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름 자영업자]③'코로나 불황'에 "30년 노하우 소용없었다"

조현기 기자,김도엽 기자 2022. 1.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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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폐업이 축복"..고사 상태 직면한 판교 상권
자영업자들, 제대로된 영업손실 보상 필요 호소

[편집자주]그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라고 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이 방향이 맞는지, 정말 출구는 있는지… 그녀는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늘어난 빚은 개미지옥처럼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사이 눈시울은 붉어졌다. 코로나19가 자영업자에게 남긴 상처는 상상 이상이었다. 30년 베테랑도, 젊은 패기로 똘똘 뭉친 30대 청년 사장도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1월19일이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2년을 맞게 된다. 지난 2년간 처절하게 살기 위해 투쟁해 온 우리 '이웃' 자영업자의 얘기를 들어봤다.

지난 7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매장이 폐업해 텅 비어 있다. 2022.1.7/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성남=뉴스1) 조현기 기자,김도엽 기자 = "30년 노하우도 소용없다. 누가와도 문 닫는다"

지난 13일 경기 성남 판교역 인근 한 상가 건물에서 만난 오모씨(70세·여)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난 30년 동안 장사를 하며 흔히 '산전수전'을 다 이겨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버텨내지 못했다. 결국 지난 2020년 가게 문을 닫았다.

오씨는 1990년대 초 집안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자 당시 수중에 있던 전 재산 3000만원을 들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그때 나이가 마흔이었다.

서울 강남 쪽에서 칼국수집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 3곳에 매장을 낼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장사가 더 잘 될 정도였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를 맞았다. 그렇지만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기회의 땅인 판교를 주목했다. 10년 전 판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현대백화점도 없었고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오씨는 고소득 직장인들이 많은 판교에서 횟집을 운영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고 과감히 진출했다. 그 결과 하루 최대 200만원, 연(年) 매출 기준 카드로만 4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등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코로나19 직전 주위에선 오씨에게 권리금을 5000만원, 1억을 더 얻어줄테니 가게를 양도하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는 오씨의 30년 사업 노하우로 이겨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심지어 재기 불능한 상황까지 오씨를 몰아갔다. 오씨는 지난 2020년은 기억하기도 싫다면서 "1월에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봄엔 사람이 점점 없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결국 심각해지더니 하루에 광어 한 마리 3만5000원 팔았다. (그런 와중에) 인건비는 실장님 하루 15만원, 아주머니 하루 10만원씩 꼬박꼬박 나갔다"며 "순식간에 월세도 몇 달 못 내니 보증금도 동나 버렸다"고 고백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특히 오씨가 폐업할 무렵인 2020년 하반기엔 2차·3차 대유행이 몰아닥쳤다. 오씨 같은 베테랑도 버티기 힘든 수준의 강도였다. 실제로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대문원조통술집, 25년 전통의 불광문고 등이 폐업을 선언했다.

통계가 이를 증명해준다. 한국신용데이터와 경기지역경제포털에 따르면 당시 서울 외식업 카드매출액은 전년 대비 14.9% 감소했고, 10월에 들어서도 6.9% 줄었다. 2020년 11월 서울 자영업자 카드 매출액은 전년 대비 6.1% 감소했다. 이어 12월에는 무려 전년 동기 대비 28.2% 급감했다.

오씨는 "문을 열면 손해 보는 상황에서 장사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며 "빚이라도 지지 않았으니 얼른 폐업해야겠다고 판단해서 문을 닫게 됐다"고 눈물을 훔쳤다.

또 "아침 10시에 출근해 새벽 4시~5시까지 일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손해였다"며 "업력이 오래됐고, 얼마나 장사 노하우가 있든지 소용없다. 현재 상황 속에서는 누구나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폐업을 하면서 더 서글펐던 점은 수천만원을 들여서 인테리어 원복시키고, 직원들 퇴직금이랑 돈을 주면서 제가 모았던 모든 돈들을 다 썼다. 제 노후자금까지 다 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을 훔치던 오씨는 손자가 어린이집에서 올 시간이 됐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씨는 폐업 후 지난 1년반 동안 손자를 돌보며 딸 집에 얹혀 지내고 있다.

판교역 근처 모습 © 뉴스1 장도민 기자

◇ 15년만에 다시 꺼내든 담배…본업에 쿠팡까지 하루 18시간 일한다

오씨의 말대로 판교 상권은 현재 고사 직전 상황이다. 특히 판교역 상권은 다른 상권에 비해 더 심각하다. 상권 주요 이용자들인 IT기업 근로자들이 코로나19 이후 2년 동안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외식 금지령까지 내리면서 유동인구가 급감했다.

상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백종원이 와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 판교역 중심 상권에서 점심 시간부터 저녁 퇴근 시간까지 직접 지켜본 결과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였다.

판교에서 먹태 맛집으로 소문난 한 호프집 사장님은 15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최근 다시 꺼내들었다. 그는 "하루 100만원 팔았는데, 어제는 17만원 팔았다. 한 달 월세가 600만원"이라며 "코로나 2년 동안 돈을 끌어 쓸 수 있는 곳에서는 다 끌어 쓴 상황"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이어 "17살, 11살, 9살 애가 3명이 있다"며 "저녁 9시에 일 마치고 쿠팡 알바 다녀온다. 차라리 폐업하고 막일이라도 뛰고 싶은 심정인데…"라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전금자 판교역 상인회장은 "내가 속상해 죽겠다. 그래도 꼭 버텨야돼"라고 외치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먹태집 사장님은 저녁 장사 준비를 하러 가야된다며 떠났다.

전 회장은 "저도 사업을 30년 가까이 했는데 지금이 최악"이라며 "주위에서는 폐업하는 게 오히려 축복이라는 말까지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빚이 있으면 폐업도 못하고 정책자금이랑 대출 다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곳 판교역 상인들은 지금 죽지 못해 사는 심정인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판교역 상인들의 절규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델타변이와 오미크론 변이는 경기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2021년 12월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BSI)는 39.3로 전월 대비 26.9포인트(p) 급락했다. 전통시장 체감 BSI는 전월 대비 25.8p 급락한 41.2를 기록했다. BSI가 100을 초과하면 경기가 호전된 것으로, 미만이면 악화한 것으로 본다.

올 하반기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는 Δ32.8(7월) Δ34.8(8월) Δ57.6(9월) Δ62.5(10월) Δ66.2(11월) Δ39.3(12월) 등의 추이를 기록했다. 델타 변이로 인해 지난 7월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면서 소상공인 BSI는 32.8을 기록, 전월(53.6)보다 20.8p 급락했었다. 지난 8월에는 전월 대비 2.0p 상승하는 데 그친 34.8을 기록했다.

델타 변이가 완화되면서 지난 9월 22.8p 급상승하며 57.6을 기록했다. 이어 10월에는 4.9p 또다시 상승하며 62.5를 기록, 올해 들어 처음으로 60대 수준에 다시 진입했다. 위드코로나가 선언됐던 11월엔 66.2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다시 거리두기로 돌아간 12월에는 39.3으로 급락했다.

(자료제공=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 뉴스1

◇ 영업손실 제대로 된 보상 없으면 재기 불가능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영업을 하지 못해 발생한 손실을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고 폐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전금자 회장은 "여기는 점심, 저녁 장사 피크 때 반짝 몰리는 오피스 상권"이라며 "저녁에 (9시에 문을 닫으면) 제대로 영업할 수 없다. 영업 손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은 "솔직히 국가에서 말하는 방역지원금, 손실보상제 너무 어렵다. 그리고 피해 업종에 집중되는 것 같지 않다"며 "우선 순위를 두고 영업제한을 받는 업종에 우선적으로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8년 동안 장사를 했다는 양모씨는 "정부에서 돈을 몇 조원 푸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 알고보면 다 대출이다. 아무리 낮은 금리라도 이제 정말 힘든 상황"이라며 "폐업을 하고 싶어도 대출 갚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축복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가 심각한 업종과 상인들이 버틸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며 "정치권에서 대선 국면을 앞두고 너무 선심성으로 돈을 풀지 말고, 정말 효과적인 곳에 집중 지원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달라"고 호소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거리의 상점이 불을 밝힌채 영업을 하고 있다. © News1 황기선 기자

cho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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