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 이어 새 생명 불어넣은 악기 수만 개..가족이 일으킨 악기백화점

김미희 기자 2022. 2. 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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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삶 그리고 사람들- 악기 판매·수리 전문 '현음악기'

- 어릴 때 현악기 수리 배운 정권훈 씨
- 1979년 부산 최초로 중구서 개업
- 아들 지원 씨도 英서 수리기술 공부
- 자체 브랜드 제작해 상표등록까지

- 부인은 대표직 맡고, 딸은 판매 담당
- 365일 무휴 … 작년 백년가게 선정

부산 중구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는 부산 문화예술의 1번지였다. 이곳으로 예술인이 모여 들었다. ‘음악인의 성지’로 불렸다. 예술인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악기전문상가가 생겼고, 한때 20곳이 넘을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구 원도심이 침체하면서 악기 상가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운영난 등으로 하나둘 사라졌다. 현재 남은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1979년 문을 연 ‘현음악기’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업주인 아버지 정권훈(67) 씨의 뒤를 이어 아들 정지원(39)과 딸 정지혜(36) 씨가 2대째 가업의 명맥을 잇고 있다.

현악전문수리사인 창업주 정권훈(왼쪽) 씨와 관악전문수리사 아들 정지원 씨가 각각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수리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악기 제작부터 판매·수리까지

현음악기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 1번과 3번 출구 사이에 있다. 1979년 중구 신창동 대각사 인근에서 개업한 이후 자갈치역 인근 옛 왕자극장, 부산데파트로 이전했다가 10여 년 전 지금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엔 그간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부산 중구 남포동 현음악기 매장에서 창업주 정권훈 씨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들 정지원 씨의 부인 김나리 씨, 정권훈 씨와 손녀 효주 양, 부인 황용자 대표, 지원 씨와 아들 수호 군. 서정빈 기자


가게를 둘러봤다. 3층 건물의 1층은 타악기, 2층은 관악기, 3층에선 현악기를 판매한다. 지하 1층에는 현악전문수리사인 아버지 정 씨의 작업 공간이 있다. 그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지하에서 보낸다. 손때 묻은 수리 도구가 눈에 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정 씨는 “서울 친척이 운영하는 바이올린 제조공장에서 어깨 너머로 악기 수리 기술을 배웠다”며 “부산에는 악기수리점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술 하나 믿고 부산에 정착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24살이었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은 현악기만 5만 개가 넘는다. 부산뿐만 아니라 경남 거제 김해 양산 일대에서도 악기를 고치러 온다. 단골 중엔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창원시립교향악단 단원도 있다. 2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손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가족은 체계적인 업체 운영을 위해 업무를 세분화했다. 정 씨는 수리에만 집중하고, 현재 대표는 부인 황용자(61) 씨가 맡고 있다. 황 대표는 “피아노 빼고 모든 악기가 있다. 악기백화점이라고 보면 된다”고 소개했다.

아들 지원 씨는 실장 직함이 적힌 명함을 기자에게 건넸다. 지원 씨는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등 관악기를 전문적으로 수리한다. 지원 씨는 영국 머튼 칼리지(Merton College) 목관악기 수리제작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2005년 영국 어학연수를 갔다가 우연히 친구가 악기 수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과가 있다고 소개해줬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악기수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에서 악기의 역사, 수리 방법, 경영학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경험”이라며 “명의들이 환자마다 맞춤형 처방을 내리듯이 악기 수리도 마찬가지다. 연주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취향에 맞춰 수리한다. 고객이 만족하면 그 수리는 가장 잘된 것”이라고 했다.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딸 지혜 씨가 현악기 판매를 담당한다. 지혜 씨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이곳은 악기 제작부터 수리와 판매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음악기의 자체제작 브랜드 ‘마스터피스’는 2006년 특허청 출원 상표등록을 마쳤다. 지원 씨는 “마스터피스는 기술적인 부분부터 제작공정 디자인과 마감까지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남다른 철학과 장인정신으로 탄생한 관·현악 전문 브랜드”라고 밝혔다. 현음악기에서 구매한 모든 제품은 1년 이내 무상 AS를 제공한다. 이곳의 강점 중 하나다.

■365일 연중무휴·온라인 판로개척도

현음악기 외부 전경. 서정빈 기자


현음악기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에 선정됐다. 온 가족이 전문 기술교육을 이수하고 악기상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점이 인정됐다. 백년가게는 중기부가 업력 30년 이상 된 소상공인 중 경영자의 혁신 의지와 제품·서비스의 차별화, 영업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정하는 우수 소상인과 중소기업이다. 부산지역에 백년가게는 모두 77곳이 있다.

현음악기는 새로운 판로 개척을 위해 온라인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각종 악기와 소품 등을 판매한다. 또 365일 영업하는 연중무휴다. 월~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요일과 공휴일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단 하루도 쉬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정 씨는 “주말에 선생님, 학생들이 쉬잖아요. 가게에 왔다가 문이 닫혀 있어 멀리서 오는 손님이 헛걸음이라도 할까 싶어서요. 그나마 예전보단 영업시간이 단축된 거예요.”

지원 씨도 아버지의 답변을 거들었다. 그는 “부모님이 하루도 일을 쉬지 않아 어릴 때부터 가게가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 가게에서는 지원 씨의 아이들이 뛰어논다. 지원 씨는 “제 아이들이 가업을 이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얼굴에 누를 끼치지 않고 운영하겠다”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 악기 비쌀수록 좋다? 궁합 맞는 게 최고, 여름·겨울 꼭 점검을

■ 나만의 반려악기 구매·관리법

현음악기 3층 현악기 매장의 전경. 서정빈 기자


악기 하나 정도 연주할 수 있다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악기는 평생의 동반자란 뜻의 ‘반려악기’로도 불린다. 대중적인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부터 우쿨렐레 하모니카 등 작은 악기까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지가 다양하다. 나와 악기의 궁합도 중요하다. 현음악기 정지원 실장에게 악기 구매와 관리법을 들어봤다.

악기를 살 땐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직접 악기를 연주해보고 나와 맞는 악기를 고르라는 뜻이다. 정 실장은 “비싼 악기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며 “예를 들어 기타를 살 경우 소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본인이 기타를 잡았을 때 불편함은 없는지 잘 살펴보고 외관상 디자인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악기매장에 방문해 저렴한 악기부터 본인이 원하는 금액대의 악기까지 체험해보는 걸 추천했다. 초보용 바이올린은 10만 원대 수준이면 족하다.

만약 악기 연주에 서툰 초보자라면 소리 비교를 위해 직접 연주도 해준다. 정 실장은 “같은 악기라도 연주자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이다. 소리를 들어보고 비교 구매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면서 “연주 실력을 높이기 위한 본인의 노력이 없으면 고가의 악기라도 결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악기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실장은 “병원 정기검진을 하러 가듯 최소 1년 중 여름과 겨울철에는 꼭 점검을 받아야 한다”며 “특히 현악기는 재료 자체가 나무라서 습·온도 변화에 무척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여름에는 습하고 겨울에는 건조하기 때문에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나무 자체의 변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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