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초록, 겨울 홍릉숲

2022. 2. 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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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청량리에 깊은 숲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의 환경과 자연을 연구하는 기관도 함께 있다. 그런데, 그 숲이 이제 서울 동부권은 물론 수도권 시민들의 청량한 산책 여행지가 되어 있다.

▶국림산립과학원과 홍릉숲

국립산림과학관이 있는 청량리동 일대는 아파트와 오래된 주택, 그리고 그 유명한 청량리종합시장, 약령시장 등 오랜 세월 시민과 함께 해 온 명소들이 있는가 하면 조선 왕조 능도 있다. 또한 세종대왕기념관(휴관중), 옛 세종대왕의 무덤이었던 구 영릉에 있던 석물 야외 전시장 등 소소한 볼거리들도 국립산림과학원 근처에 있다.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시간이 섞여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볼거리가 많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분명 공공기관인데, 입구가 마치 휴양림처럼 생겼다. 임업시험소가 자라고 전문화되면서 탄생했기 때문일까. 입구 가운데 정문이 있고, 양쪽으로 나무판을 세운 모양이 그렇다. 지나가다 그곳을 보면 그냥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국립산림과학원을 찾는 시민들의 방문 목적은 거의가 홍릉숲 산책이다. 홍릉숲은 국립산림과학원과 경희대학교,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등을 품고 있는 천장산과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19 관련 간단한 확인 절차를 밟고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홍릉숲이 시작된다. 간판은 국립산림과학원인데 왜 홍릉숲이냐 하면, 임업연구원의 이름을 국립산림과학원으로 바꾼 2004년 기준, 82년 전인 1922년에 홍릉숲이 임업시험장으로 관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홍릉숲이 먼저이고, 지금의 건물들은 한참 후에 들어선 시설들이라는 말이다. 물론 정문 근처에는 연구 시설들이 곳곳에 있고, 본격적인 홍릉숲은 그 뒤편 산자락이라고 보면 된다. 이름이 홍릉숲이 된 것은 이곳에 명성황후의 묘소인 ‘홍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임업시험소를 하필 조선왕조의 유적지인 홍릉의 숲에 조성한 것은 일제의 조선왕조에 대한 조롱의 뜻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천장산 일대는 전체가 홍릉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홍릉에 임업시험장을 만들며 홍릉과 그 옆 영휘원이 나눠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홍릉의 이전과 상관없이 천장산은 서울 동쪽 지역의 보석 같은 숲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홍릉숲 앞을 지나는 회기로를 더 쾌적하게 정비하고 벽과 지붕을 건축해 그 위로 숲을 만들어 주면 홍릉숲과 천장산은 하나의 동산을 이룸은 물론 청량리 일대의 초록 지대가 될 것이라는 꿈도 꾸어 본다. 율곡로를 덮어 창경궁과 종묘를 다시 이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홍릉숲에는 다섯 곳의 산책로가 있다. 연구 대상인 침엽수원, 활엽수원, 초본원, 관목원, 약초원 등이 산책로의 주를 이루고 있다. 정문에서 시작되는 천년의 숲길은 침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650m의 편안한 길이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경성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화백나무 가로수, 스트로브잣나무 등과 1960년대 이후 한국에 집중적으로 도입된 삼나무, 낙우송, 메타세쿼이아 등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또한 서양측백, 편백, 화백 등 측백나무류 등과 전나무, 솔송나무, 비자나무, 구상나무, 백송, 금송 참개비자나무, 눈향나무, 섬향나무 등이 빼곡하게 서 있다. 한 바퀴 돌아오면 다시 정문이 나오는데, 코스가 짧아 시시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이 정도의 거리가 몸에 맞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방문자들은 천년의 숲길 출발점부터 새로 이어지는 700m의 황후의 길, 그리고 숲길을 걸으면 만나게 되는 천장마루길(900m), 숲속여행길(700m), 문배나무길(600m) 등 코스 측량 거리 기준 약 3.6km의 숲길을 종횡무진하고 산책을 끝낸다.

▶천년의 숲속 여행길

연구소 숲이지만 천연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오는 노년의 작가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천년의 숲길에 접어들어 조금 걸으면 산림 전시장인 산림과학관이 나오고 그 앞에 왕벚나무 쉼터가 있다. 봄이 오면 굵직한 왕벚꽃이 한가득 피어 오르는데, 생각해 보니 그 봄도 멀지 않았다. 입춘이 지났으니 말이다. 황후의 길로 이어지는 지점은 밀레니엄 광장. 이곳부터 언덕이 시작된다. 이 길을 돌아 올라가다 보면 조선 시대 때 왕이 마시던 우물 즉, 어정의 모습이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황후의 길에는 소나무, 단풍나무, 칠엽수 등 키가 8m 이상 자라는 교목과 수수꽃다리, 박태기나무 등 작은 키의 관목이 함께 세월을 보내며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을 뽐내고 있다. 홍릉이 있던 홍릉터는 황후의 길 꼭대기쯤에 있다.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인 대원군과의 권력 암투에서 끝내 승리했으나 정부 재정을 탕진하고 주체적 외교에 실패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다 어처구니 없게도 일본의 칼잡이들에 위해 무참하게 살해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는 경복궁 내에 있는 자신과 고종의 궁궐인 건청궁에서, 그것도 자신의 침실인 옥호루에서 43세의 나이에 난도질을 당했고, 시신은 불에 태워진 채 뒷동산에 버려졌다.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이 을미사변은 조선 백성들의 공분을 샀다. 그 뒤로 대한제국의 자주권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명성황후의 시신은 곧 이곳 홍릉에 안장되어 22년간 있었고 1919년 고종이 죽으면서 경기도 남양주 금곡에 홍릉을 조성하면서 부부를 합장했다. 한때는 봉분과 석물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무덤 터는 그저 산자락의 조그만 언덕일 뿐이다. 홍릉의 봉분이 있던 자리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다.

홍릉터를 지나면 곧 숲속 여행길로 이어진다. 숲속 여행길은 홍릉터에서 출발, 홍릉숲 산책길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쉼터를 찍고 본관으로 이어지는 700m에 이르는 긴 산책로이다. 홍릉터부터는 제법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살짝 등산 느낌도 나지만, 언덕 구간은 금세 끝나므로 역시 산책은 산책일 뿐이다. 언덕 꼭대기에는 휴식 공간이 곳곳에 있다. 나무 등걸을 닮은 통나무 의자들이 주변 경관과 어울려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날은 날씨가 아주 추웠는데, 그럼에도 등걸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휴식 공간은 조경인의 숲으로 이어진다. 조경인의 숲에는 소나무 등 커다란 사철나무들이 있어서 푸른 빛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복자기나무, 초여름, 노랗고 예쁜 꽃이 피는 가시 달린 대추나무, 좁은단풍 등이 집중적으로 심어져 있다. 지금은 비록 말라 있지만, 패랭이, 꽃잔디, 비비추, 할미꽃 풀꽃 등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전원 주택의 정원을 보는 느낌이다. 언덕 저편으로는 카이스트 입구와 아파트 고층 부위가 보인다. 오솔길은 적절한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나 있어서 저절로 조심조심 천천히 걷게 된다. 조경인의 숲을 빠져 나와 나무등걸 쉼터 앞으로 가면 다시 숲속 여행길로 이어져 국립나무병원 뒷길로 내려오게 된다.

국립나무병원은 말 그대로 나무의 질병과 건강을 관리해 주는 전문 병원이다. 상식적으로 나무의 질병은 나무 치료 전문가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나무병원이라는 간판을 보니 궁금한 게 많아졌다. 2018년에 개정된 나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 소유의 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의 진단과 치료는 나무의사와 수목치료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의사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의 소유자가 도전할 수 있는데, 서울대식물병원, 한국수목보호협회, 신구대학교식물원 등 정부에서 지정한 양성기관의 학습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수목치료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한 뒤 4년의 실무 경력을 쌓은 사람만 응시할 수 있다. 전문양성기관에서의 학습이 필수이고 시간도 꽤 오래 걸리는 과정이지만 기후변화, 환경 인식 변화 등 나무의사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아지면서 미래의 유망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동네 뒷산, 가로수만 생각해 보아도 그 미래가 창창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 코스인 문배나무길은 겨울철 홍릉숲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곳이다. 평지라 걷기가 편하고 건강을 챙기는 시대에 어울리는 삼지구엽초, 익모초, 황기 등 약용식물, 그냥 바라만 보아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두충, 문배나무, 버섯 재배 시험지 등을 이 코스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려라, 산림과학관 전시실

2월 현재 산림과학관 전시실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사실 이곳 전시실 역시 홍릉숲의 볼거리다. 우리 국토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숲의 디테일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마감재로 사용되는 목재 루버, 나무와 건축이 어우러진 조형물,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원목의 표본들, 석산에서 채취한 석재, 나이테, 숲 갤러리, 우리 숲의 역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숲의 효용성 즉, 꼭 저수지를 만들지 않아도 숲 자체가 물을 흡수(저장)하고 있다 대지가 메마르면 흘려 보내주는 저수 작용을 하고 그 과정에서 물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원리가 설명되어 있다. 숲이 흙의 흐름을 막아주는 토사 유출도 방지해주는 것도 설명되어 있다. 휴양지로서의 숲, 보기만 해도 심신이 해독되는 경관으로서의 숲, 실질적 치유 공간으로서의 숲, 공기의 질을 높여주는 산소 생산 기능 등 숲이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선물들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고, 생활 속에서 향유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온실가스, 탄소 등 기후 변화와 관련된 숲의 역할은 주목해서 볼 만한 전시물들이다. 또한 건축 등 경제적 가치와 관련된 숲의 기능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이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다시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어서 그 날이 오길 기대한다. 나무와 숲에 대한 지식과 개념을 장착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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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7

교통 국립산림과학원은 방문객 주차를 금지하고 있다. 청량리동공영주차장(홍릉로12길 18) 등 주변 공영주차장 이용 혹은 지하철1호선 청량리역 2번 출구, 또는 회기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지하철6호선 고대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 소요.

▶세종대왕박물관

홍릉숲 국립산림과학원 정문을 나와 왼쪽 횡단보도를 건너면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있다. 이름 그대로 세종대왕의 일생과 업적을 기념하고 관련된 연구, 행사 등을 주관하는 곳이다. 1973년에 문을 열었으니 어느덧 개관 50년을 앞두고 있는 시설이다. 이곳은 세종대왕박물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실내는 코로나19로 폐쇄된 상태이고 야외 전시장만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들어갈 수는 없지만, 실내에는 (세종대왕)일대기실, 한글실, 과학실, 국악실 등이 있다. ‘일대기실’에는 어진, 즉위도, 집현전학사도, 훈민정음 반포도 등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글실’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와 최현배, 주시경 등 한글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들의 서책들, 최정호, 최정순 등 우리말 글꼴 선구자들의 고서 등도 관람할 수 있다. 활자판, 타자기 등 한글을 즐겁게 만들어 준 장비들 또한 향수 어린 모습으로 전시장을 지키고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세종대왕의 동상과 주시경 선생이 묘비(선생의 묘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청계천 수표(물 높이를 재는 석재 눈금자) 등과 앙부일부, 자격루 등 해시계와 물시계 등의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특별하게 눈에 띄는 전시물은 구영릉 석물들이다. 왕릉을 이장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격식도 격식이려니와 그 무거운 석물들을 어떻게 옮기느냐가 숙제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능은 원래 지금의 강남구 내곡동에 위치했었다. 세종의 왕후 소헌왕후가 죽은 1446년에 조성되었고, 1450년 세종이 죽자 합장을 한 왕릉이다. 왕릉에 으레 존재하는 석물들은 소헌왕후 능을 만들 때 조성한 것인데, 세종이 이곳에 묻힌 뒤 ‘묫자리가 좋지 않다’는 여론이 있어서 예종 원년인 1469년 지금 여주의 영릉으로 이장했다. 여주 영릉에는 원래 다른 사람의 묘가 있었는데, 그 자리가 명당이라는 결론을 내려 이장이 결정되자 원주인의 후손들은 즉시 근처 다른 곳으로 이장했다고 전해진다. 이장 당시 어마어마한 규모의 석물을 오늘의 강남구 내곡동에서 경기도 여주까지 옮기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땅에 묻어버렸는데, 1973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발굴하여 이곳으로 이전해 놓았다. 석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뒷 얘기들이 무성하다. ‘소헌왕후 능에 조성되었던 석물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다, 망실된 것이 많다, 도굴되었다, 되찾았다, 더 조사해봐야 한다’ 등이다. 구영릉 석물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이렇게 날아다니고 있지만 여주의 세종대왕왕릉은 새로 조각한 석물들을 앞에 세운 채 또 다른 세월을 쌓아가고 있고, 그곳의 석물들 또한 풍화되고 있다.

�툶nfo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로 56(청량리동)

▶숭인원과 영휘원

청량리역에서 홍릉숲이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조선 왕족의 묘소 두 곳이 나란히 있다. 매표소 입구로 들어가면 가까이에 있는 곳이 숭인원이고 안쪽 세종대왕박물관 옆에 있는 곳이 영휘원이다. 영휘원은 대한제국 고종태황제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사친(서자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 씨의 원소이다. 엄 씨는 1911년에 죽었는데, 당시 홍릉 경내였던 이곳에 원소를 마련했다. 조선 시대의 왕릉 제도는 2원화되어 있었다.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이라 했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의 무덤은 원이라 했다. 영휘원의 주인공인 순헌황귀비는 어떤 면에서 대단한 인물이었다. 다섯 살 때 궁녀가 되어 명성황후로부터 아낌을 받았으나, 나이 서른 둘에 고종의 눈에 띄어 이른바 승은을 입자 이에 화가 치민 명성황후는 엄 씨를 출궁시켜 버렸다. 그것으로 엄 씨의 인생은 끝이 나는가 했는데, 명성황후가 을미사변으로 살해 당하자 고종은 엄 씨를 다시 궁궐로 들게 해서 후궁으로 삼아버렸다. 순헌황귀비는 그저 고종의 사랑을 먹고 사는 후궁이 아니었다. 영민한 그녀는 아관파천을 설계하고 실행한 치밀하고 용감한 여성이었다. 당시 일본의 왕실 감시가 대단했었는데, 엄 씨는 가마 두 채를 이용해 궁궐을 드나들며 일본 감시 세력을 헛갈리게 했고, 아관파천 때는 그 마법 같았던 가마를 이용, 고종과 왕세자 순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빼돌리는 작전을 수행해 성공시켰다. 명성황후가 죽은 직후 후궁으로 들어간 엄 씨는 1897년에 의민황태자(영친왕)를 낳았고 이후 귀인, 순빈, 순비를 거쳐 1903년에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황귀비 엄 씨는 당시 대한제국의 신교육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여성 교육에 집중, 진명여학교과 명신여학교(나중에 숙명여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양정의숙(양정중고교)이 재정난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 국토 200만 평과 왕실의 돈을 기부해 학교 살림의 숨통을 트이게 해 주었다. 엄 씨는 또한 고종의 뒤를 이어 대한제국 2대 황제가 된 순조의 황태자로 자신의 아들 의민이 황세자가 되도록 모든 권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끝내 고종으로 하여금 서열상 다음 황세자가 되어야 할 의친왕을 대신하여 황세자로 책봉하도록 결정짓게 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똑똑한 의친왕을 경계한 일본의 힘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질적인 황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엄 씨는 경술국치 후 1911년에 덕수궁 즉조당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대한제국에서는 엄 씨의 시호를 순헌, 궁호를 덕안궁, 원호를 영휘원이라 하고 이곳에 안장했다.

숭인원은 순헌황귀비의 아들인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첫째 아들인 이진 원손의 원소이다. 의민황태자는 당시 일본으로 볼모로 잡혀갔다. 본인이 원했던 일본행은 물론 아니었다. 약혼한 여자가 있었지만 일본에 의해 강제 파혼했고, 일본의 강압으로 일본의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훗날 이방자)와 결혼했다. 강압적 결혼이었지만 부부 관계는 좋았다고 전해진다. 부부는 자식을 둘 보았는데, 첫째 아들이 숭인원에 잠든 진이다. 이진은 생후 9개월 만에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왔다 돌아가기 직전에 죽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본 순종황제의 명에 따라 장례를 극진하게 치르고 숭인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대한제국으로 거듭난 조선의 바람 앞 촛불 같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툶nfo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글과 사진 이영근 참조 국립산림과학원 홍릉숲, 문화재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17호 (22.02.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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