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연모·각시탈에도".. KBS '동물학대 촬영' 논란 일파만파

노지민 기자 2022. 1. 2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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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개 동물권 보호단체, KBS 앞에서 '동물학대 추가 고발'
"동물 학대하고 죽인 책임자 강력 처벌, 제도적 장치 필요해"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낙마 촬영 이후 말이 죽은 '태종 이방원' 외에도 KBS의 여러 드라마에서 촬영을 위한 동물학대가 반복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동물보호연합을 비롯한 100여개 동물권 보호단체들은 26일 KBS드라마센터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 KBS 별관 앞에서 'KBS의 관행적 낙마(落馬) 동물학대를 추가 고발하는 2차 기자회견'을 가졌다.

'말 고꾸라뜨리기'로 불리는 '낙마' 촬영은 전력질주하는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서 말을 넘어뜨리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태종 이방원'에서의 태조 이성계 낙마 장면도 이렇게 촬영됐다. 동물권 보호단체 '카라'가 공개한 당시 영상을 보면 6살 말 '까미'는 다리가 당겨진 뒤 공중으로 떠올랐다 머리부터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허공에 발길질을 했던 까미는 촬영일로부터 약 일주일 뒤 죽었다. 까미는 5살까지 경주마로 사용되다 성적이 좋지 않아 말 대여 업체에 팔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권 보호단체들이'KBS의 관행적 낙마(落馬) 동물학대를 추가 고발하는 2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단체들은 “KBS는 '태종 이방원' 뿐 아니라 '정도전' '연모' '각시탈' 등에서도 상습적이고 관행적으로 '말 고꾸라뜨리기' 낙마를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KBS는 국민 수신료를 받아 동물학대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들이 공개한 드라마 장면에는 달리던 말이 머리부터 고꾸라져서 목이 꺾인 채 넘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각시탈', 2014년 '정도전', 지난해 연말 인기를 끌었던 '연모' 등 상당수 사극에서 말이 넘어지는 장면이 확인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방영된 '용의 눈물'의 경우 살아있는 노루를 내던지는 모습이 동물학대 장면으로 지목됐다.

해외에선 이미 수십년 전 금지된 동물학대가 한국 공영방송에서 자행됐다는 비판도 있다. 1980년 영화 '천국의 문'에서 말 5마리가 사망한 일을 계기로 '미국인도주의협회'(AHA)는 '미국배우조합'(SAG)과 협약을 맺어 동물 촬영을 반드시 모니터링하기로 했고, '영화 촬영 시 동물 안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1995년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경우 수많은 말이 동원돼 싸우고 고꾸라지고 창에 찔리는 장면을 말 모형과 CG를 이용해 제작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와이어를 사용해 말을 고꾸라뜨리는 촬영 기법은 미국에서는 1939년 이후로 금기시됐다”며 “83년이 지난 2022년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 드라마에서는 '말 고꾸라뜨리기' 촬영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멀쩡한 동물을 학대하고 죽인 책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더이상 동물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권 보호단체들이'KBS의 관행적 낙마(落馬) 동물학대를 추가 고발하는 2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들 단체는 이날 KBS 제작진과 면담을 통해 10가지 요구 사항을 전했다. △촬영 현장에서 사용된 동물들 조사해 공개 △동물안전을 위한 가이드라인 존재 여부와 사건 발생 경위 공개 △동물학대 사실 인지 여부 공개 △'태종 이방원' 촬영지에 수의사 배치 여부 공개 △말을 공급하는 동물 대여업체의 시설, 복지조건 등 공개 △국내제작진협회·드라마협회·영화협회·배우협회 등에 협약문 공포 및 '동물출연 미디어가이드라인' 작성 및 이행 추진 △AHA와 같은 인증제도 국내 도입 검토 △'낙마' 사건 기획·연출 책임자 문책과 공개 사과 △방송사·제작진의 책임감·진정성 있는 자세 △'태종 이방원' 폐지 등이다.

이들은 또한 KBS 측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지난 21일 '태종 이방원'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 이후 두 번째다. 앞서 카라 역시 서울 마포경찰서에 해당 드라마 촬영장 책임자를 관련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물리적 방법이나 도박·광고·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말을 죽게 한 것이) 확정적 고의는 아니더라도 미필적 고의는 충분하다고 본다. 3미터 높이에서 고꾸라지면 부상을 입거나 죽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면서 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말 얼굴 모양의 탈을 쓰고 다리에 줄이 걸려 목이 꺾이면서 넘어진 말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권 보호단체들이'KBS의 관행적 낙마(落馬) 동물학대를 추가 고발하는 2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노지민 기자

KBS는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작 관련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KBS는 24일 두 번째 사과문을 통해 “동물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촬영해야 할 장면은 없다. KBS는 이번 사고를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불러온 참사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이번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외부기관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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