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치인 지역상점 코로나 '이중고'.. "한집 건너 한집 폐업" [창간33 - 지방을 살리자]

김건호 2022. 2. 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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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사라지는 토종기업
'쇠락한 상권' 대구 동성로 가보니
'지역 랜드마크' 대구백화점 문닫자
인근 음식점·옷가게 등 줄줄이 폐점
관광특구 지정마저 무산 '앞길 막막'
온라인 마케팅으로 차별화 나서
꽃배달 등 정보통신기술 적극 활용
젊은 창업가 중심 스타트업 생겨나
"아이디어·기술력 갖추면 성공 자신"
지난 14일 오후 방문한 대구 대표 상권인 동성로의 건물에 ‘임대’라는 문구만이 남아 있다. 김건호 기자
“친구야 우리 대백 앞에서 만나자.”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2가에 위치한 대구백화점 본점, 이른바 ‘대백’은 대구시민들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다. 수많은 대구의 20대들은 동성로의 랜드마크인 대구백화점 앞 만남의 광장에서 약속을 잡았고, 이 백화점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카페와 음식점, 각종 보세전문 옷가게가 문전성시였다.

하지만 지난 14일 오후 방문한 동성로는 대구를 대표하는 상권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였다. 텅 빈 상가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었다. ‘한집 건너 한집이 폐업’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반월당역에서 대구백화점 본점으로 가는 동성로 거리는 과거 수많은 휴대전화 매장들이 젊은 고객들을 맞이했지만 지금은 폐업과 임대라는 문구만이 가게 유리창마다 붙어 있었다. 심한 곳은 건물 전체가 공실로 남아 있었다.

◆지방 기업들은 어떻게, 왜 사라져 가는가

27일 대구지역 상인들에 따르면 동성로 상권의 침체기는 대구를 대표하는 유통기업인 대구백화점 본점이 동성로에서 문을 닫으면서 시작됐다. 현대백화점에 이어 2016년 신세계백화점이 동대구역사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대구백화점은 2019년 경영 실적 악화로 결국 본점 폐업을 결정했다. 현재 대구백화점 본점은 주차장과 일부 물류창고로 이용 중이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여파가 대구를 덮치면서 대구 동성로의 상권은 사실상 죽었다는 게 인근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다. 동성로에서 귀금속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과거 대구백화점 본점을 중심으로 보세옷 전문점이 많이 들어섰지만 현재는 폐업을 한 집이 더 많다”며 “이제 동성로 상가에서 임대딱지를 보는 것은 일상이 됐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브랜드가 입점하는 동성로 2가와 3가의 점포는 월 임대료만 수천만원에 달하다 보니, 한 번 문을 닫으면 수개월째 새 주인을 찾기가 어렵다. 동성로에서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 “은행 대출금 이자와 주변 시세를 고려하다 보니 무작정 월세를 내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3분기 동성로 상가 공실률은 22.5%로 다섯 곳 가운데 한 곳 이상이 비어 있는 상황이다. 전국 평균 공실률 10.9%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대부분의 상가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대구 중구청은 2020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동성로를 끼고 있는 성내1·2동 내 일반음식점 폐업 업체 수가 161개소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동성로 상인들은 상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관광특구 지정을 기대했지만, 그마저 최소 관광객 수 기준을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관광특구 지정의 경우 외국인 방문객 수가 10만명을 넘어야 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청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동성로 등 대구 중구 내 상권 활성화를 위해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진 이후 관광특구 지정을 다시 신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단 동성로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구와 맞닿아 있는 경북 경산에서는 최근까지 카페전쟁이 한창이었다. 이곳은 영남대학교를 비롯해 대구대학교 등 13개의 대학이 밀집해 있어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다.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는 경산 성암산 아래 2㎞ 남짓한 거리에 대형 카페 4개가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곳에 처음 문을 연 곳은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였던 카페베네와 대구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 카페였던 하바나 익스프레스였지만 얼마 뒤 대규모 프랜차이즈 카페 두 곳이 공격적으로 매장을 열면서 두 카페는 폐업수순을 밟았다.

◆정보통신기술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다시 뛰는 지방 기업

하지만 이 같은 지방 기업들의 몰락 원인을 단순히 대기업의 진출에서 찾기엔 무리가 있다. 전국 최초 창고형 할인매장이었던 대구 북구의 홈플러스1호점은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지난달 24일 폐업이 결정됐고, 대구스타디움점은 이미 지난해 6월 문을 닫았다. 홈플러스 대구스타디움점에서 매장을 운영했다는 김미숙씨는 “처음 개점할 때만 해도 시지와 고산 등 수성구 주민들이 꽤 많이 이용했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홈플러스 매장 자체에 사람이 오지 않다 보니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지방에 위치한 각 기업들은 온라인 소비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면서 결국 침체기를 맞게 됐다.

이에 지방 기업들은 온라인 유통 플랫폼을 강화하고 자신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짜고 있다. 현재 대구백화점은 대백프라자점을 운영하며 경영의 효율화를 꾀하면서 자사몰인 대백몰과 네이버, 11번가 등에 온라인 유통판로를 개척했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자사몰인 대백몰과 온라인 유통 판로를 통해 지난해 신장에 이어 올해 두 자릿수 성장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며 “다시 지역 주민에게 인정받고 경쟁력 있는 유통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방의 젊은 창업가들을 중심으로 정보기술(IT)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부산에서 첫발을 뗀 꽃배달 플랫폼 플디도 그중 하나다. 플디는 소비자와 꽃집을 바로 연결해 주는 플랫폼으로 주문에서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한다. 플디 개발사인 체인지메이커의 박명환 대표는 “부산에서 시작한 플디는 전국의 플로리스트들과 고객들을 이어주는 꽃배달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나만의 아이디어와 기술력, 팀원들 간의 협력만 있다면 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대구인공지능(AI) 허브 운영을 맡고 있는 박혜진 경북대 교수는 “AI를 비롯해 블록체인, 유통의 디지털화 등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지역인재들과 지역기업들이 생겨나야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며 “지자체의 지원과 지역 대학의 수준 높은 교육,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의 취업이 선순환이 되어야 지방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19일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이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지방기업을 살리기 위한 핵심 요건으로 지방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지자체·지방대·기업 힘모아 ‘상생형 일자리’ 만들어야”

“지방대가 살아야 인재가 살고, 지방기업이 살 수 있습니다.”

19일 만난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지방기업을 살리기 위한 핵심 요건으로 지방대를 꼽았다. 지방대가 각지의 교육커뮤니티로 자리를 잡고, 지역에 인재들이 갈 수 있는 매력적인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날 고별강연을 앞둔 김 위원장을 만나 문재인정부 마지막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서의 소회와 지방 기업 활성화와 지역 인재 창출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오랜 시간 경북대 교수로 몸담은 김 위원장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는 지역 대학 활성화와 지역 인재 창출을 위한 고민이 묻어났다.

김 위원장은 “20대 초반의 젊은 층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것은 양질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며 “결국 지역 대학들이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지역 대학을 만들고 정부가 현재 속도를 내고 있는 상생형 일자리 사업과 도시융합특구 사업을 통해 지역 인재들이 가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회사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연극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스웨덴의 말뫼를 예로 들었다. 과거 조선산업이 유명했던 말뫼는 청정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뉴타운을 개발하고 첨단정보 기술과 바이오산업 대학을 육성해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했다. 김 위원장은 “말뫼와 같이 정보기술(IT)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대학들이 새로 탄생해야 한다”며 “혁신적인 대학들이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고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최근 이차전지 산업을 필두로 지역 대학과 지자체, 기업들이 상생하는 상생형 일자리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북 경주의 위덕대 앞에서 시작해 현재 2200명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낸 에코프로와 상주에 음극재 공장을 짓는 SK머티리얼즈, 구미에 자리를 잡은 LG BCM 등 미래먹거리인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과거 정부가 힘을 쏟은 공공기관의 일자리는 그 채용인원이 제한적이었지만 이 같은 민간기업이 함께하는 지역상생형 일자리를 통해 향후 기업이 지방에 뿌리내리고, 지역 대학은 기업에 맞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 유치와 지역 대학 육성을 위해 필수적으로 지자체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SK바이오사이언스와 안동대의 협력을 꼽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손잡고 생명백신공학전공을 개설한 안동대 졸업생은 안동에 위치한 이 회사 백신센터에서 근무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같은 기업과 지방 대학의 협력에 안동시는 매년 100억원 이상의 지원을 약속하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예산이 크지 않은 안동시가 적극적으로 기업과 지역 대학의 상생을 위해 노력한 것이 일자리 창출과 기업유치 등 결과로 이어졌다”며 “최근 이같이 지역상생형 일자리 창출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김 위원장은 차기 정부를 향해 “보다 책임 있고 권한 있는 균발위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자문위원회로는 한계가 있다”며 “책임을 지지 못하고,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균발위가 프랑스의 국토평등위원회(CGET) 등이 국가기관으로 정책을 실행하는 것처럼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도를 뛰어넘는 초광역권 개발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자문기구 성격인 균발위를 대통령 소속 중앙 행정기관으로 만들자는 내용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해 제외됐다. 김 위원장은 “차기 정부에서의 균발위는 중차대한 일들을 실행하고 책임을 지는 기관이 되었으면 한다”며 “관련 부처의 보다 전향적이고 혁신적인 결단을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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