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과학'에 빠진 2040女.. 출판 생태계를 바꾸다

나윤석 기자 2022. 2. 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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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가 ‘감성 과학책’ 열풍

과학은 딱딱하단 편견 탈피

쉬운 문체로 공존가치 전해

진화론·뇌과학·양자역학 등

기존 판에 박힌 해석에 반기

인간 감정의 협력·소통 호소

유튜브 입소문도 인기비결

2040대, 女독자가 男의 4배

‘따뜻한 과학책에 꽂힌 2040 여성.’

최근 ‘과학책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잠재우며 감성적 문체로 공존·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과학책이 잇달아 출간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들 책을 구매한 독자의 최대 70%가 2040 여성이라는 점이다. 각 출판사가 독서 시장의 핵심 고객인 2040 여성을 겨냥한 ‘따뜻한 과학책’을 내놓으며 과학 도서의 주 독자층이 중장년 남성에서 젊은 여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2년 만에 과학책이 1위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룰루 밀러가 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는 부드러운 에세이 형식의 논픽션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출간 이후 두 달 만에 3만 부가량 팔렸으며 지난주엔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과학책이 알라딘 주간 1위를 차지한 건 2020년 1월 이후 2년 만이다. 교보문고 종합 순위에서도 전주보다 34계단 뛰어오른 56위를 기록했다. 책은 미국 우생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회고록이다.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관심을 기울였던 상냥한 소년이 과격한 우생학자가 된 과정을 ‘사랑’과 ‘상실’의 테마로 되짚는다. 조던은 ‘강자가 더 오래 살아남고 더 우월해진다’는 신념 속에 우생학을 주창하며 인종차별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저자는 자연에 ‘질서’를 부여했던 조던의 오류를 지적하며 공존의 가치를 역설한다. “자연의 복잡한 분류단계는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다. 자연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팬데믹에 따른 고립과 단절의 시대, 친화력과 유대감이 진화의 원동력이며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책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1월 말 출간돼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은 ‘다정함의 과학’(더퀘스트)은 다정함이 결핍된 환경이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의학 교수인 켈리 하딩은 “완전한 건강은 의료 서비스 확대만으로 이룰 수 없다”며 “더 건강해지길 바란다면 사회를 좀 더 ‘다정’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적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프렌즈’(어크로스)도 출간과 함께 초판이 다 팔렸다. 던바는 ‘우정의 동심원’ 개념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치를 규명하며 “사교 활동 수치는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사회적 고립은 사망 확률을 30%나 높인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김영하 북클럽’에서 소개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는 누적 판매량이 5만 부를 넘었다. ‘따뜻한 과학책’ 열풍을 일으킨 이 책은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반기를 들며 신체적 조건이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건 ‘협력적 의사소통’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일반인도 알기 쉽게 친절한 문체로 뇌과학을 설명한 교양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더퀘스트)도 2만5000부가량 팔렸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심리학 석좌교수인 저자는 뇌과학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며 인간이 감정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주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한다.

◇‘따뜻한 과학책’ 구매층, 2040 여성이 남성 압도

이들 책의 독자층은 대부분 젊은 여성에게 집중돼 있다. 실제로 교보문고에 따르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경우 전체 구매자 가운데 2040 여성이 70%로 같은 연령대 남성 독자(15%)보다 4배 이상으로 많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도 2040 여성과 남성이 각각 60%, 18%로 큰 격차를 보였다. ‘다정함의 과학’ 역시 여성 독자가 약 20%포인트 많았다. 심경보 곰출판 대표는 “공존·희망·연대를 키워드로 한 과학책이 여성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출판사들 역시 ‘감성 과학’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책을 만들고 있다”며 “과학책의 핵심 독자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하는 트렌드는 점점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책의 인기엔 ‘북툰 사이언스’ ‘1분 과학’ ‘안될 과학’ ‘리뷰엉이’ 등 과학 유튜브 채널 증가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이 ‘기본 교양’으로 자리매김하며 과학 유튜브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책을 추천받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북툰사이언스’에서 소개된 이후 판매량이 증가했으며, 1만5000부가 팔린 양자역학 교양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동아시아)는 ‘안될 과학’ 채널에서 언급됐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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