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선들로 즉흥곡 연주..칸딘스키 추상화 떠오르는 이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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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맛이 묻어 나왔다.
화면이 내뱉는 색감은 경쾌하며 선이 이룬 형상들은 날렵하다.
선이 만들어낸 형상들과 겹쳐지고 투과되는 색들의 덩어리들.
움푹 죽 눌러 그은 흔적의 선, 사선과 연속되는 실선들, 검회색 칠판 위에 끄적거린 기호인지 문자인지 알 수 없는 네모와 세모, 실선의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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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맛이 묻어 나왔다.
화가 김령문(40)씨의 추상그림 신작들은 약동감이 특출하다. 뛰쳐나온 색과 선들은 공기처럼 화폭 위를 자유롭게 부유한다. 화면이 내뱉는 색감은 경쾌하며 선이 이룬 형상들은 날렵하다. 그러면서도 화면 자체가 가볍게 들뜨지 않는다는 느낌이 볼수록 더해지면서 시선을 붙들어 맨다. 선이 만들어낸 형상들과 겹쳐지고 투과되는 색들의 덩어리들. 두 조형 요소들이 맞물려 긴밀한 구성의 합주를 펼치고 있다. 곳곳에 널린 다른 재질의 그림들은 각기 다른 이미지의 악기가 되어 교향악이나 협주곡 선율처럼 이미지의 약동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20세기 초 음악 선율을 색과 형으로 담아 추상회화를 개척한 러시아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는 말했다. “색채는 건반, 눈은 망치,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피아노의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 목적에 맞게 우리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
서울 창성동 대안공간 사루비아에 펼친 김 작가의 개인전 ‘템포 루바토’는 한편으론 칸딘스키 추상회화를 떠올리고, 다른 한편으론 즉흥곡을 듣는 듯한 율동감을 느끼면서 보게 되는 추상회화 전시다. 작가는 다양한 물성을 지닌 나무합판, 석고, 칠판, 비닐 등 조형적 매체들 위에 각종 도구를 이용해 긋고 칠하고 파고 덧붙이고 드로잉한다. 움푹 죽 눌러 그은 흔적의 선, 사선과 연속되는 실선들, 검회색 칠판 위에 끄적거린 기호인지 문자인지 알 수 없는 네모와 세모, 실선의 이미지들. 허옇게 덧칠된 색면 아래로 부유하듯 흔들리는 색의 덩어리 혹은 굵고 가는 색선의 자취들…. 짧게, 길게, 굵게, 가늘게 엇갈리는 색의 덩어리와 선들이 물결치는 모습들은 뚜렷한 실체는 아니지만 운동감 덕분에 강렬한 궤적을 남긴다. 이런 흐름을 옮긴 무대가 천으로 된 화폭뿐 아니라 검회색 칠판, 나무 패널, 비닐, 전시장 벽의 작은 문, 칠판, 벽면 미장 도료인 핸디코트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는 것도 특이하다.
작가는 마음속에 이는 감각의 리듬이나 전율을 칸딘스키가 음악을 듣고 추상의 충동을 일으켜 붓질했듯이 화폭에 그린다. 그림들은 형식과 매체 측면에서 파격과 실험성을 보여주지만, 색조와 형태들은 안정감이 있고 구성이 단단하다. 무정형 무균질의 흔적들로 채워진 악흥의 순간이 크고 작은 화면, 원색과 단색조, 연필 드로잉의 끄적거림 등을 통해 관객의 눈에 들었다가 사라져간다. 획일적인 단색조 그림들이 색상만 바뀌어 여전히 거액에 팔리는 한국 미술판에서 모처럼 청아한 개성을 내뿜는 소장작가의 역작이 나왔다. 19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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