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100도에서 끓는 이유[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명철 2022. 1. 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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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량 감안하면 영하 80도에서 끓어야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학생들은 외울게 참 많습니다. 구구단부터 시작해서 영어 단어는 물론이고 수학 공식,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하는 조선시대 임금의 계보도 있습니다.

과학시간에 배웠던 원소 주기율표도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방식이 이해보다는 암기 위주의 교육이라 외워야 할 것이 많다는 주장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암기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공부도 많습니다. 조선시대 임금 계보와 원소 주기율표 같은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러다 보니 쉽게 외우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등장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첫글자를 따서 운율에 맞춰 외우거나 첫 글자로 문장을 만들어 암기하는 것입니다.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하는 조선시대 임금 계보 암기 방식은 책에 적혀 있는 것도 아닌데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시대에 상관없이 똑같습니다.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다른 방식으로 암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학생마다 암기하는 방법이 다르기도 합니다. 바로 원소 주기율표를 외우는 방법입니다. 원소 주기율표에는 총 118개의 원소가 정리됐는데 시험에 대비해 외워야 할 원소는 대개 주기율표의 세 번째 줄까지 18개입니다.

이 18개의 원소를 어떻게 외울까요? 저는 예전에 이렇게 외웠습니다. “수헤리븐 박씨는 아프네. 나만 알지 펩시콜라.”

‘박씨가 수해를 입어서 아픈데, 그걸 낫게 하는 나만 아는 방법은 펩시콜라’라는 말도 안 되는 해석을 붙여 암기했습니다. 해석은 말이 안 되지만 어쨌든 외우기도 쉬웠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미지=최종수 위원)

원소 주기율표의 가로줄은 주기(period, 週期)라고 하고 세로줄은 족(group, 族)이라고 합니다. 족이 같아서 같은 세로줄에 있는 원소들은 화학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갖습니다.

시험 공부할 때 빼고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원소 주기율표 얘기를 꺼낸 이유는 독특하고 신기한 물의 끓는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물의 끓는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100℃입니다. 물이 100℃에서 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화합물은 분자량이 커질수록 끓는점이 높아집니다. 액체 중 끓는점이 가장 높은 게 물입니다. 분자량이 커질수록 끓는점이 높아진다는 이론에 따르면 물은 액체 중 분자량이 가장 커야 합니다. 하지만 산소원자 1개와 수소원자 2개로 이뤄진 물(H2O)의 분자량은 18에 불과합니다.

분자량 18로 예측되는 물의 끓는점은 몇℃쯤 될까요? 이걸 알아보려면 원소 주기율표를 이용해 물과 비슷한 성질을 갖는 화합물의 끓는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했기 때문에 주기율표에서 산소와 같은 세로줄에 있는 ‘S, Se, Te’이 수소와 결합한 ‘H2S, H2Se, H2Te’의 끓는점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화합물의 분자량은 순서대로 34, 81, 130이고 끓는점은 -59.6℃, -41.2℃, -2.2℃입니다. 분자량과 끓는점을 비교하니 예측대로 분자량이 클수록 끓는점은 높아집니다.

이 화합물들의 분자량과 끓는점 관계를 이용해 분자량 18인 물의 끓는점을 예측해 보면 약 -80℃입니다. 하지만 물의 실제 끓는점은 이보다 180℃나 높은 100℃입니다. 비슷한 특성을 갖는 다른 화합물과 비교해 보면 물은 끓는점이 높아도 너무 높습니다.

예상되는 물의 끓는 점. (이미지=최종수 위원)
물의 끓는점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물 분자가 가진 특이한 결합방식 때문입니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분자간의 결합이 끊어져 액체인 물이 기체인 수증기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물 분자끼리는 수소결합이라는 방식으로 단단하게 연결됐기 때문에 이를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 분자끼리 결합을 끊으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 때문에 끓는점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체 상태인 얼음도 기체 상태인 수증기도 아닌 액체 상태의 물 덕분에 생명체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35억년전쯤 지구 최초의 가장 간단한 생명체가 나타난 곳도 바로 물이었습니다. 인간을 비롯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만큼 물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만일 물의 끓는점이 특이하게 높은 100℃가 아니라 정상적인(?) -80℃이었다면 지구에 있는 모든 물은 기체 상태로만 존재했을 테고, 지구에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하더라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됐을 것입니다.

다행히 물이 가지고 있는 특이하게 높은 끓는점 덕분에 지구의 물은 대부분 액체 상태로 존재하고 지구에 있는 다양한 생명체는 그 물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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