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작가 "위트 있는 한국 속담, 이불에 담고 싶었죠"[박주연의 메타뷰(VIEW)]②

박주연 기자 2022. 2. 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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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리움미술관 2022년 달력 제작 참여

이슬기 작가가 작업실이기도 한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그의 누비이불 작품들로 채운 2022년 리움미술관의 한정판 탁상 달력을 만지며 카메라를 보고 있다. / 이슬기 제공

삼성은 1996년부터 명화를 넣은 VIP용 달력을 제작했다. 일반종이의 수십 배 가격인 전문 판화지에, 예술작품을 엄선해 한정판으로 제작하기에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삼성에서 달력을 받았는지’ 여부가 사회적 지위를 가늠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돌았다. 2000년부터 일반 판매를 시작했는데, 8만원(2005년도 기준)이라는 고가였음에도 새해가 되기도 전에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삼성은 2016년부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등을 이유로 달력 제작을 중단했다.

2020년 리움미술관이 한정판 달력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달력은 열두명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했는데, 올해 달력은 오직 한 작가의 작품으로만 채웠다. 재불(在佛) 설치미술가 이슬기(50)의 누비이불 작품 12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우물 안 개구리’ 등 한국 속담을 경남 통영 누비 장인과 협업해 색색의 전통 누비이불로 표현해낸 작가의 대표작이다. 리움미술관이 새해를 알리는 첫 주인공으로 낙점했다는 건 작가의 역량과 비전 검증은 이미 끝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 수상자이기도 한 이슬기 작가를 e메일과 국제전화로 인터뷰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 동동다리 프로젝트 부분 2020-2021 / Seulgi Lee ⓒ Adago Paris 2022 / 사진 홍철기

1992년 지인에게 누비이불 선물 받아
그때부터 매력에 빠져 직접 만들기 시작
한국의 속담들 이불 문양으로 표현

-리움미술관이 5000부를 제작해 배포한 2022년 달력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나요.

“지난해 리움미술관이 달력 작업을 요청했어요.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미술관 측은 이불 작업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2015년부터 해온 ‘이불 프로젝트 U’ 중 각각의 달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추천했어요. 속담과 계절을 염두에 두고 순서를 정했죠. 이불 작품은 실제 이불과 똑같은 크기인 195×155㎝로 완성하는데, 달력 제작을 위해 이를 사진으로 촬영했어요. 하나의 미니어처 전시라고 생각하면서 작업에 임했죠.”

-누비이불을 작품화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파리로 건너온 게 1992년이었어요. 당시 지인이 찬란한 색깔의 누비이불을 선물해줬죠. 너무 예쁘더라고요. 프랑스 친구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어 한국 방문 때마다 찾아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어요. 더 이상 안 만들더군요. 직접 작품으로 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일상생활에서 쓰는 보편적 물건인 이불을 현실과 꿈의 경계 공간이라고 보고, 이불 문양에 어떤 이야기를 입히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불 문양에 속담을 접목한 거군요.

“한국의 속담을 들으면 바로 어떤 그림이 떠올라요. 위트도 있지요. 그런 속담을 문양으로 담고자 기하학적 구성을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통영 누비 장인들을 만났어요. 장인들이 한줄 한줄 이불을 누비는 모습이 마치 뭔가를 기원하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알고 보니 남아메리카의 이불 문양도 저마다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더라고요. 이불 작업이 인류학적 오브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 이케아와 협업으로 제작한 러그(2×3㎝). 물속의 물고기처럼 행복하다는 프랑스 속담을 인용했다.




-인류가 매일 덮고 자는 이불에 어떤 염원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군요.

“그렇죠. 사람은 이불 속에서 태어나고 자고 사랑하고 아프고 휴식하고 죽잖아요. 속담을 그런 이불에 포개면 자는 이의 꿈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불이 사람한테 말을 거는 거죠.”

속담으로 문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작품은 귀를 길게 늘어뜨린 개의 옆모습을 누비이불 문양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한줄 한줄 누빈 방향에도 의미를 뒀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우물 안 개구리’의 경우에는 녹색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깡충깡충 뛰며 우물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떠올리며 아래위 방향으로 누볐다는 것이다.

-색상은 우리나라 전통 색상인 오방색을 사용했지요.

“이불 작품은 색깔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같은 색의 물감을 써도 나무에 칠해진 것과 천에 칠해진 색깔이 다르잖아요. 저는 반짝이는 색감을 돋보이게 하려고 진주명주를 사용했어요. 찬란한 빛깔의 진주명주를 한줄 한줄씩 누비면 볼록볼록해져서 빛의 반사각도에 따라 색깔 자체가 달라지니까요. 또 색의 구성은 서로 대조되면서도 약간은 촌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했어요. 웃음과 함께 친근감을 주고 싶었거든요.”

-직접 바느질도 합니까.

“아니에요. 제가 10분의 1 모형인 그림을 보내드리면 통영의 조성연 장인이 그대로 작업해 주세요. 한줄 한줄 작업해야 해 누비이불 한점을 완성하려면 한달 남짓 걸려요. 특히 누빔 방향이 다른 부분들을 이어나가는 건 엄청 어려운 작업으로 알고 있어요. 누빔의 성질 때문에 규격을 맞추기도 어렵고요.”

프랑스 국립그래픽조형미술재단(FNAGP)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이불 프로젝트 U’는 이후 광주비엔날레의 초청을 받았다. 호주의 빅토리아국립미술관, 파리와 스위스 박물관 등도 이불 프로젝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에르메스 측과 협업해 한정판 이불을 출시하기도 했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한국공예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 장식미술관 회장이 에르메스 대표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예요. 전시가 끝난 후 에르메스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어요.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담배 피우는 호랑이’, ‘변방 늙은이의 말’,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다’ 등 세 작품을 캐시미어로 12점씩 제작해 2017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전시했어요. 한정판이긴 하지만 누구나 에르메스 매장에서 살 수 있었답니다.”

그는 이후에도 인간의 생활과 직접 관련된 사물과 언어(속담·민요) 등을 조형적 조각이나 설치로 표현했다. 공예 장인과의 협업도 계속했다.

‘U: 나비의 꿈’ / Seulgi Lee ⓒ Adago Paris 2022 / 이슬기 제공


2017년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방문 시작으로
다양한 나라의 장인 직접 만나 작업과정 관찰
멕시코서 20일간 머물며 함께 생활하기도


-지난해 ‘올해의 작가상 2020’ 수상자로 뽑혔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한 작품 ‘동동다리거리’의 소재는 문짝이었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을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광장으로 보려고 했어요. ‘문들이 열린 공간’을 떠올렸죠. 이 전시가 있기 전,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창호지가 없는 기하학적 문양이 들어간 문살이 햇빛을 걸러내는 기능을 하는 것을 봤어요.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살로 관심이 옮아갔죠. 한국의 문살은 저마다 이름이 있고, 여자 방, 남자 방의 문살이 서로 달라요. 그런 점들을 고려해 문살의 전체 모양과 그 하나하나의 짜임새에 새로운 의미를 두고자 했어요.”

-여인이 부르는 야한 노래를 문살 안에 담았다고요.

“고려시대 여인이 불렀다는 ‘동동’이라는 노래를 넣고 싶었지만 정확한 장단을 찾지 못했어요. 하는 수 없이 가사를 보고 제가 임의로 해석한 장단을 단청 안료로 칠한 문살무늬에 입혔죠. 얼핏 보면 우물 정(井)자의 간단한 문양 같지만, 자세히 보면 1-3-3-2-2-4-4의 리듬으로 겹치게 했어요. 단청 장인인 김수연, 성호준, 주광관, 최태성님과 협업으로 완성했어요. 프로젝트 제목 ‘동동다리거리’는 ‘동동’이라는 노래 제목과 달거리의 거리를 붙인 거예요.”

-왜 남성이 아닌 여성이 부르는 야한 노래를 떠올렸습니까.

“몇년 전 마르세유 미술대학에서 워크숍 초청을 받았어요. 학생들과 위본느강의 원천을 찾아가는 프로젝트였어요. 가는 길에 여학생 몇몇이 신이 나서 옛날에 남자들이 불렀다는 야한 노래를 장난스럽게 부르더군요. 그 모습이 참 재미있었어요. 이후 여성들이 부르던 야한 노래를 찾기 시작했고, 작품에 접목했어요. 여성들이 부르던 야한 노래들은 남성들이 부르는 야한 노래보다 훨씬 더 은유적이거든요.”

-바구니 장인을 찾아 부르키나파소와 멕시코를, 토기 장인을 찾아 모로코를 여러 번 방문했지요. 작업을 위해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고, 또 인간의 상호작용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공예품을 찾고자 선사시대까지 공부해요. 2017년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방문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의 장인들을 만났어요. 여러 번 만나는 게 중요해요. 작업과정을 관찰하면서 충분히 대화해야 그분들의 노하우를 작품으로 풀어낼 수 있거든요. 모로코는 1년간 10차례 방문했고, 멕시코에는 20일간 머물며 함께 생활했어요. 멕시코 바구니장인협회 소속 여성들이 바구니 짜던 손으로 서로의 머리를 땋아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공예와 언어를 결합하는 작업을 계속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손으로 만드는 공예품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공동체와 어우러져 나오는 언어에 관심이 많아요.”

이슬기 작가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캠퍼스 커플로, 아버지는 대구 영남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가르쳤다. 1녀1남 중 장녀인 그는 중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성장하다가 서울 선화예고 졸업 후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1994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파리보자르)에 입학해 2000년 졸업했다. 1학년 때 모자이크를 익혔고, 3학년 때부터 설치 퍼포먼스와 개념미술을 배웠다.

2022년 1월 파리 자택에서 작업 중인 이슬기 작가 / 이슬기 제공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은 파리 어느 곳인가요.

“2006년부터 파리에서 동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작은 도시 바뇰레(Bagnolet)에 살고 있어요. 몽트뢰유(Montreuil)와 함께 작가들의 아틀리에(작업실)가 많은 동네죠. 저희 부부가 사는 곳은 2층 건물인데, 1층에 저희가 살고, 2층은 대학생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 커플이 거주해요. 2년간 손수 만들었어요. 집안의 기존 벽을 허물고 분리벽을 만든 후 모두 연회색으로 도배했는데요, 연회색은 날씨가 좋으면 엄청 환하지만 조금만 흐리면 어두워져요. 민감한 색깔이죠.”

-남편도 미술작가인가요.

“시몽 부드뱅(Simon Boudvin)은 현재 베르사유 국립조형대학원(ENSP) 교수이자 미술작가예요. 1999년 파리보자르 컴퓨터실에서 처음 만났어요. 남편이 일곱 살 연하의 후배인데,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인인 저보다 김치를 먼저 만들었다고 자랑할 정도라니까요(웃음). 2001년부터 1년 넘게 매주 금요일에 새로운 전시를 열었던 대안공간 ‘파리 프로젝트 룸(Paris Project Room)도 둘이 같이 만들었어요.”

-미술을 하는 데 부모님의 영향이 컸겠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어요. 다만 초등학생 때 동물원에서 열린 미술대회에 나갔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있어요. 저는 울타리 너머 사자와 그 앞의 저와 동생을 크레용으로 그리고 있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배경을 덧칠한 그림을 보더니 동전으로 긁어 그 뒤에 보이는 색깔이 드러나도록 하셨어요. 독일 화가인 파울 클레(Paul Klee)가 썼던 기법이라는 설명과 함께요.”

-아버지는 동양화, 어머니는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이 작가가 조형적 조각이나 설치미술을 선택한 까닭은 뭔가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술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부모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조각가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미술을 업으로 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작업을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더 커요.”

이슬기 작가가 2017년 10월 멕시코 오아하카 지방에서 바구니 장인들과 협업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슬기 제공


-유학지로 파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고등학생일 때 우상이 카미유 클로델이었어요. 아버지도 유럽 유학을 권유하셨고요. 서양화가 권순철·진유영 선생님 등 부모님의 지인들도 파리에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파리에 도착한 후 불어 공부 등 2년을 준비한 끝에 파리보자르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1학년 때 포르투갈 출신 선배가 모자이크 기법으로 작품을 근사하게 만들었는데, 거기에 매력을 느껴 1년 내내 모자이크 아틀리에에 다녔어요. 그때부터 공예에 본격적인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졸업 후에도 파리에 남은 이유는요.

“학교 졸업반 때 전시기획을 많이 했고, 더 많은 협업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예술 커리어를 시작한 이곳 파리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프랑스에서 30년간 체류했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 작가는 그간의 작품들에 가미한 유머에서도 드러나듯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오는 3월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덴마크 쿤스트할오르후스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전시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매커니즈즈즘>(Minimalism-Maximalism-Mechanismmm)에 참여한다. 9월에는 파리 주스 앙트르프리즈(Jousse Entreprise)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11월에는 상파울루 멘데스우드데엠(Mendes Wood DM)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루이뷔통 초청으로 한정판 카푸신 가방도 제작 중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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