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와 아첨을 구분하지 못한 지도자의 종말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

장박원 2022. 1. 12.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청년보좌역들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94]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매일 아침 청년 보좌역에게 쓴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2030세대 지지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이겠죠. 지난 6일 청년보좌역들과의 간담회에서는 돌직구를 맞기도 했습니다. "(후보 주변에는) 간신들, 아첨꾼들, 정치기생충 같은 십상시만 가득하다. 그들을 버리고 민심 심판대에 다시 서시라." 아첨은 지도자가 벗어나기 힘든 올가미입니다. 권력자 옆에는 언제나 사탕발림 말을 하는 자들이 득시글거립니다. 권력자 귀에는 좋은 말만 들립니다. 직언이나 쓴소리를 가장해 아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진실한 조언과 아부를 구분하기 더 어렵습니다.

오나라 패망을 부른 부차의 사례가 꼭 그렇습니다. 월왕 구천이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을 때 부차는 여러 대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나라 정벌에 나서려고 합니다. 바로 이 무렵 부차는 낮잠을 자다가 요상한 꿈을 꿉니다. 그가 묘사한 꿈은 이렇습니다. "장명궁에 들어갔다. 두 솥에 불을 때는데도 음식이 익지 않았다. 검은 개 두 마리가 나타나 한 마리는 남쪽을 향해 짖고 한 마리는 북쪽을 향해 짖었다. 강철로 만든 가래 두 자루가 궁궐 담장에 꽂혀 있었다. 큰 물이 도도하게 궁전까지 흘러 들어왔다. 후궁에 북도 아니고 종도 아닌 것이 있었는데 마치 쇠를 단련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앞 정원에 오동나무만 가득 늘어서 있었다."

꿈 이야기를 듣고 난 아첨꾼 백비는 축하 인사를 하며 그럴듯한 해몽을 내놓습니다. "대왕마마의 꿈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장명'이란 적을 격파하고 전공을 이루어 개선가를 울린다는 뜻입니다. 두 개의 솥에 불을 때도 음식이 익지 않은 것은 대왕마마의 덕이 성대하여 그 기운이 남아도는 것입니다. 개 두 마리가 각각 남쪽과 북쪽을 향해 짖는 건 사방의 오랑캐가 모두 복종하고 제후들이 조공을 바칠 조짐입니다…" 사실 부차의 꿈은 누가 들어도 불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을 땠는데도 익지 않고 궁궐 담장에 가래가 꽂혀 있는 장면을 좋게 볼 수는 없습니다. 궁궐에 강물이 흘러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간신 백비는 왕의 비위를 맞추려고 듣기 좋은 말만 쏟아냈습니다.

그래도 미심쩍었던 오왕 부차는 왕손 낙에게 꿈 이야기를 전하며 의견을 물었습니다. 왕손 낙은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어 운세를 보는 공손성을 소개합니다. 오왕이 부른다는 소식에 공손성은 대성통곡을 합니다. 왕과 만나는 날이 죽는 날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죠. 왕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꿈의 의미를 정확하게 말하면 처형당할 게 분명했습니다. 공손성의 꿈 해석은 이랬습니다. "신이 말을 하면 틀림없이 죽게 되지만 그래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왕마마의 꿈은 기괴합니다.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는 일과 관련된 것입니다. 장명궁에서 '장'이란 전투에 승리하지 못해 정처 없이 떠돌며 달아난다는 뜻입니다. '명'은 밝은 것이 가고 어두운 것이 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두 솥에 불을 때도 음식이 익지 않은 것은 전쟁에서 패배해 불로 음식을 해먹을 틈도 없다는 뜻입니다."

부차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공손성은 또렷한 목소리로 해몽을 이어갑니다. "검은 개가 각각 남쪽과 북쪽을 향해 짖었다고 했는데 검은색은 음에 속하니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가래 두 자루가 궁궐 담장에 꽂혀 있다는 것은 월나라 군사가 오나라에 쳐들어와 사직을 파헤친다는 뜻이고 큰 물이 궁전까지 가득 찬 것은 모든 것을 침몰시켜 후궁까지 텅 빈다는 뜻입니다. 후궁에서 쇠를 단련하는듯한 소리가 울린 것은 궁녀들이 포로가 되어 길게 탄식한다는 의미이고 궁궐 앞 정원에 오동나무만 늘어선 건 궁녀들이 순장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제나라 정벌을 중지하시고 백비를 월왕 구천에게 보내 사죄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오나라와 대왕마마가 무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비의 아첨에 기울어진 부차는 공손성의 목숨을 건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차는 크게 화를 내며 공손성을 죽였습니다. 월나라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겁니다.

공손성의 경고와 달리 오나라는 제나라 정벌에 일단 성공했습니다. 부차와 백비는 기고만장했습니다. 강대국 제나라를 제압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차가 서시와 누대에서 놀고 있을 때 또 징조가 나타납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동 잎새 싸늘한데/오왕은 술에서 깼나 안 깼나?/오동 잎새 가을인데/오왕은 근심에 또 근심이 겹쳤네." 분명 불길한 내용이었지만 백비는 또 이렇게 왜곡합니다. "봄이 오면 만물이 기뻐하고 가을이 오면 만물이 슬퍼합니다. 이건 하늘의 이치입니다. 그러니 근심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이 사건 이후 부차는 또 한 번 환상을 봅니다. 네 명이 서로 등을 기대고 있다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었죠. 이야기를 들은 충신 오자서가 거듭 경고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일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백비는 전혀 다른 해석으로 부차에게 또 아부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것은 사방에서 오나라 조정으로 달려온다는 뜻이니 우리 오나라가 패권국이 될 징조입니다." 이번에도 부차는 충신의 쓴소리를 외면하고 간신의 아첨을 믿습니다. 부차는 백비의 사탕발림 말이 독배였다는 사실을 훗날 오나라가 멸망할 때 깨닫게 됩니다. 지도자는 아첨의 유혹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과 부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는 3월 선출될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