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피하려 아파트 판 부자들이 찾는 다음 투자처는?
서울 강남에 아파트 2채를 갖고 있던 한 지인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담 때문에 한 채를 팔았다고 했다. 집 판 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물었더니, 집 근처에 꼬마빌딩(소형빌딩)을 샀다고 말했다. 집 판 돈으로는 부족해 빚을 잔뜩 냈다고 한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정책 이후 부자들이 재테크를 위해 빌딩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에 빌딩 전문가를 만나보기로 했다.
빌딩 중개 전문업체 리얼티코리아의 이진석 부사장은 빌딩 매매에 손을 댄지 벌써 20년이 된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고액 자산가 고객들에게 빌딩 매매 컨설팅을 해주는 빌딩 베테랑이다. 그는 컨설턴트 70명과 함께 서울의 강남, 마포, 용산 등 서울 및 수도권 지역 빌딩을 연간 10조원 이상 매매한다고 한다. 겨울 찬 바람이 외투를 뚫고 들어오던 지난 12월 14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666-11 배강빌딩 8층의 리얼티코리아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도산대로와 선릉로가 겹치는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8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저 멀리 북쪽으로 남산 타워, 그리고 그 아래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빌딩 매매 20년
−부동산 업계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졸업 후 통신사에서 일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즈음에 서울 강남구의 홍실아파트를 2억3000만원에 샀다가 2억8000만원에 판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집을 판 뒤에 1년이 지나니까 그 집값이 6억~7억원으로 뛰어 거래되는 것이 아닌가? 돈은 직장 생활해 받는 월급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벌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 두고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어떻게 시작했나?
“2001년에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부동산 중개를 시작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에 지인이 리얼티코리아를 창업할 때 합류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은?
“우리 회사는 빌딩 전문 중개 회사이다. 주택 시장은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 있다. 매매나 임대에 관한 정보가 많다. 예를 들어 아파트 시장은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정보 사이트에서 시가와 매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빌딩과 같은 상업용 부동산 정보는 소유자가 매매나 임대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는다. 거래 금액이 작지 않기 때문에 투자할 때 신중해야 하고, 투자 후 환금성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빌딩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해 투자자들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일을 한다. 투자자들의 투자 목적에 맞게 매매 빌딩, 신축 빌딩, 사옥 빌딩 등 다양한 용도의 빌딩을 주선해준다.”
−거래하는 빌딩의 규모와 지역은?
“30억원대에서 1000억원대까지 다양하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빌딩은 다 취급한다. 주요 거래 지역은 서울의 마용성(마포구 용산구 성동구)과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성수동과 대학가를 꼽을 수 있다.”
종부세 폭탄 피하려 빌딩으로
인터뷰의 주제인 종합부동산세 등 정부의 주택 규제 정책이 빌딩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정부의 주택 종부세와 양도세 강화 조치 이후 빌딩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100억원 미만의 소형빌딩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다. 서울 지역에서 빌딩 시장에 매년 신규로 진입하는 빌딩 매수 희망 고객이 5000명 정도 되는데, 최근에는 아파트를 팔고 빌딩을 사려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자들이 왜 빌딩을 사려고 하나?
“첫째, 정부가 종부세 등 주택 세금을 올리자 다주택자들은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빌딩으로 갈아타는 것 같다. 주택은 종부세 면세 한도가 11억원이지만, 빌딩은 면세 한도가 80억원이다.
둘째, 주택에 대해서는 은행의 대출 규제가 심하지만 빌딩은 아직 규제가 심하지 않은 편이다.
셋째,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통화량이 급증하면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우려되자 사람들이 안전자산인 부동산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서울 중심가의 상업용지에 있는 빌딩들이 안전한 재테크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빌딩을 사면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나?
“상업용 부동산은 임대 수익으로 은행 이자나 세금을 낸다. 그리고 보유하는 기간 동안 땅값이 꾸준히 오르면서 자산 가치가 늘어난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땅값 상승률을 보면 서울 강남구 15%, 서초구 14%, 송파구 13% 정도 됐다. 건물을 한 번 산 사람이 다시 팔 때까지 보유한 기간이 평균 4.54년이었다. 이 기간동안 매년 15%씩 땅값이 오르면 4.5년 동안 보유해서 가격이 68% 정도 오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빌딩은 가격의 50~60% 만큼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파트 등을 팔아 50억원을 보유한 사람은 은행 대출 50억원을 끼고 100억원 짜리 빌딩을 살 수 있다. 법인 명의로 사면 대출에 더 유리하다. 100억원에 사서 5년간 보유하면 대략 160억원 정도로 가격이 상승한다. 50억원 투자한 기준으로 보면 5년간 60억원을 번 셈이다. 이렇게 돈이 되니 사람들이 몰릴 수 밖에 없다.”
인기 빌딩은 어디?
−전반적으로 볼 때 빌딩 매매가 매년 어느 정도 증가하고 있나?
“매년 10% 이상씩 거래 건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어떤 빌딩들이 인기인가?
“해마다 트렌드가 조금씩 바뀐다. 2018년에는 소형빌딩 수요가 많았다. 이후 소형빌딩 매물이 모두 소진되자 2019~2021년에는 100억원 이상의 좀 더 큰 금액대 빌딩이 많이 팔렸다. 현재 100억~250억원대 빌딩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빌딩의 위치와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서울 강남의 이면도로 지역에 건물 연면적 600평(1평=3.3㎡) 정도의 빌딩이면 대략 300억원에 거래된다.”
−인기 지역은?
“서울에서는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성동구, 마포구가 인기 있다. 경기도에서는 분당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때 이 부사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고객과 상담을 하기 위해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지역을 꼽으라면?
“서울 성수동을 들 수 있다. 먹고 쉬고 놀기 좋은 시설이 많아서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놀이문화가 상권을 좌우한다. 주변에 놀기 좋은 시설이 없는 회사들은 직원들을 구하기도 어렵다. 최근에 젠틀몬스터, 무신사, 크래프톤, 큐브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같은 회사들이 성수동에 터를 잡은 이유도 이러한 놀이문화 시설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컨대 성수동에는 ‘대림창고’ 같은 카페거리와 가죽거리가 있다. 반면 중공업 지역이라서 건축시 용적률 허가가 400%까지 가능하다. 일반 주거지의 1.5배이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이 있어서 강남 근접성도 뛰어나다. 젊은이들 입장에서 보기에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에 최적화된 곳이다. 그러니 이 지역의 빌딩이나 사무실, 상가 가격이 오르고 투자자들도 몰리고 있다. 지금 땅 값이 평당 1억원이 넘는다.”
서울 강남 지역
−다른 곳을 하나 더 꼽는다면?
“‘부동산 불패' 신화를 자랑하는 서울 강남 지역이다. 테헤란로 북쪽, 지하철 9호선과 7호선 라인, 도산대로 부근이다.”
이 부사장은 벽에 걸린 디스플레이에 서울 강남 지역의 지도를 띄운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지도를 보라. 동서남북에 주거 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남쪽은 대치동 개포동 도곡동, 북쪽에는 압구정동, 서쪽에는 반포, 동쪽에는 청담동 삼성동 잠실이 위치하고 있다. 이 네 주거지역의 중간에 있는 상업 지역에 강남의 주요 빌딩들이 있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예컨대 강북의 용산이나 노원 지역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제일 익숙한 곳에 위치한 빌딩을 찾는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관리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강남의 장점은?
“교통이 발달할수록 도심으로 인구가 집중된다. 이 바람에 도심이 고밀화되고 즐길 수 있는 시설들도 이 곳으로 모인다. 서울 강남구에 지하철이 모두 6개 노선이 깔려 있다. GTX(광역철도)까지 개통되면 7개가 된다. 외곽에서의 접근성이 매우 좋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 곳으로 몰려든다. 지금은 다산 신도시, 송도 신도시, 하남 신도시, 광교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신분당선 등 지하철과 광역버스를 타고 30분만에 강남으로 와서 즐기다 돌아간다. 앞으로는 새로운 교통 노선이 더 뚫리면 천안에서 강남까지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그러면 지방의 젊은이들도 강남의 유명 가게에 몰려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것이다.
강남은 교통 뿐 아니라 직장과 주거지가 인접해 있다. 쇼핑과 의료서비스, 교육 서비스 시설도 잘 깔려 있다. 용인과 광교의 학생들도 신분당선을 타고 강남으로 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래서 ‘강남 불패' 이야기가 나온다.”
−강남에서 주로 거래되는 소형빌딩의 가격대는?
“6m 이상 도로에 접해 있고 2종 주거지역이라고 할 때 땅값이 평당 1억~1억5000만원 정도 된다. 건물들의 평균 대지 면적이 70~75평 정도 되니, 건물당 가격이 70억~150억원 정도 되는 셈이다.”
(이 때 이 부사장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었다. 이 부사장이 급한 고객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가 답신 문자를 보내는 동안 또다시 인터뷰가 중단됐다.)
인기 지역의 5가지 특징
−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 빌딩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특징을 몇가지 꼽는다면?
“첫째, 교통이 좋다. 1, 2, 3, 4, 5호선 등 지하철이나 광역교통망과 연결되어 있다.
둘째,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지역이다.
셋째,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로봇 디자인,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패션 기업이 주변에 있다.
넷째,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에 상권에도 빈부격차가 심해질 수 있다. 공실 부담이 작은 주거지 밀접 지역의 상권, 예컨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항아리 모양의 지역 내 상가도 선호 대상이다. 항아리 상권은 어떤 경우에도 수요가 줄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코로나 사태가 결국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공실률이 높은 명소, 예컨대 신촌과 홍대 주변 지역의 빌딩을 저가에 매입하는 사람도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향후 부동산 가격이 주춤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지금 빌딩을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가?
“투자자가 보는 것은 현재 시점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이다. 빌딩투자의 경우 임대료는 10년 동안 연간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땅값은 제한폭이 없다. 땅값은 한해에 20~30% 오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임대수입으로 이자나 세금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코로나 사태로 공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저가 매수가 가능한 지금이야 말로 투자 적기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이 부사장의 스마트폰이 또 울렸다. 그는 전화기 속의 고객에게 “지금 300억원에 사면, 조만간 경기가 나아지면 450억원에 곧 되팔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빌딩 시장 전망
올해의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물어봤다. 내년도 빌딩 시장 동향에 대해 문의해 보기로 했다.
−내년도 빌딩 시장 전망은?
“서울의 주요 빌딩 시장을 CBD(광화문) YBD(영등폭) GBD(강남) 3곳으로 나눈다. 올해 이 지역의 빌딩 가격이 작년보다 14~15% 정도 올랐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10~15% 정도 올라갈 것 같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빌딩 가격은 금리보다는 통화량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린다고 하면 대체로 통화량이 줄어든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정부가 예컨대 재난지원금 50조원을 푼다든지 해서 통화량을 늘리면 부동산 가격은 오르게 된다. 이러한 논리는 시장의 유동성(자금) 확대에 따른 수요층 증가가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시중에 돈이 풀리면 결국 그 돈은 법인들이 벌게 된다. 돈을 번 법인들은 사옥 같은 빌딩 매입에 나선다. 최근 법인들의 부동산 투자 문의가 많이 늘고 있는데, 남의 건물에 세를 들어 살면서 임대료를 내느니 금융비용이 들더라도 사옥을 사면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고 건물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리 인상보다 통화량이 중요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통화정책을 설명할 때 대체로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시중 통화량이 줄어들고 금리를 내리면 통화량이 늘어난다며 금리와 통화량을 연결시켜 설명한다. 그런데 금리와 통화량을 분리시켜서, 금리를 올리더라도 통화량이 늘어나는 사태가 발생하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고 설명하는 이 부사장의 현장 지혜가 돋보여 추가 질문을 던졌다.
−통화량의 측면에서 최근의 부동산 가격을 설명하면?
“최근 3년간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주택 등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그것은 통화량의 문제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재정자금을 풀면서 양측이 동시에 통화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의 공급은 제한적인데, 통화량이 증가하면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다. 주택의 경우 택지 조성하고 집을 지어 입주하는 데는 최소한 5년 걸린다. 빌딩은 공급이 더 제한적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계속 내놔도 가격이 잘 안잡히는 것은 이러한 수요와 공급간의 시차 때문이다.
내년에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일부 줄이더라도, 새로 들어선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재정자금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 전반적으로 시중의 통화량이 증가하면서 빌딩 수요가 올해 못지 않을 전망이다.”
−내년에 유망한 빌딩 거래 지역은?
“앞에서 말했듯이 서울의 핵심 주요 지역인 마포, 용산, 성수, 강남 지역의 역세권을 중심으로 거래가 활발해질 듯하다.”
주택과 토지, 빌딩 등 부동산 투자는 60세가 넘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개발도상 시대에 경제가 급성장할 때 쓴 주요 재테크 수단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출생한 MZ세대들도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MZ세대의 빌딩 투자 동향과, 이 부사장이 20년 동안 현장에서 갈고 닦은 빌딩 투자의 성공 요령으로 화제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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