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을 흡수하는 작가..'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
인권을 다룬 인류사의 중요 발언들을 모은 작품 ‘인용문’(2019)에는 소크라테스의 “나는 아테네인도 아니요, 그리스인도 아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는 말이 포함돼 있다.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동가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작가의 화두인 ‘인간’과 그 예술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코로나와 중국 정부의 검열을 겪으면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은 것들이 작품 세계에 담겨 있다.
◇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시기간 2021년 12월11일(토)~2022년 4월17일(일)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전시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6, 7전시실, 미디어랩, 미술관 마당 및 복도 공간
-출품작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120여 점
▶중국 정부의 검열에 디지털과 예술로 맞서는 작가
2016년 5월 말,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했던 이도메니 캠프를 비우고 난민들을 이동시킨다. 아이 웨이웨이는 신생아용 옷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 바지 등 난민 캠프에 남겨진 옷과 신발을 모아 베를린 스튜디오로 운반해온다. 그리고 그것을 세탁, 수선하고 다림질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작가의 대표작 ‘빨래방’(2016)이다. ‘살아 있는 자’는 부패 멕시코 경찰의 허위 수사로 43명의 대학생들이 납치 실종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그는 실종된 학생들의 초상화를 개인전이 열리는 미술관에 전시했고, 그때의 조사 과정과 인터뷰 등을 모아 발표했다. 쓰촨 대지진 때 바닥에 흩어진 아이들의 가방을 연결해 ‘천장의 뱀’(2008)을 만들었던 작가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를 연결해 길고 커다란 뱀을 만들어냈다. 그 작품은 ‘구명조끼 뱀’(2019)이라는 이름으로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은 회화와 사진, 영상, 건축, 공공미술, 도자, 출판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온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대표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부터 13세기부터 유리 공예가 발달한 이탈리아 베니스 무라노 공방에서 제작한 ‘검은 샹들리에’ 외에도 중국 도자기 생산지인 징더전(景德鎭)의 도자기로 제작된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 로힝야족(미얀마에 거주하는 무국적의 인도-아리아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로힝야’(2021)까지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 1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늘 아픔을 겪는 현 시대인을 레이더에 담는 그는 자신을 억압하는 국가 권력 역시 작품 속에 담아낸다. 2011년작 ‘민물 게’가 대표적이다. 2010년 상하이 시에서 아이 웨이웨이의 상하이 스튜디오를 철거했을 때 작가가 인근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상하이 명물인 민물 게 요리를 대접하는 연회를 열었던 것을 기념한 작품이다. 민물 게(河蟹, he xie)의 발음이 중국 정부 슬로건인 ‘화해(和諧, he xie)’와 발음이 같다는 점에 착안해 국가 권력과 검열 상황을 풍자한 것. 이번 전시 미디어랩 섹션에 전시돼 있다. 일찍부터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등 온라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통해온 작가는 자신이 감시 카메라에 감시 당하는 동안 외부와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트위터의 상징인 ‘새’와 수갑, 감시카메라 등을 조합해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을 완성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대형 쇼핑몰,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현대 사회의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우리의 일상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말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빛의 문양으로 빛나는 공간은 수많은 카메라로 둘러싸인 감옥과 같다는 것. 그에게 블로그, 유튜브는 또 다른 예술의 툴이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후, 아이 웨이웨이는 시민조사단을 결성해 피해자 가족, 관리, 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집계해 블로그에 올렸고,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무료로 배포했다. 작가의 블로그는 2009년 5월 정부에 의해 폐쇄 당했지만, 아이 웨이웨이는 트위터와 유튜브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서면 인터뷰에서 중국의 인터넷 통제에 대해 “엄혹한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면 작품이란 것이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라고 답했던 그는 스스로 말하듯 ‘떠도는 사람’이다. 난민과 재해, 감시 등 시대의 아픔에 눈 돌리는 법이 없는 그의 작품들은 부당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아이 웨이웨이 작가가 소크라테스처럼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서 책임감과 휴머니즘(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해온 이유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는 미래세대가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Inside Interview
얼마 전 홍콩의 M+문화박물관이 작가님의 ‘원근법 연구’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관내 전시에서도 제외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문화 예술 검열이 강화되는 현 상황에서 작가님께 ‘표현의 자유’란 어떤 것이고, 왜 중요한 가치라고 보시는지요?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기본적 가치인 천부인권으로 어떤 권력이나 정치, 종교적 명분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대다수는 생명으로서 개체가 당연히 자신만의 특징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약속으로,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M+미술관 문제로 돌아가면,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홍콩 정부 산하의 문화기구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는 없습니다. 중국 정부가 보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수준의 검열을 받고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중국은 비단 홍콩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라, 1949년 신정부 수립 이래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만을 허용했고, 대부분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가 전국 학교에서 시진핑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나 정부는 미래의 발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려면 국가 내부에 가치관이 형성돼 있어야 하죠. 가치관은 국가의 형태를 만드는 기초입니다. 제가 누군가의 사상을 연구해 본 적은 없지만 모든 국가는 어떤 가치관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가치관의 표현 역시 주로 정부가 하는 일이 되겠죠. 이 상황에서
중국 예술계가 더 나아지지 않겠지만, 바이든이 중국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지인 우한의 상황을 다룬 ‘Coronation’ 상영 후 어떤 불이익을 당하진 않으셨나요? 유럽에서 팬데믹이 심각해지던 시기에 우리는 ‘Coronation’을 완성했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하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반겼지만 결국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중국의 국가 위상이 유럽과 미국의 정치적 환경과 중국 시장에 대한 그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중국은 유럽,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들의 행동에 모든 면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화를 제작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Coronation’을 비롯해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모두 기록할 가치가 있는 소재가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이런 기록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역사에 증언을 남기려는 것이지요.
중국이나 중국 미술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중국 미술계와 중국은 사실 하나입니다. 중국은 갈수록 막강해지는 정치적, 경제적 힘과 보잘것없는 가치체계로 어떻게 서방 자본주의, 가치체계를 설득하고 정복하느냐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어요. 그 압박은 점점 거세질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추구와 사실 추구라는 입장을 포기한 중국 미술계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 언어와 다른 수단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라고 봅니다.
코로나 펜데믹이 일상생활과 작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팬데믹 초반 저는 로마에서 새롭게 각색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정부가 갑자기 공연을 취소했어요. 당시 이탈리아는 유럽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는 출발지였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로 제한된 생활을 하며, 새로운 제약에 적응해야 했죠. 스스로의 생명을 관장하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으로, 생로병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하지만 많은 정부가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했고, 중국이 가장 심했습니다. 그들은 군사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 했습니다. 저도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정치 난민으로서 아주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바퀴벌레’, ‘로힝야’, 그리고 우한 코로나 상황을 다룬 ‘Coronation’와 ‘나무’ 등 네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습니다. 제 작업에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은 없었으며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이나 예술가의 역할이 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술이나 예술가에게 정해진 역할은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인류의 환경이나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그래서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변합니다. 인류가 직면한 정신적·사회적 대위기 상황에서 예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건 송장이나 마찬가지죠.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술은 이미 반은 죽은 상태이고,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미학, 철학적 사유는 사실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세계화가 낳은 문제이죠. 이렇게 큰 인류의 고난과 불안에 대한 예술의 반응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디지털 툴을 통해 많은 작품 활동을 해오셨는데, 보통 어떤 채널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제 이슈를 파악하시나요? 또 현재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저 스스로가 바로 국제 이슈입니다. 제 생명, 생명에 대한 이해, 제가 처한 상황이 세계적 문제의 일부분이죠. 저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인터넷 공간에서 보내고, 거기서 이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봅니다. 직업은 없지만 계속 일을 하고 있고요. 일하기와 작업은 다르죠. 일하기란 무언가를 계속 찾아서 하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반드시 완성해야만 하는 건 없습니다.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지만 며칠은 이탈리아에 다녀오기도 하죠. 작업 때문에 영국과 독일을 자주 갑니다. 저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술가로서 선생님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미 얘기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 생명 자체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위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제공한 아이 웨이웨이 서면 답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및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 Ai Weiwei Studio]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12호 (22.01.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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