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국과 '해협 횡단' 난민 갈등 속 북부 난민촌 폐쇄

허경주 2021. 11. 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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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드생트 난민촌에서 1,500여 명 해산
양국 장관 '횡단 100% 방지' 합의 하루 만
스포츠브랜드 데카트론, 카누 판매 중단
16일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인근 그랑드생트 난민촌에서 경찰이 난민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그랑드생트=AP 연합뉴스

프랑스가 북서부 항구도시 덩케르크 인근 난민촌을 전격 폐쇄했다.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프랑스에서 영불해협(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는 난민 수가 급증하면서 양국 갈등의 골이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진 가운데 나온 조치다.

16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이날 덩케르크 주변에 위치한 그랑드생트 난민촌을 폐쇄하고, 이곳에 머물던 난민 1,500여 명을 해산시켰다. 이 가운데 663명은 다른 난민 수용시설로 이송됐다. 불법 이민 알선 혐의자 35명도 체포됐다.

프랑스 정부가 난민촌 문을 닫은 게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 북서부 해안 지역에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을 벗어난 뒤, 영국으로 향하려는 난민들이 끊임없이 모여든다. 영국은 국제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데다, 이미 수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어 고국을 등진 사람들 상당수가 최종 도착 목표지로 꼽는 곳이다. 영국의 '코앞'인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려 하는 셈이다. 영국행을 기다리는 동안 대규모 천막촌을 형성하기 때문에 프랑스 당국은 이를 주기적으로 철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난민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 사이 ‘신경전’이 가열된 상황에서 이뤄진 탓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프랑스 해변에서 출발해 목숨을 걸고 영국을 향하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에만 이런 식으로 바다를 건넌 난민이 2만3,000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8,404명)의 3배, 2019년(2,358명)의 10배 규모다. 특히 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육로 물동량이 줄어든 데다 화물트럭에 숨어 들어가는 루트 검역이 강화되면서, 난민들은 상대적으로 감시의 눈길이 덜한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 9월 프랑스 북부에서 출발한 난민들이 소형 고무보트를 탄 채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고 있다. 도버=로이터 연합뉴스

영불해협을 건너 밀입국하는 사람 수가 손쓸 새도 없이 증가하자, 영국은 프랑스에 책임을 돌렸다. 지난 11일의 경우 영국 국경 수비대가 1,185명을 해안에서 구출하거나 이송한 반면, 프랑스 당국은 10%도 안 되는 99명만 바다를 건너지 못하도록 막았다고도 꼬집었다. 프랑스가 사실상 난민들의 영국행을 방치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프랑스는 발끈했다. 되레 “영국이 자국 내부 정치를 위한 ‘펀치백(샌드백)’으로 프랑스를 사용하고 있다”며 난민들을 저임금으로 채용하는 영국의 노동 시장 때문에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장외 설전 끝에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과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전날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영불해협 횡단을 100% 방지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 해결책은 거론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이날 그랑드생트 난민촌 문을 닫은 것이 합의안 후속 조치 일환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폐쇄 이유를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이라고만 언급했다. 다르마냉 장관 측 관계자는 AFP통신에 “양국 장관이 만나기 전부터 이미 난민촌 해산이 예정돼 있었다”고 설명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민간 업체도 ‘난민 횡단 억제’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유럽 최대 스포츠브랜드 데카트론은 이날 프랑스 북부 칼레와 그랑드생트 판매점에서 카누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난민들이 카누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인명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 12일에는 카누를 이용해 영불해협을 건너던 난민 3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15일 칼레 앞바다에선 표류한 카누 2척에 탔던 난민 2명이 익사한 채 발견됐다. 업체 측은 “원래 목적과 달리 카누가 해협을 건너는 데 사용되면서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데카트론의 이번 카누 판매 중단 조치도 난민들의 영국행을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여전히 온라인이나 다른 스포츠용품 판매점에서 카누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탓이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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