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11·19 대책 1년.. 비슷한 정책 또 낸다는 정부
정부가 지난해 11·19 전세 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났다. 정부는 당시 공언했던 전세 공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추가로 전세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전세 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연말에 추가 전세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는데, 부동산 전문가들은 11·19 대책과 대동소이한 추가 대책으로는 전세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발표한 11·19 대책은 ▲공공임대 공실활용 ▲공공 전세주택 ▲신축 매입약정 ▲오피스텔·호텔 등 비주택 공실 리모델링 등을 활용해 오는 2022년까지 11만4000가구의 전세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8일 11·19대책 발표 후 1년이 되자 올해 공급 목표치 7만5100가구 중 81.2%에 해당하는 6만1000가구를 전세로 공급했다고 발표했다.
수치상으로는 목표치에 근접했지만 전세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에 따르면, 11·19 대책 발표 당시인 지난해 11월 셋째주부터 지난주까지 수도권의 전세가격 상승률은 10.82%, 지방은 10.09%로 모두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직전 해 같은 기간 수도권의 상승률 7.37%, 지방 5.36%보다 오히려 상승률이 더 높아졌다.
전세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며 세입자 부담은 커지기만 하는 모양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들어 이번 달 20일까지 서울에서 반전세 등 월세를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5만6169건으로, 같은 기간 이전 최고치였던 지난해의 5만4965건을 넘어섰다. 월세 거래 비중 역시 36.4%로 기존 최고치인 지난 2016년의 34.7%를 경신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지난달 123만4000원으로 지난해 10월 112만원보다 10% 넘게 상승했다. 지난달 전국 기준 평균 월세도 80만2000원으로 지난해 71만3000원보다 12.5% 올랐다. 전세 시장의 안정화라는 정책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월세 시장마저 들썩이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실패의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정부의 공급 물량이 전세 시장을 안정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첫번째고, 그나마 공급된 물량도 시장이 선호하는 전세 수요와 동떨어진 물건들이라는 것이 두번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계획대로 11만4000가구를 모두 공급한다고 하더라도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기에는 부족한 물량”이라며 “더구나 정부의 매입조건, 수요자의 임차조건에 맞는 물량을 찾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 (대책의 효과에 대해) 처음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전세 주택 공급량은 전체 임대물량의 8% 정도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전체 전세 시장을 책임지기엔 많이 부족한 물량”이라면서 “더구나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전세 주기가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면서 전세 물량 회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나마 공실 활용이나 매입약정 등을 통한 공급분은 기존 물량을 ‘공공’ 형태로 변환시킨 것”이라며 “소유권이나 형태의 변화에 불과해 엄밀히는 신규물량으로 보기 어렵다. 물량에 대해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윤지해 연구원은 또 “시장의 전세 수요층은 아파트 중심의 민간 주택을 선호하는데, 정부의 공급은 비(非)아파트 비중이 크고 입지나 평형에 있어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의 성격이 강하다”며 “이 역시 수요와 공급 간의 미스매치를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이같은 지적에도 정부는 11·19대책과 유사한 후속 대책을 준비 중이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올 연말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추가 전세 대책 방안에 대해 ▲도심 내 자투리땅 활용 ▲사전매입약정 확대 ▲빌라·연립주택 등 조기공급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 규제 완화 등을 거론했다.
심교언 교수는 “정부가 추가로 몇천~몇만 가구 규모의 전세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전세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윤지해 연구원도 “수급 미스매치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공급 대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전세시장 안정도 요원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연구원은 “수요에 맞는 공급이 이뤄지려면 민간의 임대 물량 공급을 활성화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실수요자 우대라는 명목으로 거주자에게만 세제상 혜택을 주거나 신축 주택에 의무거주기간 요건을 두면서, 도심 쪽 집주인들이 세를 놓기보다는 직접 거주하며 전세난을 심화시켰다”며 “이 부분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전세를 공급해야 할 다주택자를 규제한 것이 전세난의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여기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의 충격까지 더해진 만큼 적어도 내년까지 전세 시장의 안정화를 바라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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