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보다 실력 우선".. 팬데믹에 신개념 교육 수요 폭발 [연중기획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필재 2021. 12.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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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교육현장 '혁신 분기점'
구글 등 기업들 실력 위주 채용 힘입어
ICT 접목 '에듀테크' 시장 매년 급성장
캠퍼스 없이 프로젝트 중심 수업 진행
국내 공교육은 여전히 '등교수업 우위'
대학 서열화·입시 경쟁이 혁신 걸림돌
'학교교육 혁신' 해외 사례
#1.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가장 어울리는 인재를 만들겠다.” 2010년 문을 연 미국의 미네르바대학의 목표다. 전 세계 70여개 국가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지만 캠퍼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은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강의는 15분만 이뤄진다. 학생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1년을 보낸 뒤 서울과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7개 글로벌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수업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뤄진다. 도시의 기업 등과 협업을 통해 임무를 완수하는 식이다. 학비는 약 3만달러로 아이비리그(미국 북동부 8개의 명문 사립대) 대학의 절반 수준이다. 미네르바 대학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로 꼽힌다.

#2. 프랑스의 에콜42는 2013년 개교한 정보기술(IT) 교육기관이다. 에콜42에는 세 가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학비가 존재하지 않는다. 입학은 1년에 4번씩 진행되는 테스트에 합격하면 할 수 있다. 테스트는 코딩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와 교재도 없다. 교육과정은 5개 기초 프로젝트와 나머지 16개 정도의 미션을 완성하면 마무리된다. 평가를 맡을 교수가 없다 보니 결과는 학생들의 토론으로 낸다. 마지막 프로젝트는 석사급 수준을 요구할 정도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내야 한다. 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얻고 학교를 떠나는 학생 비율이 100%에 육박한다.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이 등장하고 있다. 학력(學歷 : 공부한 이력)보다 학력(學力 : 교육으로 얻은 능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찾아온 변화다. 글로벌 기업들은 학교 간판보다 실력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맞물려 새로운 교육을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코로나19 2년 차를 맞은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택한 가정은 지난해보다 8곳 늘어난 1409곳에 이른다. 교육계에서는 코로나19로 어린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걱정스러운 가정에서 아이의 초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가수 서태지씨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우려해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홈스쿨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서씨는 학교에서 받는 교육 대신 딸에게 드럼 등 악기를 가르치며 가족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내놨다. 학교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데다가 공교육이 다양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교실의 변화와 에듀테크

코로나19로 교실의 모습은 변했다.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교육받기 시작하면서다. 찬반이 엇갈렸던 온라인 수업은 팬데믹으로 자연스럽게 교실에 녹아들었고, 온라인 수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돼 ‘에듀테크’란 이름으로 교육 현장에 등장했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3.1%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 에듀테크 시장은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16.3%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모바일 기기 보급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에듀테크는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됐다.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가 필요한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에듀테크를 활용할 경우 교육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부풀었다.

하지만 공교육은 우선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학생들이 학교에 모이지 않으면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우리 학생들의 학습과 심리 정서, 사회성 등의 결손 문제의 경우 원래 상태로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등교수업과 수업 운영의 정상화는 교육 회복을 위한 여러 대책 중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는 “한국은 입시와 외국어 중심, 국가 주도의 보급형 시장으로 에듀테크 산업이 형성돼 있다”며 “관련 교육 제도의 변화를 지원하거나 촉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대학의 서열화… 혁신을 막다

학력 격차는 결국 좋은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명백하게 구분됐다는 의미라는 평가다. 대학의 서열화 체제가 명확하기 때문에 과도한 대입경쟁이 일어나고 이는 초중등교육의 혁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이른바 스카이(SKY) 등 소수 명문대에 입학해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기 위한 과열 현상이 마치 고속도로 병목 현상처럼 발생하고 있다”며 “한국 대학의 극심한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각 지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만들어 서울에 집중된 교육 인프라를 전국 각지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부위원장은 “여러 대학이 같은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면 대학 간에 성적순 서열화가 살아질 것”이라며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질 경우 입시경쟁 완화와 대학교육의 질 제고 두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제언했다.

국내에선 여전히 대학의 간판만을 따지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실력에 초점을 맞춰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인증서’를 취업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켄트 워커 구글 기업업무담당 수석 부사장은 “직원 채용 시 경력인증서를 4년제 대학 학위와 동등하게 취급하겠다”고 소개했다. 일론 머스크는 5명의 아이가 다니던 명문학교 재학을 중단시키며 “공장 조립라인 같은 학교 교육 대신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자신이 설립한 학교 ‘애드 아스트라’에 보냈다. 머스크는 “사람들은 학력과 명석함을 혼동하고 있고, 대학을 나왔어도 당신은 바보일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美, 무학년제 기반 수업… 스웨덴 ‘자기주도 학습’

공부한 이력보다 교육으로 얻은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학교에도 혁신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시작됐다. 교육 선진국들은 무학년제와 체험형·맞춤형 교육을 통해 시대 변화에 맞는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15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미국의 칸랩(Khan Lab)스쿨은 무학년제 프로젝트 기반의 수업이 이뤄지는 학교다. 일과의 절반은 온라인 학습으로, 나머지는 체험형 교육이 제공된다. 체험형 학습은 신체활동과 정원 가꾸기 등으로 구성됐다. 자신이 세운 목표에 도달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자기평가 방식이 적용됐고, 연 5회 발표회를 통한 피드백으로 그 과정을 확인한다. 1년에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만나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도 이수해야 한다.

스웨덴의 푸투룸(futurum) 학교는 6세부터 16세까지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이다. 자기주도 학습이 중심인 이 학교에서 교실수업은 주당 17시간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교사가 포함된 소그룹 테마학습 프로젝트에 참여해 학습한다. 아이들은 커리큘럼에 맞춰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교사는 이를 컨설팅해준다. 부모는 이 과정을 열람할 수 있다. 평가는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장했느냐’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네덜란드의 스티브잡스 스쿨은 정해진 교실 없이 어디서나 스마트 기기로 학습이 가능한 학교다. 수업은 개인 맞춤용 학습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뤄진다. 아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일 오전 60개의 계산문제와 60개의 언어문제를 학습한다. 오후에는 프로젝트 등 활동 중심의 오프라인 교육에 참여한다. 수업이 아이들에게 맞춤형으로 진행되다 보니 학부모는 자녀의 방학일과 등교일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2011년 미래학교로 난치아우(Nan Chiau) 초등학교를 선정했다. 이곳은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정보기술)기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교육 목표는 ‘글로벌 경제에 맞는 21세기 학습자 양성’이다. 1∼2학년 땐 산술능력과 리터러시(식별·판독능력)에 대한 기초를 배운다. 3∼4학년 땐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연구활동을 진행한다. 5∼6학년 땐 탐구기반의 교수와 학습을 통해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성찰하는 활동이 주를 이룬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국내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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