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이 가고파 하던 강진 마량, 나의 먹방답사 1번지로

2021. 11. 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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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선생 건강 회복한 비결, 목리 장어
히딩크 닮은 주민사는 병영 돼지고기 마을
바다 보며 그네타는 카페 벙커 청춘핫플로
유홍준은 왜 1/226 강진에 1/7을 할애했나
임영웅이 가고 싶다고 애절하게 노래한 마량포구엔 팬클럽 영웅시대 회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여행스케치 드론촬영-조용식 작]
강진 장어구이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한국 답사여행의 바이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장을 아주 길게 장식한 답사여행 1번지 강진은 올 겨울, 노변정담할 무수한 얘기를 품은 채, 대한민국 먹방 여행 1번지가 된다.

예로부터 제주와의 교류가 많았던 강진에서, ‘탐라(제주)로 나아가는 강’, 탐진강의 끝자락 목리엔 건강의 상징 ‘강진 장어’가 계절을 모른 채 펄펄 뛴다.

충무공이 해안에서 승전을 거둔 후, 패잔병들이 육지에 숨어들면 어김없이 소탕하던 전라병영성의 병영마을엔 네덜란드인 하멜의 건강을 돕던 건강돼지 숯불갈비가 여행자를 기어코 붙잡는다.

▶임영웅은 왜 마량에 가고싶다고 했을까= 강진 지형이 임꺽정의 튼실한 두 다리 처럼 생겨, 다도해에서 길게 쑥 들어온 강진만은 해양 생물의 은신처이다. 강진만의 북쪽 끝은 탐진강과 조우한다. 강진의 어류들은 스트레스가 덜한 듯 하다. 작은 놈은 모두 방생하고 큰 놈만 잡는데, 강진의 수산물은 비린내가 별로 없다.

낚시는 손맛만 느끼고, 선상 낭만을 즐길 음식은 마량에서 싸가지고 낚시 배에 오른다.

유배왔던 수랏간 상궁은 귀향하지 않고 강진에 눌러앉아, 강진 한상차림을 임금의 밥상 처럼 만들어 전승시켰다. 연말 결산, 신년 쇄신이 별 것인가. 건강을 다시 챙기는 것이다. 건강 먹방 사이로 다산의 두툼한 인문학과 사랑이야기, 월출산자락 대나무숲에서 자란 차(茶) 향과 따스한 정담을 끼워넣는다면 결산도 쇄신도 이것으로 족하지 않겠는가. 11월말 또 다시 강진을 찾았다.

‘사랑을 맹세한 마량의 까막섬, 보고 싶어라 그리운 님아 마량에 가고 싶다.’ K뽕기·신파에 서양인들도 들썩이는 요즘, 국내 팬덤에선 방탄소년단(BTS)도 압도하는 트롯 아이돌 임영웅이 “마량항에 가고싶다”고 울부짖기에 성지순례하듯 남동쪽 끝 바짓가랑이 같은 마량으로 내달린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별로, 심지어 동리 별로도 지부가 있는 팬클럽 ‘영웅시대’ 회원들, 임영웅의 고향 포천 주민들의 마량행이 부쩍 늘었다. 조만간 임영웅노래비와 포토존도 만들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아침에 강진 도로를 지나다보면, 차창 밖으로 덜 걷힌 아침운무 속에서 월출산을 감상할 기회가 많다.

▶해안산책로, 담백한 강진회 가진 마량= 제주에서 난 말(馬)이 육지에 첫 상륙해 서울 가기 전에 몇 달 운기조식하는 곳이라 ‘말의 식량’이란 의미로 이름 지어진 마량은 고려-조선 최고 히트상품으로 ‘당대의 S전자 제품’이라 할 수 있는 청자를 해외수출하거나 한양에 보내기 위해 싣던 곳, 세곡선이 출입하던 곳, 장보고 무장상단의 이동로이기도 하다. 14년전 고금대교 개통으로 지금은 주변 5개군 섬들과의 교류 허브로서 기능한다.

조선의 산업,물류 중심지 마량은 여기에 임영웅 식 낭만에다, 나무데크에 영랑의 시를 얹어 단장한 해안 산책로의 서정, 싱싱한 강진 수산물 집산지의 매력까지 가졌다.

마량부터 가우도까지 낚시 배를 탄다. 손맛만 느끼고 횟감은 마량에서 구입해 배를 타는 것이 요즘 외지인의 낚시 풍경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광어며, 멍게며, 해삼이며, 마량 해산물에 상추까지 싸서 배에 타, 한 팀은 낚시하고 다른 한 팀은 회 먹으며 가우도 꼭대기 대형 청자조형물 등 절경을 감상한다. 강진의 회는 잡내가 전혀 없고 담백 쫄깃하다. 쌈소롬한 멍게의 끝맛은 달고 상큼했다.

가우도

▶임꺽정의 꿀벅지를 연결한 가우도 다리= 강진만의 한복판 섬 가우도는 임꺽정의 두 꿀벅지를 양쪽에서 다리로 연결했다. 때 마침 석양이라 섬과 다리에 주홍빛 노을이 깃든다.

가우도 다리를 놓을 때 안전을 고려해 출렁이지 않게 했는데, 이게 아쉬워서 섬의 북동쪽 해상 협곡에 출렁다리를 놓아, 안전대교의 멋진 전망, 출렁소교의 잔재미를 한꺼번에 준다. 가우도 산꼭대기 대형 청자에서 출발하는 짚라인은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느라 그때 그때 가동 여부가 달라지므로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마량에 돌아오면 서중어촌체험마을의 이국적인 카페 ‘벙커’를 빼놓을수 없다. 열대림 사이에 매달린 그네에 탄 채, 대양을 감상하고, 싱싱한 강진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며 푸른 바다를 굽어본다. 창가 테이블에 앉으면 방문객은 액자예술품 속 주인공이 된다.

마량 카페 벙커 앞마당 그네

목리는 강진만 북쪽 꼭대기와 연결된 탐진강 하류마을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점이고, 나루터가 있어 강진 중심부의 다양한 물자가 교류되던 곳이다. 건강한 장어가 자라는 중심지라 ‘목리이장이 면장 보다 낫다’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지정학적으로 민물장어(뱀장어), 바다장어(붕장어)가 크로스오버 하며 서로의 장점을 갖추는데,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품종인데 민물장어 맛도 나고, 민물 어종인데 갯장어의 쫄깃함도 갖는 경우는 ‘강진 장어’가 유일하다. 바닷물(남해)과 민물(탐진강)을 넘나들며 일생을 사는 장어의 양수겸장 강점이 강진 목리에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왕의 한상’ 차림이 왜 강진서 나와?= 강진 유배 초기 목리에서 1㎞ 가량 떨어진 사의재에서 기거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기력을 회복해 왕성한 저술, 교육활동을 벌이고 홍임까지 낳은 것은 목리 장어 때문이라는 추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세기 초에는 목리에 장어 통조림 공장이 있었을 정도로 광주 전남 지역의 최대 장어 생산·가공·유통 지역이었다고 향토사학자들은 전한다.

목리에 있는 20만평 강진만생태공원에는 드넓은 ‘갈대바다’ 사이로 멸종위기종 꺽저기와 수달, 도요새가 노닐고, 짱뚱어와 칠게 등 1131종이 산다. 갈대숲과 갯벌 위엔 백로떼가 떼지어 날아다니며 강진만의 수채화에 운치를 더한다. 목리는 2023년 우리나라 최남단역인 ‘강진역’이 자기 마을에 들어서면 도요새 만큼 더 높이 나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의 철새

많은 유배자들이 강진에서 건강을 회복한뒤 서울로 돌아갔다. 잔류해서 지역문화를 키운 사람도 있다. 한 수랏간상궁 유배자는 강진 한정식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유배중 많은 남녀 요리사를 길러내 강진 한정식을 정착시켰다고 강진관광재단 김바다 대표는 전했다. 그래서 12찬 이상급 반찬에 수랏간 보양과학을 더한 강진 한정식은 임금님 밥상을 빼닮았다.

▶뻘배 타고 짱뚱어잡아 요리하는 사장님의 TMI= 해장은 짱뚱어탕이 제격이다. 강진읍내의 이순임 셰프는 뻘배를 타고 다니며 낚시로,손으로 직접 잡은 짱뚱어로 탕을 끓인다. 짱뚱어의 식생, 분포, 효능 등에 대해 대학교수와 공동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이순임 사장은 전문가 답게 소상하게 설명해 준다. 그녀의 TMI 중 일부는 이렇다.

“짱뚱어는 갯벌 위 식물성 플라크톤을 먹기 때문에 오염된 곳에서 못산다. 피부호흡으로 햇볕을 쬐고 살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힘이 좋아서 토끼처럼 뛰고 새처럼 날며 뱀처럼 기고 갯벌 위에서 춤을 춘다. 성분분석 결과 담백질 함량은 소고기보다 높다. 칼로리는 낮다. 아미노산과 타우린은 미꾸라지의 2배이다. 성장기 청소년, 숙취해소,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칼슘도 풍부하다.”

그녀가 말한 효능은 참으로 많지만, 의약이슈이므로 더는 전하지 않는다.

강진 짱뚱어탕

읍내 북쪽의 병영면은 육군 군사령부급인 전라병영성 때문에 이름 붙여진 행정구역이다. 3만평 규모의 문화재 구역 내에 성루 4개와 담벽, 해자가 있고, 남쪽 성문 인근에 현대식 탱크가 세워져 있어 이채롭다.

▶충무공에게 쫓긴 왜군잔당 소탕한 병영성= 성벽의 폭이 2m 이상일 정도로 견고하고 성곽과 부설 전각이 우람했으나 100년전쯤 일본이 상당수 파괴했다. 지금 성벽 너비는 어떤가 살펴보던 찰나, 웬 여성 여행객 2명이 성벽 위로 나란히, 이유 모를 뜀박질을 하는데, 넉넉해 보이는 너비였다.

하멜이 구금생활을 하기도 했던 이곳은 ‘도깨비 장군’이라 불리던 마천목장군이 1417년 사령관으로 있을때 지었다. 설성(雪城)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마장군의 꿈 속에 눈이 내려 온세상이 하얗게 변했지만 유독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있어, 깨어나 눈 쌓이지 않은 구역으로 성곽둘레를 정했다는 구전 때문이다. 북서쪽문 앞엔 월출산이 장엄한 모습으로 내려다 본다.

1895년 폐영되기 직전 6000명이 살았다는 설명을 듣고 성루에 올라 잠시 그때를 떠올려 본다. 폐영 이후 성내 주민들은 상당수가 동편 길 건너 하멜공원이 있는 병영마을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병영마을은 과학, 건강, 민속이 있고, 한국-네덜란드 간 융합문화, 혼인의 추억이 있으며, 병영돼지숯불갈비가 있는 곳이다.

탱크가 있는 전라병영성

▶“앗 히딩크감독님, 울 동네 아재 닮았다”= 36명의 하멜 일행 중, 상당수가 잔류하고 여수로 이송된 하멜등 7명은 탈출해 유명한 하멜표류기를 남긴다.

주인공은 더이상 하멜이 아니다. 떠나지 않고 강진의 사위가 된 네덜란드 출신 주민들이다. 네덜란드인 혹은 한국-혼혈인 이웃과 정을 나누며 함께 살아왔던 병영마을 사람들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 감독을 맡았을 때 “어, 감독님, 우리 마을 아저씨랑 똑같이 생겼다”고 했단다.

전라병영성에서 풀려난 하멜 일행은 수인산 자락 수인사 스님들의 도움으로 한글과 우리말도 배우며 적응하다가 마을에 터잡고 한국인 이웃들에게 네덜란드식 흙과 돌이 섞인 토석담 쌓기를 알려준다.

병영마을 돌담 산책로는 국내 유일의 네덜란드 마을길인데 담 안쪽 집은 기와집이거나 초당이다. 기막힌 한국-네덜란드 공생문화인 것이다. 현재 800년 된 이 마을 은행나무는 하멜이 쉬면서 고향을 그리워했던 장소다.

병영마을의 네덜란드식 담장

▶네덜란드 문화로 똑똑해진 병영마을,세계유산 등재= 동서양 문화접변으로 더 똑똑해진 병영마을 사람들은 일찌감치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을 청산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저장했다. 그리고 물길 방향이 모두 다르도록 설계한 용동제-돌야제-요동제-중고제-하고제 다섯 개의 저수지를 연결한 뒤 여닫이 기능을 두어, 물이 더 필요한 지역에 더 공급하는 식의 물 조절 체계를 정립한다. 이 시스템은 최근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에 등재됐다. 한단계 더 높은 세계 농업유산 등재도 추진중이다.

저수지 고인물에는 건강한 자연산 가물치와 붕어가 자라는데, 1년에 1저수지 씩만 돌아가며, 바구니 덮기 어로기법, ‘가래치기’로 잡아, 보양을 하거나 추가 소득원으로 활용했다. 요즘은 다들 잘 살아서 그런지 ‘놀이’로 여긴다. 지난 28일 마을 가래치기 행사에선 설렁설렁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17세기 남해안에 표착했다가 병영마을에 잔류한 네덜란드인들의 후손들은 현재 약간의 이국적 느낌은 있으나 한국인 다운 외양이 80~90%쯤이다. 몇대조 할아버지가 네덜란드 사람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들은 여행객 중 네덜란드인이 있으면, 병영면이 고향이면서도, 마치 고향사람 만난 듯 반긴다고 한다.

병영 돼지구이

▶병영 돼지구이의 연탄불-석쇠 과학= 돌담길과 죽방들을 돌고돌아 드디어 병영시장에 들어서자, 군사들처럼 도열한 돼지 조형물이 보이고, 숯불갈비 냄새가 진동한다. 한국 민증 이름 희동구, 히딩크 감독 얘기에 잠시 잊고 있었던 허기가 세차게 몰려온다. 사실 숯불이 아니다. 연탄불 석쇠구이다. 석쇠에 찝어 유독 강한 연탄불에 여러 번 뒤집으면서 육즙 이탈은 막되 외피의 불필요한 기름을 털어내니, 밥도둑, 술도둑이 따로 없다.

강진에선 들려주고 싶은 얘기, 보여주고 싶은 풍경, 먹여주고 싶은 건강미식이 참으로 많다.

대구면 청자해안길의 백사어촌체험마을 백로떼 풍경, 백운동정원 이야기, 다산 사제간 백운옥판차 200년 의리,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 동백길에 핀 초의선사의 우정, 조선 최대 블루오션 산업의 족적이 담긴, 세면대도 청자인 청자박물관, 주작산자연휴양림, 만덕산, 한국민화뮤지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받는 영랑생가, 청년 문화창작소 오감통, 하저 어촌체험마을, 하트 출렁다리와 세종대왕 바위가 있는 석문공원, 신개념 림스정원 등등….

또다시 강진에 대한 이야기를 다 못한 채, 남겨 두고 만다. 유홍준이 왜 226분의 1인 기초단체 강진에 7분의 1의 분량을 할애했는지 이해가 간다. 가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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