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동반자" 가구로 본 리빙 사회학

김지윤 기자 2022. 2.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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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드센추리모던 스타일로 꾸며진 공간. 김지수 제공


빙하 위에 북극곰이 누워 있는 듯한 유아인의 소파. 스웨덴의 왕실에도 납품된다는 제니(블랙핑크)의 침대. 수백, 수천만원을 웃도는 고가의 가구는 일부의 전유물이었다. 적어도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중저가 브랜드 가구와 맞먹는 가격의 조명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가격은 차치하고 원하는 의자를 얻기 위해 ‘직구’의 번거로움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들도 늘었다.
가구를 포함한 홈리빙 문화가 시대를 반영하고 나아가 정치, 경제, 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들 수 있다. 이는 오리엔탈풍 가구 붐을 일으킨 ‘나비장’과 한때 ‘국민 휴지케이스’로 불린 ‘마카롱 휴지케이스’를 유행시킨 김지수 메스티지데코 대표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가구를 “편안한 삶을 위한 수단을 넘어 다양한 맥락을 품고 인간의 곁에 자리잡은 동반자”라 정의한다. 저서 <가구, 집을 갖추다>를 통해 홈리빙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그와 가구 변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른바 가구로 보는 리빙사회학이다.
■ 미드 센추리 스타일에 숨겨진 상수
일명 ‘경수진 인테리어’가 인기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경수진씨가 취향대로 꾸몄다며 자신의 방을 소개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정식 명칭은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 1945년부터 1969년까지 미국에서 주목받았던 생활 양식으로 인테리어, 가구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 건축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실용성이 강조되고 주로 직선을 사용해 깔끔하고 단순하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할 단어가 있다. 바로 취향이다.
“그간 가구는 물리적으로 쓸모가 있는 것, 미적인 존재로만 여겨져 왔어요. 고가의 가구를 찾는 사람들도 부유층이나 소수의 애호가로 한정적이었죠. 그런데 최근 트렌드는 대세를 따르되 그 속에서도 다양성을 갖추는 모양새예요.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인이 인기지만 거시적 콘셉트만 따를 뿐 디자인, 색상, 소재, 브랜드는 모두 다르게, 개인의 취향대로 큐레이션 하고 있죠.”

국내 2호점을 낸 영국의 리빙 편집숍 ‘더 콘란샵’ 내부 풍경. 김지수 제공


김 대표는 이 취향의 배경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라는 상수와 ‘MZ세대’라는 변수가 있다고 풀이했다. 원하는 것을 언제든 살 수 있는 경제력이 갖춰진 시대, 자신의 소비에 가치관을 반영하는 세대가 만나 유행과 독창성을 공존하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가의 조명, 의자의 판매량이 급증했는데요. 의외로 과시하기 위해 큰돈을 쓰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요. 오히려 평생 나와 함께할 반려 가구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죠.”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이나 레저로 향하던 돈이 집으로 방향을 틀고, 가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분위기도 한몫했다. 경제력뿐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알아볼 안목을 갖춘 수요층이 있어야만 문을 열어준다는 콧대 높은 영국의 리빙 편집숍 더콘란숍이 한국에 2호점까지 냈다는 사실은 괄목할 만한 변화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자기 취향대로 집을 꾸미는 것 모두 선진적 라이프 스타일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 때문에 코로나 종식 이후 홈리빙 시장이 잠시 주춤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진화해 갈 거라 봐요.”

다국적 홈퍼니싱 브랜드 이케아 쇼룸. 이케아 제공.


■ 이케아의 안착엔 가성비가 있었다
고가의 가구가 대중에게 스며든 것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실용성에 기반한 상품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후 브랜드의 가치를 중시하는 고관여 제품들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돌이켜 보면 2015년을 전후로 국내 인테리어 시장은 일명 ‘가성비’ 가구들의 활약이 컸다. 스웨덴의 가구 및 생활 소품을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 이케아도 그중 하나다. 이케아가 국내 상륙한 시점은 2014년 11월. 한국 진출 1년 만에 광명점이 연매출 3000억원의 매출을 찍었는데 이는 전 세계 330여개 매장 중 최상위권이었다.
“그 시기 급격한 내수경기 침체가 있었어요. 가계부채, 고용불안, 경제노동인구 감소 등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이 됐죠. 그때 등장한 트렌드가 가성비였어요. 일단 가격이 싸야 했고, 그러면서 예뻐야 했어요. 이케아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죠.”
이케아의 선견지명은 과거에도 발휘됐다. 시계 등을 팔던 이케아의 창업주 캄프라드는 1948년 판매 품목에 가구를 추가했다. 유럽 가구 시장의 변화를 읽으면서다. 당시 유럽은 가구를 대대로 물려받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값비싼 원목에 앤티크 장식이 수놓아진 전통의 가구가 ‘대세’였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고, 제3세계 노동자와 유학생들이 밀려들면서 값싸고 이동이 쉬운 가구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플랫팩 형태의 방식, 즉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도록 납작한 상자에 포장해 놓는 가구가 그가 낸 묘안이었다. 보관 비용이 줄어든 만큼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픽업 차량을 갖춘 가정이 드물고, 직접 조립하는 DIY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다 보니 불가피한 한계점이 존재했어요. 그러나 우후죽순 생겨난 배송 및 조립 대행 서비스 업체들이 동반 성장하며 이 또한 충족시켰죠. 어떻게 해도 살아남을 브랜드였다고 봐요(웃음).”

홈 리빙 문화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배경에 따라 변화한다. 김 대표가 그린 일러스트. 김지수 제공

■ 가구에도 유행이 있다…진화하는 리빙 문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찾아온 가구 시장의 키워드는 여성이었다. 여성의 교육 수준 및 사회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주부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달라진 것이다. 이즈음 지어진 신축 아파트에는 서비스 공간이 신설됐다. 여성들이 살림, 육아, 부동산, 재테크에 이르는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소화하기 위한 사무 공간, ‘맘스 데스크’다.
“여성의 공간을 부엌으로 한정지은 것에 아쉬움이 남고, 옹색하게 책상 하나 가져놓는다고 진정한 주거의 근대화가 이뤄지진 않겠지만 서재를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고정관념이 무너졌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안방을 부부침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요.”
가구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배경 등에 따라 주력 스타일이 결정된다. 동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최근 가전 시장에는 가구와의 컬래버레이션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형형색색의 냉장고, 드레스룸에 배치해도 어색하지 않은 건조기나 의류 관리기, 소파와 흡사한 안마 의자 등이 그 예다.
“가구를 가구로만 보는 시대는 끝났어요. 리빙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거든요. 여기서 진화란 ‘월등하게 좋아진다’가 아니에요. 얼마나 그 시대의 문화, 환경에 잘 적응하고 맞춰가느냐가 관건이죠.”

거실에 배치한 다용도 테이블. 김대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쇼파보다 식탁에 더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김지수 제공

■ 소파보다 식탁에 투자하라
1970년대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보급되며 공간의 재해석이 이뤄졌다. “이불만 펴면 누울 자리가 완성되고 밥상을 가져다 놓는 곳이 곧 주방”이 되던 좌식 문화와 달리 한번 배치하면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입식 가구 유입 또한 개인의 공간과 가족의 공동생활 공간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계기가 됐다.
“‘어제의 집’은 ‘오늘의 집’에 사는 이들의 부모가 사는 집이에요. 부모들은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는 시절을 보냈고, 자식들은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먹으면 좋겠다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생각과 의식주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집의 공간과 쓰임새를 바꿨고요.”
1980년대에는 집 안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보일러 기술이 발달하며 집의 구심점이 거실로 이동됐다.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소파와 TV 장식장, 거실 테이블 판매도 덩달아 늘었다. 그러나 영원히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았던 거실은 2000년대 후반부터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거실에 모일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TV의 역할을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대체하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거실의 존재가 다시금 부각된 것은 ‘의식주휴미락’을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팬데믹이 열리면서다.
“저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엔 소파보다 식탁에 더 투자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커다란 다용도 테이블인 ‘소파 식탁’을 거실 중앙에 배치해 ‘따로 또 같이’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길 바랍니다. 이 식탁은 함께할 수 있는 것들과 따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동시에 구현하는 도구가 될 겁니다. 자연히 즐거움을 공유하며 유의미한 대화도 오가겠죠. ‘홈코노미’ 시대가 부여한 ‘오랫동안 함께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가족 개개인의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더불어 가족 간의 느슨하지만 끈끈한 신뢰의 연대가 복원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가구, 집을 갖추다> 펴낸 김지수 메스티지데코 대표./우철훈 선임기자

■ 메타버스 가구점, 머지않았다
미드 센추리 모던, 그다음은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현대 가구는 미국의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이 정점에 오른 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 주목해야 할 것은 가구를 둘러싼 환경이다. 김 대표는 본격적인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하면 “실제 오프라인 마켓을 직접 방문해 가구와 리빙 제품들을 눈으로 보고 기능을 체크해보는 것과 같은 체험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가구를 온라인으로 판다고 했을 때 대다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읽지 못한 것이죠. 당장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구현되는 것들을 보고 구매하는 진화된 온라인 쇼핑의 형태겠지만, 메타버스 세계가 익숙한 세대에게 이 과정은 하나의 재미이자 라이프 스타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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