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민화 외길' 서공임 화백, 호랑이만 300점 그린 까닭은
[경향신문]
예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한반도를 대표하는 영물이자 수호신으로 여겼다. 그림이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맹수이면서도 백두대간을 지키는 신이자 정을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선한 존재로 그려졌다.
‘검은 호랑이해’인 임인년을 맞아 경기 하남시 유니온아트센터 갤러리오엔에서는 ‘호랑이 민화전’이 열렸다. 위풍당당 기개 넘치는 호랑이를 담은 ‘영웅’ 시리즈와 다채로운 표정의 호랑이를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초상’ 등 호랑이 그림 30여점이 전시됐다. 생동감 넘치는 호랑이 작품은 대한민국 대표 민화작가 서공임 화백(61)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지난 20일 갤러리에서 만난 서 화백은 “호랑이는 복을 부르고 액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예부터 신년에 호랑이 그림을 대문과 집 안 곳곳에 붙여 가족이 무탈하기를 바랐다”며 “장기화된 코로나19에 지친 분들을 위해 호랑이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산맥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이는 기개 넘치는 호랑이부터 입을 크게 벌리고 호방하게 웃는 호랑이, 새침한 표정을 짓거나 의뭉스러운 표정의 호랑이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호랑이들은 무섭기보다는 친근하고 유쾌하다.
서 화백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면 호랑이 얼굴과 닮은 점들이 떠오른다”며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고 말했다.
올해로 42년째 민화를 그리고 있는 서 화백은 2010년 1월 백호랑이해를 맞아 준비한 ‘100마리 호랑이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호랑이 그림 300여점을 그렸다.
서 화백은 유독 호랑이 그리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호랑이는 민화에서 상징하는 해학과 익살이 가장 잘 표현된 동물”이라며 “호랑이를 그릴수록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껴져 분신 같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김제에서 작은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서 화백은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꿨지만 집안 형편상 미대 진학이 어려웠다. 서 화백은 고등학교 졸업 후 화실 직원을 구한다는 전단을 보고 문화생으로 입문했다. 민화를 그려 국내외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릴 때 마을 잔칫날 병풍에서 보고 반했던 그림이 민화임을 알게 됐다고 서 화백은 말했다.
민화의 밑그림부터 채색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가며 꿈을 키우던 서 화백은 화실이 경기도에서 인사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고 회상했다. “인사동은 신세계였어요. 매주 수요일이면 각종 전시회를 보러 다니고 청계천 헌책방에서 민화 관련 자료를 구해 매일 연습을 했죠. 민화 작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수묵화도 따로 배웠어요.”
이후 서 화백은 1985년 인사동에 개인 화실을 마련했다. 1996년 10월에는 백상기념관에서 민화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개인전 이후 민화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서 화백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민화협회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청와대는 서 화백이 그린 ‘일월오봉도’를 선물하기도 했다.
서 화백은 세계에 민화를 알리기 위해 2010년부터 중국, 프랑스, 폴란드, 아르헨티나, 헝가리, 독일, 스페인, 러시아 등에서 민화 전시회를 열었다. 코로나19로 멈췄던 해외 민화 전시는 올여름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재개할 예정이다.
서 화백은 연세대 미래교육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민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과거에 비해 민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관련 인구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까치는 기쁜 소식, 모란은 부귀 등 민화에는 그림마다 각기 다른 상징성이 있는데 우울한 것은 없고 모두 다 행복한 상징이에요. 색감도 굉장히 해맑고 경쾌해 ‘행복을 담은 그림’이라고 볼 수 있어요.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민화를 통해 밝은 에너지를 충전하고 행복이 전해지면 좋겠어요.”
‘호랑이 민화전’은 2월13일까지 열린다. 2월22일부터는 유니온아트센터 갤러리오엔 남해 전시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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