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이산, "성덕임 남자 되기 지존 되기 만큼 힘드네!"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1. 12. 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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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3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세손 이산(이준호 분)이 동궁전 나인 성가 덕임(이세영 분)에게 물었다. “넌 내 사람이냐?” 성가 덕임이 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이산이 다시 물었다. “그럼 너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냐? 너의 생각, 너의 의지, 너의 마음까지 모든 것이 나의 것이냐?” 성가 덕임이 다시 답했다. “아니옵니다. 궁녀에게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소인이 저하의 사람이지만 제 모든 것이 저하의 것이 아니라 감히 아뢰옵니다.”

덕임의 모든 것을 갖고 싶다는 이산에게 “아니거든. 나는 나거든”하고 대거리하는 덕임이다.

이에 앞서 영조(이덕화 분)는 이산에게 군왕도 사람이니 마음 터놓을 한 사람의 여인 정도는 마련하라고 조언하면서 자신에겐 영빈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영조의 피신처, 영조의 숨구명이 영빈 이씨였다는 고백이다. 이에 이산은 속심으로 그렇게 사랑했다면서 그 아들(사도세자)을 죽인 당신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노라고 맹세한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와 함께 등장하진 않지만 매우 중요한 국외자로 거론된다. 드라마 첫 회 이산과 성덕임의 첫 만남의 장소가 바로 영빈 이씨의 빈소였다. 생각시 덕임은 제조상궁 조씨(박지영 분)의 명으로 빈소에 조문했고 이산은 영조 몰래 친할머니의 빈소에 조문왔다가 덕임과 조우했다.

이 영빈 이씨는 나중에 의빈 성씨가 되는 덕임과 닮은 점이 많다. 6세 나이에 궁녀로 들어온 민가의 여인이다. 덕임 역시 이산의 외조부 홍봉한 집 청지기 성윤우의 딸로 어려서 궁녀로 들어왔다.

영빈은 30세의 나이로 영조의 승은을 입어 영조와의 사이에 1남 6녀를 두었고 바로 그 1남이 사도세자다. 의빈은 세손시절 이산의 승은을 거부했고 15년후 두 번째 승은을 거부하다 할 수 없이 승은을 입게 되니 승은을 입은 연배도 영빈과 크게 차이지지 않는다.

영빈은 1남 6녀의 소생 중 막내 화완옹주를 제외한 모든 자식들을 앞세운 비운의 여인이다. 그녀는 특히 세손 이산을 지키기 위해 생모임에도 영조 앞에 나아가 광증에 휘둘린 사도세자에 대한 대처분을 호소해야 했던 피맺힌 한이 있다.

의빈 역시 두차례의 유산 끝에 문효세자를 얻었지만 이후 생후 2개월도 안된 딸을 여의었으며 문효세자마저 5살 어린 나이로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당시 셋째를 임신한 상태였던 의빈은 문효세자 사후 시름시름 앓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사망한다.

영빈은 2명의 정비와 4명의 후궁 중 영조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여인으로 짐작된다. 줄줄이 딸 5명을 낳고도 총애를 잃지않고 사도세자와 화완옹주를 낳아 가장 많은 소생을 보았다. 사후 장례도 후궁으로 받을 수 있는 후정(後庭) 1등의 예로 치러졌다.

의빈 역시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정조가 친히 여러 어제문을 지어 그녀의 행장을 추억했고 장례도 영빈의 예를 따라 후정 1등의 예로 치렀다. 드라마 첫 회 제조상궁 조씨(박지영 분)가 덕임을 품에 안고 말했듯 궁녀로서 최고의 예를 받으며 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영빈 이씨와 관련해서 드라마는 극적 효과를 위해 영빈 이씨의 빈소를 이산이 영조 몰래 찾아든 것으로 묘사했지만 실역사는 다르다.

영빈 이씨의 장례 당시 세손 이산은 공식적으로 효장세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할아버지의 첩이 죽었을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조의 유일한 후계자 자격으로 장례 절차에 참여, 조문하고 영전에서 울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빈에 대한 사랑, 친할머니인 영빈을 보내는 세손에 대한 배려, 자신의 생모 숙빈의 상중 아버지인 숙종 등을 의식해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던 영조 자신의 회한 등이 결부된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극중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는 덕임은 후궁이 되길 거부한다. 비록 목욕시중을 들며 느꼈던 이산의 남성적 매력에 매료되었을지언정, 어색하게 감귤을 건네는 그 순수한 애정공세에 감읍할지언정, 충(忠)은 바칠 수 있어도 정(情)을 바칠 수는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 덕임의 입장이다.

세손 이산, 군왕 이산의 여자가 되기 보단 궁녀 성덕임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녀에겐 더 절실한 과제다. 거창한 상여를 타고 궁인들의 곡을 들으며 무슨 무슨 빈으로 궁궐을 떠나기 보단 병들어 쫓겨나더라도 궁녀 성덕임으로 궐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 덕임의 바람이다.

영빈 이씨와 의빈 성씨의 차이점이다. 의빈 성씨 성덕임이라면 손자를 살리겠다고 아들을 죽여달라 지아비에게 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덕임이기에 정조가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영조와 정조의 차이점도 있다. 이산은 사랑한다면서 지어미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영조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는가.

그런 두 사람이라서 역사 속 의빈 성씨는 분명히 상여 타고 궐을 떴고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장옥정과 함께 성덕임이란 본명도 분명하게 남겼다. 정조와의 사랑도 이뤘고 본인의 정체성도 지켜낸 것이다.

드라마상 아직까지 ‘제깟게 궁궐 아니면 어딜 가겠나’ 생각하는 이산이고 보면, 그래서 알 수 있듯 남자와 여자 이전에 여전히 세손과 궁녀라는 신분에 얽매인 이산이고 보면, 그가 성덕임이란 여자를 얻기까지는 앞으로도 제법 파란만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짝사랑 15년 끝에 결실 맺은 순정 아니었나.

한 나라의 지존 되기 만큼이나 한 여자의 남자 되기도 녹록지 않았던 역사 속 걸출한 정조대왕의 인간적 로맨스라서 ‘옷소매 붉은 끝동’이 재밌다.

/zaitung@osen.co.kr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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