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몽, 흉몽은 없다"..꿈을 좇는 사람들

박주연 기자 2021. 12. 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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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권명희씨(교육컨설턴트·56) 가족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간밤에 꾼 꿈을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가족 간 꿈 이야기를 나눈다. 벌써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가족의 일상이다. 이권씨는 “상담을 공부하면서 꿈 공부를 하게 됐다”며 “십수년 전 ‘그룹 투사 꿈 작업’ 강좌를 들은 것을 계기로 남편·딸과 함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서로가 꾼 꿈에 대해 공유하며 대화를 한다”고 말했다.

요즘엔 특히 남편 안해용씨(목사·60)가 꿈을 통해 어린시절 자신의 상처와 만나는 중이다. 안씨는 “최근 여러차례 전쟁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하루는 꿈속에서 전쟁이 일어나 세 그룹으로 나눠 싸우기로 했는데 그가 속한 그룹의 역할은 후방 진지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안씨는 진지 구축을 위해 호미를 들었는데, 갑자기 요의가 느껴졌다. 화장실에 갔더니 너무 지저분했다. 그래도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장면이 바뀐다. 이어진 두 번째 꿈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는 자신이 오른쪽 허벅지 근육을 실로 잘라내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런 후 세 번째 꿈이 이어진다. 꿈속에서 안씨는 임대업자다. 스님에게 계약서를 쓰고 어느 공간을 임대하는데, 해당 공간에 가보니 똥도 있고 지저분했다.

안씨는 “보통 꿈에서 전쟁은 내적 갈등을, 배설물은 심리적 배설을 상징한다”며 “내 안의 밑바닥에 감춰져 있던 갈등과 고뇌가 무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나의 꿈 이야기를 나누며 어릴 적 가족 간에 발생한 사건에 따른 상처, 그리고 그로 인한 충격에서 얼어붙은 나의 자아를 발견했다”고 했다.

안해용씨가 오랫동안 써온 간밤에 꾼 꿈을 기록한 노트들. 안해용씨 제공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들 증

경기도 부천 중동에 집과 일터가 있는 송일수씨(치과의사·60)는 매주 토요일 오전 8시 30분이면 서울 이수역 부근의 한 병원에서 꿈 분석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연구하며 널리 보급하는 게 목적인 한국융연구원 회원이다.

그가 꿈에 관심을 가진 건 벌써 10년도 더 됐다. 지인이 선물해준 꿈 관련 책을 읽으면서다. “당시 중년을 넘어서고, 사회적 성취도 어느 정도 이룬 후에 찾아온 삶의 공허함과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아온 건지에 대한 의문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후 꿈을 알아가고 분석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삶과 사람, 관계에 대해 겸허해지는 지혜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 역시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과는 간밤에 꾼 꿈의 내용을 블로그에 적는 것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꿈은 단편적으로 기억나는데 기억나는 파편을 잡고 생각하면 앞 장면으로 거슬러가면서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하루는 사이가 몹시 나쁜 친구가 그에 꿈에 등장했다. 그는 “왜 그 친구 꿈을 꿨을까 생각하면서 그와의 관계를 반추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꿈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일까 하는 낮은 자세의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이가 나빴던 친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꿈을 좇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꿈(dream)은, ‘희망’이나 ‘이상’을 일컫는 게 아니라 ‘잠자는 동안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 현상’을 말한다.

꿈은 전통적으로 예언, 징조와 같은 신비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고대의 왕들은 자신의 꿈을 해몽하는 전문가를 곁에 뒀고,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자신의 꿈이 어떤 징조를 나타내는지를 풀이했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해몽해준 내용이나 야곱의 사다리 꿈도 기록돼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은 자신의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키워드를 넣어 검색한다. 일반적으로 똥밭이나 돼지가 나오면 재물을 얻을 징조라고 믿는 식이다.

꿈이 최초로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의사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다. 그에 의하면, 정신생활은 깨어 있을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잠잘 때도 멈추지 않는데, 꿈은 그 잠자는 동안의 정신활동의 내용을 보여준다. 잠자는 동안에는 깨어 있을 때와는 달리 합리적인 이성의 힘이 약화되고, 보다 원시적인 자아(원초아)가 우세해지는 상태다. 꿈을 주제로 연구해온 정승아 조선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따라서 꿈의 의미를 분석하면, 평소 깨어 있을 때는 잘 알 수 없었던 보다 원시적인 자신이 품고 있던 어떤 욕구나 충동을 확인할 수 있다”며 “나와 타인들의 꿈을 접하고 분석하면서, 프로이트의 생각에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의사였던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나 융은 무의식을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며 성적인 것으로 보는 프로이트와 달리, 영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즉 그는 꿈을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무의식과 소통하는 수단이자 무의식으로 통하는 창문이라고 봤다. 또 깨어 있을 때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꿈이 제시해준다고 했다.

■‘그룹 투사 꿈 작업’ 인기

국내에서 여러 사람이 팀을 이뤄 꿈을 공유하고 분석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고혜경 박사가 ‘그룹 투사 꿈 작업’ 워크숍을 시작하면서다. 1960년대에 ‘그룹 투사 꿈 작업’을 만든 미국 제레미 테일러 박사에게 노하우를 익힌 그는 18년간 관련 워크숍 팀을 이끌어왔다. 제레미 테일러는 노숙자부터 성직자, 베트남 참전용사나 성적 소수자 그리고 감옥과 정신병동을 넘나들며 전 세계 수십만명의 사람들과 꿈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의 연구 결과는 다음의 세가지로 압축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꿈은 언제나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되며 꿈꾼 사람의 건강과 자기실현을 돕는다. 이때 자기실현이라는 표현은 온전성(wholeness)의 획득, 진정한 나의 발견, 삶의 의미 발견을 말한다. 또 꿈에서 ‘악몽’이란 ‘지금 여기에 네 본성에 어긋나는 게 있어. 뭔가를 시급히 바꿔야 하니 제발 깨어나 이 상황을 좀 보라’는 메시지다. 무의식은 급박하게 경각심을 촉구할 때 악몽의 형태를 취한다.

둘째, 이 꿈이 무슨 뜻인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꿈꾼 사람뿐이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인데, 빙산의 뿌리인 무의식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꿈으로 표현한다. 단지 의식적으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

셋째, 꿈은 수많은 층위의 의미를 동시에 이야기한다. 한가지 뜻만 있는 꿈은 없다.

고혜경 박사는 “한마디로 꿈은 내 마음의 거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되는 꿈은 나한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는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꿈은 건강과 성장을 촉구하는 등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는데, 이를 일생 동안 무시하고 사는 사람과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사람의 삶의 질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 박사에 따르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각자 삶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 민족의 역사, 종의 역사까지도 들어 있다. 또 무의식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 현재가 동시에 혼재하기 때문에 예언적 기능도 있다. 꿈을 통해 이 무의식을 보고 느끼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그러한 각자의 꿈 이야기를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눌 때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정승아 교수는 “길몽이니 흉몽이니 하는 개념도 있을 수 없다”며 “모든 꿈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좋은 꿈이 될 수도, 나쁜 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꿈은 무의식 세계가 의식 세계로 말을 거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본래의 자신을 만나는 데 장애물이 되는 상처들을 다시금 어루만지도록 계기를 만들어주고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해 창의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꿈이 보내는 메시지에 주목하라

그룹 투사 꿈 작업 워크숍은 참가자 중 누군가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면 나머지 참가자들이 경청한 후 그의 꿈을 자신에게 투사한다. 즉 그 꿈을 내가 꾸었다면 나는 이렇게 해석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 각자가 살아온 삶이나 트라우마, 스트레스 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된다. 사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이때 서로가 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비밀이 전제된다.

1년 전 이 워크숍에 참여한 유정훈씨(직장인·54)는 “참가자 모두가 나의 꿈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내 꿈을 열심히 이해하려 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꿈을 매개로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그 꿈을 이해하고, 나누면서 함께 힐링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존감·자신감도 높아졌다”면서 “꿈은 의식과 무의식이 섞여 매일 밤 빚어내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영상이다. 이 스토리를 매일 기록해 놓고, 그 의미를 찾으면서 무언가 계속 채워지는 만족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강경희씨(대학강사·53)는 “지금은 꿈이 제 삶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됐다”고 말한다. 강씨는 “꿈이 주는 메시지에서 많이 느낀 게 내가 써보지 못한 나의 에너지가 많다는 것이었다”며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살았지만 내 안에는 미처 내가 탐색하지 못한 능력이나 기질, 즉 나의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한 예로 그는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남들이 자신에게 뭐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꿈속에서 화장실에 갔는데 너무 더럽거나 문이 잘 안 잠겨지거나 오가는 사람에게 노출이 되는 화장실 앞에서 초조해하는 자신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꿈 분석 결과 그는 “그간 억누르고 있었을 뿐 내 안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절절매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이후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꿈을 통해 창조적 영감을 받는 경우도 적잖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1931년작, 캔버스에 유채, 24.1×33㎝,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누구나 하룻밤에 5~7번 꿈을 꾼다

사람은 누구나 하룻밤에 5~7번 꿈을 꾼다. 수면상태의 뇌파를 살펴보면, 자는 동안 눈꺼풀이 떨리는 ‘렘수면(급속안구운동수명·REM sleep)’ 단계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이때가 꿈을 꾸는 시간이다. 일반적인 성인의 렘수면 비율은 총 수면의 약 20~25%로, 총 시간으로 따지면 약 90~120분 정도를 렘수면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꿈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총 수면시간을 8시간으로 한정하고 실험 대상자들을 자게 한 후 렘수면 단계에 들어가면 깨우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참여자가 사나흘이 지나자 환각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꿈을 꾸지 못하게 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이런 현상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꿈을 꾸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또한 꿈을 기억하지 못할 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렘수면 단계에서만 꿈을 꾸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17년 미국 위스콘신대 신경과학자들은 렘수면과 비렘수면 단계 모두에서 꿈을 꿀 수도, 안 꿀 수도 있다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단순히 렘수면 단계에서 꿈을 꾸는 게 아니라 뇌 후두부에 있으면서 뇌파와 관련된 활동패턴이 일어나는 ‘핫 존(hot zone)’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32명의 참가자를 잠들게 한 다음 뇌파를 측정해 꿈을 꾸는지 여부를 정확히 예측했다. 게다가 꿈속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뇌에서 언어와 관련된 영역의 뇌파활동이 나타났고,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꾼 사람은 이미지를 인식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됐다.

꿈을 분석하려면 우선 꿈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꿈은 금방 잊히기 때문이다. 꿈을 좇는 사람들이 잠에서 깨자마자 꿈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이유다. 그런 다음 그룹 투사 꿈 분석을 해야 하는데, 전문가와 함께할 수 없다면, 아쉬운 대로 지인들과 모임을 만들어 그룹 투사 꿈 분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꿈을 그림이나 몸동작 등 예술로 표현하면서 꿈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창조적인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남긴 그림의 상당수는 꿈속 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가령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1931)에는 녹아 흐물거리는 시계들이 사막 풍경에 널려 있는데, 이 늘어진 시계 모티프는 카망베르 치즈에 대한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는 폴 매카트니가 22세 때 어느 날 꿈에서 들은 멋진 멜로디를 옮긴 것으로 세기의 명곡이 됐다.

코로나19 확산 후 꿈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고혜경 박사는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과 스트레스 등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꿈 작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기도 한층 더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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