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One] 스위스 초등학생은 음악시간에 그룹 퀸 노래를 부른다?

신정숙 통신원 2022. 2.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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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초등학교의 음악과 미술 수업
퀸+아담 램버트의 2019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 무대 공연. © AFP=뉴스1 자료 사진

(그뤼에르=뉴스1) 신정숙 통신원 = #. 긴 겨울이 지나면 꽃이 피는 봄이 온다. 봄은 절기론 입춘을 기점으로 꽃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오면서 시작을 알린다. 눈속에서 매화가 피어오르고, 동백꽃이 땅끝마을에서 피기 시작하면 ‘아, 봄이구나.’ 를 저절로 외치게 된다.

일년의 절반이 겨울인 이 곳 스위스 그뤼에르 지역에선 한국처럼 이런 봄을 맞을 순 없다. 5월에도 눈이 내려 봄은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오는 귀하고 귀한 손님이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간절하고 소중해서 봄을 맞는 의식이라도 갖춰야 할 것 같아 봄노래를 찾아 보니 학교에서 배운 가곡이 떠오른다.

“봄처녀 제 옷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을 부른다고?

필자가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는 동요와 민요였다. 가끔 번안된 외국 동요도 있었지만 아이가 불어도 아닌 영어로 된 외국 대중가요를 배운다는 걸 알았을 때 다소 당황스러웠고, 그동안 아이들의 노래는 ‘동요’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실상 아이들은 유치원을 가기도 전에 가요와 팝송을 접하고 있고, 더구나 케이팝(K-Pop)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진 생각이란 말인가! 한국의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음악 교과서를 보니 동요 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중가요 '샹젤리제'와 한국 대중가요 '붉은 노을'도 수록되어 있었다.

스위스의 초등학교는 기본 과목 국어, 수학, 독어, 영어, 지리, 역사, 과학은 교과서가 있고 언어 과목은 연습교재도 별도로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 교과서와 공책을 받아오고 교과서는 1년 동안 사용 후 다음 학년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비닐이나 표지로 싸야 하고 교과서에 낙서나 필기를 하면 안 된다. 대신 연습교재와 학교에서 나눠주는 공책에 필요한 내용을 적으면 된다.

스위스 불어권 초등학교 교과서와 연습 교재 인터넷 갈무리. © 신정숙

교과서가 없는 예체능 과목은 주로 실기 위주로 진행된다. 올해 6학년인 필자의 딸은 1학기 음악 기말고사 내용 중 하나가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 노래가 선정된 이유는 담임 교사의 개인적 취향이 다분히 적용,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시험 전날 노랫말의 뜻은 몰라도 곧잘 따라불렀고, 어렵지 않게 영어 가사를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음악을 배워도 될까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주정부에서 발행된 참고용 교재에 대중가요로 스윙 리듬의 곡을 익히는 내용이 있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노래를 실컷 불러서 좋았을테고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이 부른 명곡의 한 쟝르를 배운 것이다.

◇음악적 창조 공간은 되지 못했지만 수준급 음악학교는 있는 스위스

스위스는 중고등학교 과정의 음악 전문 학교가 없다. 대신 주정부가 주관하는 음악학교(L’école musique)가 있어 원하는 악기, 성악, 발레 등을 배울 수 있다. 1년 단위로 신청이 가능하고 유료 사설기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1년에 두 번 정도 자신이 배운 것을 부모들에게 들려주는 작은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음악전문대학교(Haute école de Musique)에 진학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의 명문 음악교육 기관인 제네바 음악원은 유럽에서 역사가 깊은 음악원 중의 하나이다. 1935년 설립되었고, 1939년에 창설된 세계 최초의 국제콩쿠르이자 세계 3대 음악콩쿠르 중 하나인 제네바 국제 콩쿠르가 이 음악원에서 창설되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국가에 비해 오랜 전통이 있거나 유명한 음악가가 많지는 않지만, 이러한 음악학교를 통해 스위스의 음악 환경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이제는 실력있는 오페라단, 수준 높은 음악학교, 국제 음악 페스티벌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산악 휴양지로 유명한 베르비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은 여름 휴가를 산에서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2018년도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김도현의 솔로 무대가 열리기도 했다.

베르비에 페스티벌. 르땅(Le temps) 갈무리. © 신정숙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이자 현대미술 시장의 지표인 '아트바젤'

매년 6월이면 전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거물급 컬렉터와 미술계 인사로 북적이는 바젤. 스위스 아트바젤이 열리는 기간이다. 이곳에는 바젤을 세계 최고의 미술 시장으로, 예술 도시로 키운 3개의 갤러리가 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조각가 장 팅겔리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뮤지엄 팅겔리( Museum Tinguely), 파격적인 실험의 장인 샤울라거(Schaulager) 미술관, 독일 국경과 맞닿은 작은 마을 리헨에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바이엘러 재단(Fondations Beyeler) 미술관이다. 이러한 성공의 원동력이 스위스의 미술 교육과 관련이 있을까?

스위스의 미술 교육은 음악 교육과 함께 예술 교육 영역으로 분류된다. 미술 교육은 창의적인 공예 활동(activités créatrices et manuelles)과 시각 예술 (Arts visuels)로 나뉜다. 공예 활동을 흔히 브리콜라주(bricolage)라 하는데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학교에는 브리콜라주 전담 교사가 있고 시각 예술 영역은 주로 담임이 맡는다.

두 영역의 과정은 회화수업/의류 직물 수업/목공 및 기술 수업으로 나뉘어 있다. 회화는 테마에 따라 수채화, 아크릴, 파스텔 등의 재료와 기법을 다양하게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본다거나, 한 작가 또는 시대별 작가에 대해 배우고 그들의 그림을 따라서 그려보기도 한다. 의류 직물 수업은 재봉틀과 바느질을 해서 방석이나 지갑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목공 및 기술 수업은 직접 톱질을 해서 나무를 자르고 못질을 해서 작품을 만든다.

스위스 초등학교 미술 수업에서 만든 작품. © 신정숙

◇"차이점이라면 여긴 아이디어를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상상력이 더 풍부하고"

미술교육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일반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에 전문대학교로 진학하는 시스템이다. 미술전문대학교는 학사와 석사 과정으로 되어 있고, 포트폴리오와 자기 소개서(또는 지원 동기서)를 제출하고 인터뷰를 통해 입학이 결정된다. 포트폴리오 준비를 도와주는 아뜰리에가 있고 이 곳에서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별도로 지도를 받기도 한다.

교과서가 없는 예술 교육. 스위스 예술 교육의 목표는 창의성 또는 독창성이다. 실제로 미술 대학교에서도 ‘창의성’을 중심에 두고 교육을 하고 있고, 이 부분이 뛰어난 학생들이 평가를 잘 받고 있다고 스위스 미술 전문학교 EDHEA(L’école design et haute école d’art, 발레주 시에르에 있는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트레이시 씨는 말했다.

“스위스의 미술 전문 교육은 다가가는 각도가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디어와 상상력도 많이 필요로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으로 더 다가가는 반면, 여긴 창의적인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학생들의 상상력이 더 풍부해요. 창의력이 뛰어난 학생들의 평가가 좋고, 그런 학생들은 좀더 빨리 성장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기업과의 협업 기회가 더 생기는 경우죠. "

장지에 아교 작업 후 채색화 한 트레이스의 작품, «When the Flowers Bloom » ©Tracy Lim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교수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작가들이 직접 교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 교육이 바로 실전으로 연결되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한국은 테크닉을 더 잘 쓰는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해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학원에서 입시 미술을 배우고 대학교 1학년 때 모든 과목(수채화, 도자기, 동양화, 디자인, 조소)을 조금씩 다루기 때문에 작품을 할 때도 수월했어요. 반면 스위스의 대학교는 학생이 원하면 가르쳐 주지만 적극적으로 테크닉을 익히도록 하지 않고, 철학 그리고 창의성에 대한 이론을 배우기 때문에 가끔 저처럼 한국에서 배운 테크닉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스위스 불어권의 대표적인 미술전문대학교인 로잔의 ECAL, 시에르의 EDHEA, 제네바의 HEAD. 이 세 학교의 학생들은 소속된 학교가 아니더라도 다른 두 곳에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통합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트레이시 씨는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교육은 철학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그 바탕에 따라 올라오는 줄기와 잎은 다르다. 창의성이 빠진 예술 교육은 없을 것이다. 다만 교육시스템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본다. 창의성이 풍부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술을 충분히 익혀 기존의 것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이노베이션도 중요할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아니라 두 가지, 아니 다른 여러가지 요소가 골고루 중요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존재하므로 상상력을 무한대로 넓혀야 하기 때문에.

sagadawa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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