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판에도 기회는 오는가

한겨레21 2021. 11. 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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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협박, 무시, 모욕.. 증거 모아 '직장 내 괴롭힘' 인정받은 출판노동자
직장갑질 피해자 로하
대전시 9급 공무원 이우석(26)씨가 2021년 9월2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이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대전시청은 이씨 죽음의 원인을 감사 중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직장 갑질 피해자들은 갈등하고 좌절하다가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고 있다. 2021년 3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에는 하루 평균 100건에 이르는 상담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9월 주최한 ‘직장갑질 수기 공모전’에도 47명이 응모했다. 그중 최우수상을 받은 수기를 싣는다. 시상식은 11월5일 열렸다. _편집자

대표적인 괴롭힘 행위이지만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는 간단치 않고, 행위자가 사용자이다보니 제도 자체가 가지는 한계로 인해 신고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직장갑질119에 이메일 상담을 받았을 때, 이런 대답을 받고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겪은 일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걸까? 그럼 지금 내가 느끼는 통증이, 내가 흘리는 눈물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다는 걸까? 두려움과 울분이 눈앞을 가렸다.

알고는 있었다.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도, 사용자가 가해자면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있다는 것도. 그런데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상담자분들이 인정하면 법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구체적인 미래가 그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한 줌의 기대마저 조각조각 깨지고 나니 내 앞에는 현실만이 남았다.

그래도 신고를 할지 아니면 이대로 죽어갈지….

쉽지는 않겠지만, 당당해지셔야 합니다.

나는 답변을 몇 번이나 정독했다. 상담받기 위해 기나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첨부했던 자료를 다시 읽는 것만으로도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사건이 벌어졌던 날,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 되어서야 나는 집에 들어갔다. 손에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들고,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나는 사과했다.

“미안해. 걱정했지… 미안해.”

가족들은 이미 식사를 마친 뒤였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케이크 담당이었다. 생일을 맞이한 오빠도, 입양 기념일을 맞이한 반려동물도 편치 않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가해자 K가 남긴 말들이 칼날처럼 내 안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사유서 세 장이면 해고할 수 있는 거 알지?”

나는 20대 후반에 첫 직장에 들어갔다. 걸출한 대표작이 몇 권이나 있는 나름 이름 있는 출판사였다. K가 나를 좋게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사직서를 쓰게 하고 싶은데 기회를 줘보는 거야, 어떻게 하나 보려고.”

K는 앉아 있었고, 나는 서 있었다. 하지만 내려다보는 건 내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죄송하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또 이렇게 영혼 없는 소리 할 거면 바로 찢어버리고 사표로 바꿔서 쓰게 할 거야.”

K는 그냥 상사가 아니었다. 내 면접을 봤던 사람이고, 현재는 승진해서 부사장이 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나를 해고하기 위한 수순으로 사유서를 쓰게 하는 거라고, 앞으로 하나 틀릴 때마다 사유서를 한 장씩 받을 거라고.

“이제 한 장 시작이야, 알았어?”

욕설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폭력이었다. 나는 사유서를 내고도 반성을 담아 다시 써오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고, 사유서를 스캔해서 다른 상사들에게까지 이메일로 보내야만 했다. 그다음 회의 때는 이런 말을 들었다.

“다들 보셨죠? 사유서. 그래, 내가 ‘충격요법’을 줬는데 그간 뭘 느꼈어?”

나는 몸을 덜덜 떨었다. 두려움? 아니,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온몸을 쭈뼛 곤두서게 하는 분노였다.

“잘 생각해봐요. 그 돈 받아서 병원비로 다 나갈 수도 있어요.”

나보다 먼저 청년내일채움공제(이하 청내공) 만기를 채우고 퇴사의 길을 걸어간 동료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원했던 청내공은 사회 초년생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평생 한 번만 신청할 수 있고, 특별한 사유 없이 도중에 해지하면 그동안 쌓인 지원금도 일부밖에 인정받지 못한다. 사유가 있어 해지하면 다시 신청할 수 있지만 2년 또는 3년의 시간을 다시 채워야 한다. 회사를 오래 다니게 하는 원동력도 되지만, 고문 도구가 되기도 하는 사업이다. 나는 만기까지 6개월가량을 앞두고 있었다.

그 동료 역시 오랜 시간 K에게 시달려 중도해지를 하려고 몇 번이나 고민했었다. 다행히 만기도 채우고 버젓이 이직할 곳도 정해진 후에 퇴사했지만, 그가 담담하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도 처음에는 주변에서 잘 버텨보라고 많이 그랬는데, 이대로 계속 다니면 자살할 것 같다고 그랬어요.”

자살. 나는 그 낱말을 되새기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모았던 ‘증거’를 컴퓨터로 옮겼다.

처음으로 휴대전화의 녹음 기능을 이용한 건 대학생 때였다. 강의를 다시 듣기 위해서였다. 이후엔 면접 때, 회의 때 녹음을 했다. 오로지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는 달랐다. 여차하면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 서글프게도 그곳에서 한 녹음은 이런 의미였다.

K는 나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말을 많이 했다. 중요한 도서 업무에서 제외했고, 온갖 잡일과 “팔리지도 않는 책”을 작업하는 일만 시켰다. 그마저도 짧은 기한 안에 여러 일을 하게끔 몰아쳤다. 하지만 해고할 거라고 협박한 것치고는 큰 사건이 없었다. 그대로 별문제가 없었다면 청내공 만기가 될 때까지 참는 길을 택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두 번째로 사유서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정신도, 신체도 임계를 넘어섰다.

“넌 이제 한 번만 더 쓰면 해고야. 너 노동법 잘 알지?”

그때는 이미 여러모로 알아본 상황이라 사유서 세 장을 제출했다고 정당하게 해고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노동법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내면 더 은밀하고, 더 잔악한 수법으로 나를 괴롭힐 것 같았다.

차라리 지금 당장 바보, 멍청이가 되더라도 더 많은 증거를 잡으리라.

독하게 마음먹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선이, 그 말들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요일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건 흔했지만 그것이 매일로 바뀌었다. 새벽 3시까지 오한을 느끼며 잠들지 못했고 겨우 잠들어도 악몽을 꾸며 깼다. 어느 날은 일하는 도중 눈물이 쏟아져서 어쩔 수 없이 반차를 내고 나왔다. 식욕이 뚝 떨어졌고, 위나 장 같은 소화기관 곳곳에 문제가 생겼다. 명치는 멍든 것처럼 욱신거렸다. 그 통증이 일주일 넘게 계속됐다. 그때 깨달았다.

아, 한계가 왔구나.

모든 걸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상황을 바꾸어야 했다. 나 자신을 돌봐야 했다.

아무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신고하기로 했다. 정당하게 청내공을 중단하고 다른 곳에서 이어 하려면 폐업, 권고사직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같은 기업 사유로 퇴사해야만 했다. 인정받으면 정당하게 퇴사, 인정받지 못하면 포기하고 퇴사. 둘 중 하나가 내 길이었다.

나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았다. 직장갑질119에 수차례 문의했고, 출판계 노동자가 들어갈 수 있는 노동조합도 알아보았다. 노동청에 신고할 준비도 진행했다.

녹음 파일과 출퇴근 기록, 업무 일지, 근로계약서, 제출한 사유서, 부당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까지 모든 자료를 한곳에 모았다. 그중에서 가장 정리가 힘들었던 작업은 녹음한 내용을 문자로 옮기고 요약하는 것이었다. 속기사에게 맡기면 비용이 상당해서,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직접 듣고 글로 옮겼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되는 긴 분량도 문제였지만, 나에게 폭언을 퍼붓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음성을 문자로 옮겨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정리할 수 있었다.

또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근로복지넷의 심리 상담을 신청했다. 톡(채팅)이나 전화, 게시판 상담 등 비대면으로도 가능했고 최대 연 7회까지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어서 부담이 덜했다. 첫 상담 때는 한 시간 내내 울면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며 다음 상담도 빨리 받고 싶다고 매달렸다.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의무적으로 바깥에 나가 걸었고, 악기 연주라는 취미 활동도 붙들고 일상을 버텨냈다.

다행히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상담이 큰 도움이 됐다. 무너질 것 같은 막막함, 무언가 해결될 것 같은 기대감…. 롤러코스터처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다음 상담 시간을 목표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신고한 이후는 온통 기다림뿐이었다. 근로감독관이 배정되고, 대면조사를 하고, 회사에 통보하고, 외부 기관의 조사가 다시 진행되고…. 하나하나 일이 진행될 때마다 한 주, 두 주의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이윽고 조사를 맡게 된 외부의 노무사를 대면했을 즈음에는 사실 이런 생각도 했다. K에게 칼을 맞는 건 아닐까. 문자 그대로일 수도 있고, 비유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전자에 가까웠다. 직원을 가축처럼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누구를 얼마나 믿어야 하는지 갈등하는 순간에 수차례 직면한 것이다. 노무사 선생님은 공정하게 조사할 외부 기관이라니까 믿고 자료를 넘겼다. 그랬더니 직장갑질119 채팅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왜 그러셨어요? 자기 패를 다 보여준 셈이라 불리할 수 있어요.”

“공정하게 조사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한 거예요. 그래 봤자 회삿돈으로 고용한 사냥개.”

“요즘은 노무사 고용해서 무마하는 게 유행인가봐요.”

채팅방에서는 스태프가 아닌 사람들에게서도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말들도 듣는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여러 사례를 본 사람들이 하는 조언이니까 신빙성이 있다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말들에 정답은 없었다. 나는 ‘인정’이라는 통지서를 받았고, 유급휴가도 받았다. 청내공도 만기까지 채울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K의 처분은 받았는지조차 모를 경고 조치에 그쳤지만, 뒤에서는 “이건 빠져나갈 여지도 없이 확실하게 직장 내 괴롭힘입니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말이 내가 얻은 어떤 보상보다도 값졌다.

앞으로 사회생활 하면서 이번 못지않은 난관과 고통이 또 있을 수도 있는데, 잘못된 것에는 잘못됐다 말하고 나쁜 놈들한테는 맞서기도 하는 그런 용기와 경험을 한번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조언대로 말하고, 맞섰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내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마음이 정답이었다. 슬프고, 화나고, 무섭고, 간절했던 내 마음. 진짜 내 삶을 찾고,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정답으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이토록 깊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인도해준 것은, 직장갑질119라는 모두의 마음이었다.

직장갑질 피해자 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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