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드셔도 됩니다, ‘그분’께서 단골로 찾는 집이니까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2. 2.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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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혜경 맛집 리스트’ 화제
정치인들로 뜬 식당들
이른바 '김혜경 단골 맛집 리스트'에 등장하는 식당들과 초밥, 소고기 안심 등 음식./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미쉐린 가이드’를 능가할(?) 맛집 안내서가 경기도에 떴다. 이른바 ‘김혜경 단골 맛집 리스트’다. 도청 7급 공무원이었던 A씨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의 사적 심부름과 법인카드 사적 유용에 동원됐다고 폭로하면서, ‘바꿔치기’한 영수증에 등장한 식당들이 김씨의 단골 맛집으로 회자되고 있다.

김씨는 2018년 ‘밥을 지어요’라는 요리책을 펴냈고, 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 1인 가구 청년들과 만나 굴떡국을 끓이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김장금(김혜경+대장금)”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게다가 논란이 된 식당으로부터 돈을 받고 홍보해주는 ‘뒷광고’가 아닌, 직접 돈 내고 사 먹은 음식점이란 점에서 ‘김혜경 맛집 리스트’는 더욱 신뢰를 얻고 있다. 비록 경기도청 예산으로 지불했지만 말이다.

◇지역주민 사랑받는 ‘찐맛집’들

리스트에 등장하는 식당은 7곳. 이 후보 부부가 거주하는 경기도 성남 분당 인근에 있는 식당이 M정육식당·M초밥·W복집·A베트남식당·Y중식당·J백숙 등 6곳이고, O초밥 한 곳만 수원 광교에 있다. 모두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서 갑자기 뜬 맛집들이 아닌, 지역 주민들에 의해 검증된 식당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30년 가까이 분당에 살고 있다는 허모(43)씨는 “W복집과 Y중식당은 분당에서는 나름 오래된 맛집이고, A베트남식당과 O초밥은 비교적 최근 생겼지만 인기가 높아 줄 서서 먹는 식당”이라고 했다. 정자동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정모(48)씨는 “M초밥은 회사 옆이라 코로나 이전엔 점심 혹은 부서 회식을 하러 자주 갔고, 요즘은 사무실에서 단체로 주문해 먹는다”고 했다.

식당 7곳을 모두 찾아가 봤다. 지난 16일 찾아간 A베트남식당은 오전 11시 30분 이미 만석이었다. O초밥은 오후 1시가 다 된 시각에도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손님들과 전화 주문한 초밥을 픽업하러 입장하는 손님들로 혼잡했다. 김혜경씨가 초밥을 10인분이나 주문해 A씨와 그의 상급자 배씨가 “영화 ‘기생충’처럼 누가 숨어 사는 거 아니냐”며 의아해했던 식당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가격에 비해 맛과 재료가 뛰어난, 이른바 ‘가성비 맛집’들이란 공통점도 있다. 분당 수내동에 사는 주부 한모(38)씨는 “W복집은 점심에 3만원짜리 보리굴비정식이 인기”라며 “굴비에 각종 반찬이 한 상 가득 나와서 먹고 나면 바가지 썼다는 느낌 없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수내동에 사는 또 다른 주부 김모(35)씨는 “M정육식당은 고기를 살 수도 있고 ‘차림비’를 내면 쌈 채소·불판을 내줘 가게에서 먹을 수도 있다”며 “고기 품질에 비해 양이 많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했다. 김혜경씨가 즐겨 먹었다는 한우 안심은 12일 기준 250g 1팩이 3만6250원(100g당 1만4500원)으로 비싸지 않은 편이었고 육질도 훌륭했다.

◇욕먹어도 알려지는 게 낫다

정치인들로 인해 의도치 않게 유명해진 식당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서울 신사동 D중식당은 ‘전두환 중식당’으로 통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쿠데타 40년이 되던 2019년 12월 12일 쿠데타 주역들과 1인당 20만원 상당의 오찬을 즐겼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1000억원 이상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데다, 알츠하이머 투병을 이유로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가 상어지느러미·전복·제비집 등 고급 요리 전문점을 출입했다고 알려지자 거센 비난을 받았다.

2017년에는 ‘조윤선 맛집 리스트’가 회자됐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문화·예술 애호가였고 문화체육계 사령탑까지 올라갔다가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러자 한 언론사에서 조 전 장관이 국회의원 활동 당시 회계보고서 사용 내역에서 접대 및 식대로 사용했던 식당을 조사했다. 이탈리아·프랑스 레스토랑, 와인바 등에서 사용한 내역이 다른 국회의원보다 두드러졌다. 미식가들이 인정하는 ‘찐맛집’이 많다는 점도 화제였다. 서울 구기동 한 개고기집이 포함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었으나, 그마저도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개고기집 중 하나였다.

1992년에는 ‘초원복국 사건’이 터졌다. 부산 남구의 한 복어 요릿집에서 현지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통일국민당 관계자의 도청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부정적 사건으로 얻은 유명세가 식당에 도움이 될까. 레스토랑 컨설턴트 이모(58)씨는 “도움은 된다”고 했다. “어찌 됐건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전두환 중식당’의 경우 많은 이들이 호기심에서라도 찾았고, 샥스핀(상어지느러미) 전문점으로 위상을 확실히 했다고 들었다. 사건에 휘말렸더라도, 식당이나 그 주인이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 이미지가 나빠지진 않는 것 같다.”

연예계에는 ‘무플(댓글 없음)보다 악플(악성 댓글)이 낫다’는 말이 있다. 인지도로 먹고사는 연예인은 욕을 들으면 들었지 잊히면 안 된다는 뜻이다. 외식업계에도 적용되는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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