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리쉬 피자-아련했던 청춘 시절의 사랑찬가[시네프리뷰]

2022. 2. 1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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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여주인공과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남녀 주인공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그려내는 감독의 재능이 빛나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그런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제목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34분
장르 로맨스, 드라마
각본/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알라나 하임, 쿠퍼 호프만, 숀 펜, 톰 웨이츠, 브래들리 쿠퍼, 베니 사프디
개봉 2월 16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유니버셜 픽쳐스


〈리코리쉬 피자〉와 관련한 지난해 11월 영화 전문매체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자신의 직업, ‘영화를 만드는 일’과 관련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경험에 따라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다. 25년간 경험이 있는 사람도 촬영장에 서면 다시 초짜로 돌아가곤 한다. 그게 이 일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점이다.” 겸양이다. 25년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란, 폴 토마스 앤더슨 자신이다. 이번 영화까지 치면 모두 9편이다.

〈리코리쉬 피자〉는 일찌감치 어른의 세상에 눈을 뜬 15세 소년과 20대 중반 여성의 사랑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초반. 소년과 20대 여성. 영화가 취하는 것은 누구의 관점일까. 영화 포스터에 답이 있다. 통상 주인공은 가운데 커다란 자리를 안배 받는다. 포스터는 그 답이 ‘학교 졸업앨범 촬영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조숙한 15세 소년을 만나 그를 통해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25세 알라나 케인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우선 풀어야 할 숙제. 이 영화의 제목은 왜 ‘리코리쉬 피자’일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소년이 마침내 뭔가의 아이디어를 가져다 피자가게를 열게 되나…’라고 기대했는데 끝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피자가게를 구경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아시길. 감독에 따르면 영화 제목으로 따온 저 이름은 피자가게도 아니고, 1970년대 초중반 캘리포니아 일대에서만 운영하던 레코드체인점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번안한다면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 러브스토리에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그때까지 있었던 음반전문점-타워레코드나 신나라레코드 같은 이름을 붙인 셈이다.

소년, 20대 ‘누나’에 반하다

감독의 최근작들을 보면 갈수록 난해하고 철학적 작가주의 영화로 가는 것 아니냐는 평을 받아왔는데 그런 평가에 비춰보면 확실히 이번 영화는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든 추억팔이 영화다. 여주인공도 그렇지만, 남주인공 역을 맡은 쿠퍼 호프만(2003년생이다). 어디서 본 얼굴은 아니라 필모를 검색해보니 배우로 참여한 영화가 딱 이 영화 한편뿐이다. 앞서 버라이어티 인터뷰를 보면 감독은 사는 동네에서 네 자녀와 함께 홈무비를 찍어왔는데, 쿠퍼는 그 영화들에 단골로 출연하는 배우였다고 한다. 이번처럼 주인공은 아니고 주로 악당 역으로. 여주인공 알라나 하임 역시 3~4편의 영화 출연작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단역이었고 주된 경력은 아티스트, 그러니까 LA 출신의 세 자매가 결성한 록밴드 하임(Haim) 활동이다. 감독과의 인연은 2017년 발매한 노래 ‘라이트 나우(Right Now)’ 라이브 영상감독을 맡으면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청춘들이 서로에 이끌리는 과정

졸업앨범 촬영장에서 알라나 케인을 만난 개리는 첫눈에 평생의 인연을 만났다고 확신한다. 두 사람은 열 살 차이가 난다. 치기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는 알라나에게 개리는 저녁식사 자리에 일방적으로 초대한다. 세상일 또는 이권에 일찌감치 눈뜬 이 ‘조숙남’은 돈 버는 일과 관련해서는 타고난 감각이 있는 소년이다. 미성년자는 보호자 없이 여행할 수 없다는 데 착안해 즉석에서 알라나를 떠올려 함께 간다든가, 이제 막 나온 물침대를 보고 알바생을 고용해 적극 판매에 나서는 등 ‘함께 있으면 안 될 일도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처음에 마음을 준 것은 개리였는데 결국 그런 개리에게 끌리는 건 알라나다. 끊임없이 한눈을 파는 개리에 실망해 떠났다가도 처음에는 사업파트너로, 나중에는 진지한 연인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건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러브라인이지만 사랑에 빠진 대부분의 청춘이 겪는 과정이리라.

여주인공과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남녀 주인공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이른바 ‘썸’을 타다 사랑에 이르기까지)을 그려내는 감독의 재능이 빛나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그런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또 한편 젊었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 같았고 두려움이 없었던 그런 청춘 시절. 그리고 그 시절 경험했던 사랑의 아련한 추억 같은 것 말이다. 영화는 40년 전이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질 청춘 시절의 사랑찬가다.

〈리코리쉬 피자〉 영화가 다룬 진짜 이야기

위키피디아


영화 주인공 개리는 실존 인물일까. 앞서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감독은 작중인물인 개리가 톰 행크스와 같이 회사를 설립한 영화프로듀서 개리 개츠만(Gary Goetzman·사진 맨 오른쪽)이냐는 질문에 “지금으로서는 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며 “그의 이야기가 맞다”고 실토한다. 그는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동네를 산책하다 중학교 앞을 지나는데, 졸업앨범 사진을 찍던 여성 사진사에게 추파를 던지던 활기 넘치던 남자 중학생 한명을 보면서 영화의 시놉시스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즉 ‘저 여성이 저 어린 남학생의 추파를 받아 실제 저녁 데이트에 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가 영화의 시작점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자란 한 남자(개리 개츠만이다)를 만났는데, 이 남자가 들려준 자신의 과거 이야기가 그때 상상했던 데이트 이후의 전개와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아역배우를 하다가 물침대 사업에 뛰어든 이야기나 홍보투어로 뉴욕에 가는데 보호자가 필요해 이웃에 살던 성인클럽 댄서를 데려간 일 같은 따위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영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영화 배경은 1970년대 초반으로 돼 있는데 실제 개리 개츠만은 1952년생이니 그의 10대 시절이 배경이라면 실제 사건들은 1960년대 중후반에 일어난 일이다.

알라나와 개리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헤어디자이너이자 애인인 존 피터스 집에 물침대 배달을 간 이야기도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실제 존 피터스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굴었으며 “자신은 영화를 보러 갈 테니 천천히 작업하라”고 했다고 한다. 길게 늘어선 주유소의 줄에 새치기를 일삼으며 히스테릭한 강박을 보여주는 영화 속 존 피터스는 자신이 상상해낸 ‘몬스터 버전의 존 피터스’였다는 것이 앞서의 인터뷰에서 밝힌 감독의 말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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