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좋은 노래는 영원히 기억된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동원 ‘이별노래’
오늘(22일) 저녁 강남 모처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포스터에 적힌 제목 ‘아모따’는 ‘아름다운 마음 모아모아 따뜻한 밤’을 줄인 말이다. ‘물도 안 넘기려는 그를 다시 일으켜 혼을 내주려 합니다’라는 초대의 글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가슴이 아릴 것이다. 아픈 동료를 십시일반 도우려고 기획한 행사인데 이제 그를 일으키기도 혼내주기도 어려워졌다. 그가 영면했기 때문이다. 영원한 잠에 빠져 영원히 꿈꾸는 사람이 된 그의 직업은 가수, 이름은 이동원이다.
자선음악회가 추모음악회로 바뀌었지만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남자 이동원을 향한 사랑음악회’라는 소개문은 수정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래전 시인 한용운이 밝혀둔 대로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가수는 떠나도 가요는 남는다. 노래마을엔 영안실이 따로 없다.
추모공연에 참여하는 가수 윤형주를 지난주에 만났더니 이동원이 즐겨 부르던 ‘가을편지’(원곡 최양숙)의 가사 중 몇 글자를 바꿔서 부를 예정이라며 악보를 보여줬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친구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남겨 논 노래가 아름다워요’ 그는 이동원을 추억하면서 유독 ‘헤맨’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는데 동원이를 볼 때마다 항상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헤매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꿈을 찾아 헤매고 길을 찾아 헤매고 안갯속을 헤매다가 결국은 사경을 헤매는 존재.
이동원은 유별나게 시를 사랑한 가수다. 시가 나무라면 노래는 바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노래를 움직이는 시라고 부른다. 유명인이 세상을 떠나면 업적을 논하기 마련인데 음악동네에서 이동원의 업적은 각별하다. 좋은 시를 찾아 노래로 만드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눈으로만 읽는 시를 귀로 듣고 입으로 부르는 노래로 바꿔 대중과 가까워지는 데 교량 역할을 했다. 이제는 겨레의 노래가 된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발굴해 작곡가 김희갑에게 의뢰한 사람이 바로 이동원이다. ‘이별노래’를 쓴 시인 정호승을 직접 찾아가 노래로 부르게 해 달라 조르고 ‘열애’의 작곡가 최종혁에게 곡을 만들도록 부탁한 사람도 이동원이다.
11월에 떠난 가수들의 천국음악회는 어떤 모습일까. 김현식이 ‘내 사랑 내 곁에’를 열창한다.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오태호가 원래 쓴 가사는 그게 아니었다. ‘시간은 멀어짐으로 향해 가는데’였다. 병상에 누운 김현식은 ‘멀어짐’을 ‘멀어 집’으로 오독했고 재녹음 날짜도 잡기 전에 영면했다. 그러나 보라. 짐이 집으로 바뀌니 고향의 이미지가 추가됐다. 잘못 들어선 길이 지도를 만들어 김현식 스타일의 ‘향수’가 탄생한 셈이다. 이동원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정지용 시 ‘향수’ 중)을 헤매고 나면 김현식이 받아서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를 부르고 막내 유재하는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으로 차분히 화답할 것이다.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
기억은 뇌 속에 보관되지만 추억은 심장에 저장된다. 좋은 노래는 기억보다 추억에 서식한다. 오늘 밤 서울의 달빛 아래 어딘가에선 ‘이별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나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이별이 뭐 별건가. 기억이 목줄, 힘줄을 타고 내려와 추억에 안착하면 아픈 이별도 별이 돼 빛나기 마련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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