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거리가 그립다

한겨레 2022. 1. 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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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는 마거릿 미첼의 소설이다.

책을 구하려고 헌책방으로 돌아다니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책,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헌책을 구입했다.

우리나라에는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헌책방 골목이 따로 있었다.

헌책방을 기웃거리는 일은 당시 지식인의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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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박찬석 | 전 경북대 총장·경북대 명예교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마거릿 미첼의 소설이다. 1860년대 미국 남부 농장주는 흑인 노예를 부리며 주말마다 화려한 파티를 즐겼다.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산업화를 주도했던 북군이 이겼다. 플랜테이션 문화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나는 1940년생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3만5천달러 시대까지 살고 있다. 전통 사회, 산업 사회, 디지털 사회를 거처 메타버스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1970년에 경북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한국 교수는 책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선진국 대학에선 대학 도서관이 책 구매를 대행한다. 우리 사정은 달랐다. 대학 도서관이 있기는 했지만 필요한 책은 대부분 개인이 소장해야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때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때는 교수가 책을 얼마나 소장하고 있느냐가 그 교수의 학문적 열의와 깊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외국 신간 서적은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출판한 아틀라스 지도책를 구입하는 데 두달 급료를 쓴 일도 있다. 책을 구하려고 헌책방으로 돌아다니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책,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헌책을 구입했다. 우리나라에는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헌책방 골목이 따로 있었다. 헌책방을 기웃거리는 일은 당시 지식인의 문화였다. 좋은 책을 구하는 일은 모험담이었고, 갖고 싶은 책의 소장은 학자의 자부심이었다. 안 먹고, 안 마시고 책을 샀다. 책 사는 일로 아내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생물학적 나이가 한계에 왔다는 걸 아는 게 인간이다. 이제 소장한 책을 기증하고 싶다. 대학 도서관은 손사래를 친다. 헌책을 받을 도서관 공간이 없다는 이유다. 기막힌 일이지만, 현실이다. 세상은 변했다. 동료 교수들도 나와 비슷하게 절망에 가까운 한탄을 한다. ‘책천조부천’(冊賤祖父賤 )이란 말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책은 소중했다. 인류 유산 중에 책보다 더 소중한 문화유산은 없다. 디지털 매체 때문에 종이 책이 천대를 받고 있다. 버려야 한다.

영국 웨일스주 와이 강변에 조그만 마을 헤이(인구 1700명)가 있다. ‘헤이 온 와이’(Hay-on-Wye)는 헌책방으로 유명하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리처드 부스는 낡은 소방서 건물을 얻어 헌책방을 열었다. 전국에서 버려진 헌책을 고향으로 가져왔다. 1970년부터 헤이의 헌책방 소문이 신문과 방송을 탔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헌책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매년 50만명에 이르렀다. 자연히 호텔, 카페와 식당, 기념품 가게 생겨났고, 아름다운 마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관광객을 끌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대형 가수를 불러 해마다 축제를 연다. 수입한 방부목으로 호수 위에 데크를 만들었다. 그 때문에 관광객이 머물지는 않는 것 같다. 마음을 잡을 만한 문화 콘텐츠가 없다. 한국은 교육열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단한 나라이다.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책과 인연이 있다. 학창 시절 책과 씨름하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책이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이다. 우리 시대의 책들은 전통 사회에서 산업 사회, 디지털 사회로 가는 전환기의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 시대 책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학창 시절 책의 추억은 생생하다. 방부목으로 길바닥을 장식하는 대신, 헌책 서가를 만들고 도시를 장식하여 관광객을 불러모을 지방자치단체가 없을까? 내 책도 가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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