는 만나보기 어렵다.
해변 백사장에 있는 캠핑장에서 낮에는 야자수 잎으로 만든 시원한 그늘막La Palapa에 앉아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책을 읽고, 또 이른 아침과 해질녘에 메마른 바하사막의 험준한 산들과 대비되는 코발트 블루의 바다를 보는 행복감은 말로 다 헤아리기 어렵다.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펠리컨.
또 한국 사람이 참치를 아주 좋아한다고 하니 방어Yellow tail 한 마리를 그냥 주는 후한 멕시코 어촌 인심도 맛볼 수 있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머문 캠핑장은 아쉴론. 인근 시에트 필로스 카페는 외부와 연결되는 인터넷이 아주 잘 터지는 곳이고 커피맛과 분위기도 고급스럽다. 이 캠핑장은 바닷가 그늘막도 좋고 최고급 휴양지 분위기인데 샤워를 포함해 하루에 단 돈 8달러다. 이 캠핑장을 가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에 예약을 해야 된다. 전화는 없고 이메일(resendizshidalgo@yahoo.com)만 있다.
중부 물레헤Mulege와 로레토에 위치한 콘셉시온만은 물과 초록이 있고 그림 같은 바닷가 캠핑장이 무수히 많다. 로레토는 1697년 이곳 캘리포니아(미국 캘리포니아 포함) 지역 최초로 예수회 선교회가 터를 잡은 곳으로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가 아주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고 치안도 완벽하다.
근처에 단산테 베이Danzante Bay 골프 휴양지도 들어섰고 비행장도 있어 미국인 여행객이 많다. 로레토 남쪽엔 우리의 신도시 같은 노폴로Nopolo시가 있다. 완전히 외국인 은퇴자를 위한 별장촌으로 지어져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며 골프장도 있다. 차량 번호판은 거의 모두 미국과 캐나다다. 커피숍도 캐나다 못지않게 맛도 있고 분위기도 좋다. 여기서 만난 캐나다 부부는 비행편이 있어 눈 덮인 겨울 캘거리에서 3~4시간이면 올 수 있어 너무나 만족한단다.
로레토 인근 바다는 모두 자연보호구역으로 정해져 있어 잘 보존돼 있어 깨끗하고 그림 같은 백사장, 또 펠리컨과 가마우지 등 수많은 새, 물개 떼와 헤엄쳐 노니는 돌고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사방으로 무리지어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는 것은 일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다.
반도 끝에는 유명한 휴양지 ‘로스 카보스’와 남부 주 수도 라파스가 있다. 오래전 개발된 로스 카보스의 호텔들도 좋지만 좀 떨어진 새로 개발된 호텔들이 위치도 좋고 더 고급스러운 곳이 많다. 로스 카보스 시내 전역을 둘러보니 좁고 번잡한 휴양지의 전형적 모습이다.
멕시코 최고 골프장 중 하나인 단산테 베이 골프장 파3 17번 홀.
동호인들 줄잇는 ‘차박’ 성지
북부의 티후아나와 엔세나다, 또 남부의 이곳들을 제외하면 반도 전체가 거의 비포장도로, 미개발 지역이다. 그래서 오프로드 차량을 가지고 가면 반도 모두가 자기만의 특별한 해양스포츠 천국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 가기보다 위험을 줄이려 동호회를 만들어 같이 움직인다. 나도 한 번 차가 모래사장에 빠져 아주 애를 먹었다.
반도 전체에서 수많은 RV(레저용 자동차Recreational Vehicle) 여행자들을 만났다. 특히 미국 전국과 캐나다 전 지역에서, 또 멀리 유럽의 스위스, 독일, 프랑스, 벨기에에서도 온다. 이런 여행자들과 같이 여행 경험을 나누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외로운 여행자에겐 서로가 좋은 친구다.
머무는 곳 거의 모두가 천연 RV 캠핑장인 바하는 겨울철 동호인들에게 최고의 박지다. 하루 평균 15달러 정도로 그늘막, 더운물 샤워와 화장실 이용이 가능한 캠핑장이 거의 모든 아름다운 해변에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세계 최고로 번잡하고 까다로운 미국 티후아나 산 이시드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대부분 멕시코 사람들로 이어진 끝도 없는 줄에서 벌떼같이 달려드는 멕시코 경찰에 돈도 빼앗기고 시달리며 현실로 돌아온다. 그나마 손에 쥔 넥서스 카드가 국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도와줬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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