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리 없어 광주 간다고 했는데.. 이런일 있을 줄 몰랐다"

구현모 2022. 1. 1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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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들, 사고현장서 '발만 동동'
"사람 발견됐다" 소식 전해지자
통제선 앞까지 뛰쳐나가기도
타워크레인·옹벽 붕괴 우려에
본격 수색 2∼3일 더 기다려야
"내 가족 살리려 추가 희생 안 돼
위험 판단되면 수색 중단 동의"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전 상황 영상 공개
"39층 콘크리트 타설 공사 도중
아래층서 설비 마감 동시 작업
지지대 철거로 하중 못 견딘 듯"
전문가들 "부실 시공" 한목소리
사고 사흘 만에 실종자 1명 발견
중대재해 속출에도 조치 미흡
피해 5명 모두 하청소속 근로자
원청 압력에 안전 도외시 분위기
13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뉴스1
“설날이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3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현장에는 눈이 거세게 내렸다. 사고 현장 앞에 선 실종자 가족들의 머리와 어깨에는 어느새 눈이 가득 쌓였지만, 이들은 하염없이 현장만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평택에서 내려온 A(60)씨도 쉽사리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A씨의 남편은 아파트 붕괴 당시 현장에서 실종된 6명 중 1명이다. A씨는 “남편이 평택에 일거리가 없어 광주로 가야 한다고 했었다”며 “단 한 번도 위험한 현장이라 말한 적 없어 이런 일이 있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이 많다던 남편은 평소 주말에도 거의 집에 올라오지 못했다. A씨는 “새해가 됐는데 한 번 보지도 못한 게 너무 후회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모부가 실종됐다는 B씨 역시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고 현장 주위를 맴돌았다. B씨는 “이모부가 31층에서 실리콘 작업을 했는데 돌아오지 못했다”며 “휴대전화도 꺼지고 생사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건물 주변을 한참 서성이다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붕괴 사고 사흘째를 맞은 13일 오후 실종자 수색이 이어지는 현장에 눈이 쏟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소방당국이 현장에서 사람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고수습본부에 머물던 실종자 가족들은 급히 경찰통제선 앞까지 뛰쳐나가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사고 현장 지하 1층에서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했다. 발견된 사람은 흙더미에 매몰된 상태라 생사와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철선과 콘크리트 등 적치물을 치우는 대로 구조작업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건물 앞 도로에도 잔해가 많아 크레인 투입이 어려워 구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더딘 구조 속도는 실종자 가족들의 속을 더욱 까맣게 태우고 있다. 이날로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3일째가 됐지만, 안전 문제가 있어 본격적인 수색을 하려면 시간이 2∼3일 정도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고가 난 건물 옆에 세워진 타워크레인 상태가 불안정해 해체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방당국은 16일까지 크레인을 해체할 계획이다. 붕괴 현장에서 사고 당일까지 타워크레인에서 작업을 했던 타워크레인 기사 박모씨는 “크레인을 해체해야 구조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크레인이 뒤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해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 공사 붕괴 사고가 발생한 광주 화정동 화정아이파크 상공 촬영. 39층 높이의 아파트 3분의 1 가량의 바닥과 구조물, 외벽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다. 외벽에 설치된 타워크레인도 추가 붕괴 우려가 있다. 광주시 제공 영상 캡처
실종자 가족들은 무리한 공정으로 인한 인재(人災)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이자 인테리어업을 겸하는 안정호(45)씨는 “작업자들이 앞서 가족들과 통화할 때 일이 많다고 했고, 현장이 너무 춥다고 했다”며 “동절기에는 물 공사도 거의 안 하고, 콘크리트 타설 완료 후 어느 정도 층고가 올라가면 소방설비와 창호작업을 하는데 여기는 5층을 지으면서 스프링클러와 창호작업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인근 편의점 직원도 건물이 왜 이렇게 빨리 올라가느냐고 할 정도로 육안으로 봐도 양생이 제대로 안 된 부분이 있었다”며 빠른 공정 문제를 지적했다.
다만 가족들은 실종자 구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내 가족 살리자고 누가 희생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소방당국의 수색 방식에 동의하며 추가 희생 방지를 우선으로 구조에 힘써달라”고 호소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야간에도 실종자 구조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나 안전상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중단하기로 했다.
거푸집 ‘두둑’ 이상 발견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의 외벽이 무너지기 직전 영상이 13일 공개됐다. 공사 현장 작업자가 붕괴 사고 직전인 11일 오후 3시35분쯤 촬영한 2개의 동영상에는 외국인 작업자들이 39층 바닥에 설치된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장면 등이 찍혀 있다. 사진은 작업 중 ‘두둑’ 소리를 내며 내려앉기 시작한 거푸집(붉은색 원) 모습. 연합뉴스
◆사고 10분 전 바닥 꺼져… 6명 구할 기회 있었다

“저기 무너졌다, 저기 무너져. 어우 거기도 떨어졌네.”

지난 11일 오후 3시 35분 전후 광주 서구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현장 201동 39층 꼭대기에서는 중국인 작업자들의 다급하고 한탄 섞인 외침이 울려 퍼졌다. 현장에서는 39층의 바닥 면(슬래브)에 해당하는 곳에 거푸집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콘크리트가 쌓인 바닥 면은 평평해야 했지만, 바닥 가운데가 움푹 패어 주저앉아 있었다. 갑자기 ‘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거푸집이 꺾이듯 치솟아 들리기도 했으며 타워크레인 방향에서 ‘펑펑’ 소리가 나자 작업자들은 계단을 통해 긴박하게 대피했다.

붕괴사고 10여 분 전 상황이 담긴 총 2분 10여초 짜리 2개의 영상이 업체 관계자에 의해 13일 공개되자 시민들은 부실시공이 사고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붕괴사고는 공기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면서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골조공사와 설비·마감공사를 동시에 진행한 패스트 트랙 공법이 참사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골조공사 바로 아래층에서 설비·마감공사를 하는 패스트 트랙을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A씨는 “골조공사를 하면서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채우는 작업)한 콘크리트가 굳기까지 슬래브를 받쳐주는 철제 지지대를 유지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 공사의 경우 39층에서 타설공사를 하는데, 아래층에서 창호 설치와 배관 등 설비와 마감공사를 동시에 했다”고 말했다. 설비와 마감공사를 원활하게 하려면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다. A씨는 “마감공사를 하는 작업자들의 공간확보를 위해 철제 지지대를 조기에 철거해 위층에서 무너져 내리는 슬래브의 하중을 견디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의 골조공사를 할 경우 설비나 마감공사는 대개 5층 정도 사이를 두고 한다. 하지만 이번 붕괴현장에서는 아래층에서 설비와 마감공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번 붕괴 아파트의 공사기간은 2019년 6월부터 올해 11월까지 42개월이다. 붕괴된 시점에는 이미 골조공사가 끝났어야 한다는 게 건설업계의 평가다.

골조공사와 설비공사를 동시에 진행한 것은 이 같은 공기단축을 위해서다. 공정속도를 높이기 위해 패스트 트랙으로 공사를 하다가 건물 붕괴라는 참사를 낸 셈이다.

광주대 건축공학과 송창영 교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바닥슬래브 하부에 받치는 동바리(공사현장에서 바닥을 받쳐주는 철제 기둥)의 철거 시기가 너무 빨랐다”며 “사고현장은 공정을 단축하기 위해 설비와 마감 등 후속공정이 바로 뒤따라 왔다”고 지적했다.
눈 쏟아지는 광주 붕괴사고 현장. 연합뉴스
송 교수는 “동절기 공사 특성상 콘크리트 강도가 약해 오히려 철제 지지대를 더 오래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붕괴 원인으로 콘크리트 양생(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보호하는 작업) 불량이라는 부실시공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장 작업자들은 “겨울 공사인데도 불구하고 일반 아파트들처럼 4∼5일 만에 한 층씩 올렸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보통 아파트 1개 층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에는 하절기 5~6일, 동절기 12~18일 가량이 소요된다. 사고가 발생한 201동은 전체 39개 층인데 이번에 23~38층, 모두 16개 층이 붕괴됐다. 통상적인 소요기간을 기준으로 역순해보면 23층의 경우 9월부터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이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콘크리트가 완전히 압축강도를 내기 위해서는 4주간의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붕괴 아파트에서는 무게를 지탱하는 하부 2개 층의 콘크리트가 겨울철 제대로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층을 쌓아 올리다 거푸집이 무너지고 그 충격으로 건물이 순차적으로 붕괴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소 12~18일간의 충분한 양생기간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실종자 6명이 발생한 광주 서구 주상복합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 13일 오후 안전사고 예방 문구가 남아 있다. 연합뉴스
◆현대산업개발, 산재예방 위반 명단공개만 5차례

외벽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원청으로 있는 사업장에서 최근 5년간 중대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이은 사고의 피해를 본 노동자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다.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되지만 하청이 원청의 압력으로 공사기간 단축·비용 절감을 안전보다 우선시해 사고로 이어지는 현장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고용노동부가 해마다 공개하는 ‘중대재해 발생 등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업장 명단’에 따르면 2016~2020년 공개 대상에 포함된 현대산업개발 관련 사고는 5건으로 집계됐다. 공개 대상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가운데 수사·기소를 거쳐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사업장 등이다. 공개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실제 현대산업개발과 관련 있는 사망 사고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2019년 4월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주택 재건축 정비 공사 과정에서 단열재 더미에 깔려 현대산업개발 하청업체 근로자 1명이 숨졌으나, 공개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명단에서는 빠졌다.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건설 현장 입구. 연합뉴스
고용부에 따르면 공개된 사건의 사망자는 모두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9년 경기 파주 아파트 건설공사 도중 근로자 1명이 낙하물 방지망 해체작업을 하다 추락해 유명을 달리했다. 2017년에는 경남 거제시의 양정·문동지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과 경남 거제시 양정·문동지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2016년에는 경기 평택 주한미군 기지 이전 공사 현장과 경기 수원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비보가 잇따랐다.

광주 서구의 화정아이파크 공사 관련 민원 조치와 인허가 절차에 대해서는 경찰이 위법성을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날 서구에 민원접수 내역 320여건과 인허가 자료 등 제출을 요청했다고 이날 밝혔다. 서구 관계자는 “경찰이 제출을 요구한 자료에 대해 각 과별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5월 착공 이후 접수된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 관련 민원은 총 324건이다. 이 중 과태료를 부과한 건은 14건에 그쳐 서구 측 대응이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날 붕괴 아파트에 대한 전면 재시공을 검토하고 관내 발주사업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을 전면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광주=구현모·한현묵·김동욱 기자, 안병수·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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