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손길 세 차례나 뿌리친 기시다의 '마이웨이'

임수택 아시아미래연구원 자문위원 2021. 11. 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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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외무상' 인사, 아베 전 총리 반대에도 관철
일본의 對韓·對中 관계에 변화일까

(시사저널=임수택 아시아미래연구원 자문위원)

지난 9월, 자민당 총재로 유력시되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을 지지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도 동참했다. 이시바와 고이즈미는 자민당 내 개혁세력이다. 고노의 대항마는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재의 지지가 예상됐던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이었다.

그런데 양자 대결 구도에 변수가 생겼다. 아베 전 총리가 갑자기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자민당 내 제1파벌인 호소다파가 기시다와 다카이치로 분열되면서 대세는 고노로 기울어 갔다. 하지만 아베가 지원했던 다카이치가 좀처럼 지지세를 넓히지 못했다. 개혁적 이미지로 국민의 인기를 얻고 있는 고노-이시바-고이즈미의 개혁세력 연대를 극복할 수 없었다. 결국 아베는 다카이치에서 다시 기시다 지지로 선회했다.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고노-이시바-고이즈미 세력에게 당권을 넘겨주기보다는 기시다를 지지해야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재 선거는 아베-아소-아마리 등 이른바 '3A'의 중진세력과 고노-이시바-고이즈미의 개혁세력 간 경쟁으로 전개되었고, 결국 3A가 지지한 기시다가 총재가 되어 총리에 올랐다.

10월4일 아베 전 총리(왼쪽 세번째)가 일본 중의원에서 새 총리로 선출된 기시다 총 리(왼쪽 두번째) 옆을 지나 치듯 걸어가고 있다.ⓒAP 연합

아베, 헌법 개정 위해 다카이치 추천…불발

새 정부의 최대 관건은 기시다 신임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이전 정부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아베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미묘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 선거 승리를 발판 삼아 의외로 '탈(脫)아베' 움직임에 빠른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와 아베 간 첫 번째 갈등은 자민당 내 간사장 인선 문제였다. 간사장 자리는 총재·부총재에 이어 당내 3위 자리다. 실질적인 권한으로는 당내 최고 자리다. 아베는 또다시 자신의 최측근인 다카이치 총무상을 추천했으나, 기시다 총리는 아마리 아키라를 임명했다. 다카이치는 결국 정조회장으로 조정됐다. 아베 전 총리가 다카이치를 강력 추천한 이유는 헌법 개정을 비롯한 자신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당의 전권을 갖는 자리에 자신과 거리감이 있는 다카이치를 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0월31일 중의원 선거에서 261석의 안정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당내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은 더 강화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날 중의원 선거에서 아마리 간사장이 의외로 낙선하면서 발생했다.

아마리는 즉시 간사장 자리를 내놓았고, 아베 전 총리는 다시 자기 사람을 간사장으로 원했다. 하지만 이 또한 기시다 총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을 새 간사장으로 임명했다.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 간 두 번째 갈등이다. 모테기 외무상이 간사장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이번엔 외무상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정권하에서 5년 이상 외무상을 역임한 외교 전문가다.

일본 내 모든 시선이 새 내각의 외무상에 누가 앉을지에 쏠렸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주변국 등 해외에서도 큰 관심이었다. 특히 몇 년째 얼어붙어 있는 한·일 관계 속에서 한국에서도 일본의 새 외교 수장은 지대한 관심사였다. 기시다 총리는 이 자리에 하야시 마사요시 중의원을 내정했다. 기시다는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재에게 이 내용을 사전에 통보했으나, 두 사람은 하야시 내정에 소극적이었다.

기시다 내각의 외무상에 임명된 하야시 의원ⓒAP 연합

'정권 2인자' 하야시, 기시다와 운명공동체

그런데 두 사람의 반대에도 기시다 총리는 하야시를 외무상에 임명했다. 기시다와 아베 간 세 번째 갈등이었다. 하야시 의원 지역구는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 바로 옆동네다. 아베는 야마구치 4선거구이고, 하야시는 3선거구다. 야마구치 2선거구는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의 지역구다. 기시 의원의 본래 이름은 아베 노부오인데, 기시 노부카즈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

야마구치 지역은 아베 전 총리가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호소다파의 2인자다. 하지만 실제는 파벌의 좌장이나 다름없다. 호소다파 좌장인 호소다 히로유키가 중의원 의장으로 결정됨에 따라 아베는 이제 자연스럽게 호소다파 좌장이 된다. 아베 자신도 호소다파 좌장을 맡아 달라는 파벌 간부들의 요청을 수락했다. 조만간 파벌 이름도 호소다파에서 아베파로 변경될 전망이다. 아베는 명실상부한 파벌의 수장으로서 필생의 정치적 목표인 헌법 개정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기시다 총리의 인기가 하락할 경우,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가 다시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 증대가 결코 달갑지 않다. 아베·아소·아마리 등 3A 영향력을 넘어 기시다 시대를 열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야시 의원을 외무상에 임명한 데는 여러 의미가 있다.

하야시는 기시다 정권의 2인자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기시다의 라이벌이 될 수도 있지만, 기시다 정권과 운명공동체이기도 하다. 하야시 외무상의 지역구가 아베 전 총리의 옆 지역구이기 때문에 아베 전 총리에게는 탐탁지 않은 상대다. 같은 야마구치 출신인 하야시는 아베와 달리 야마구치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아베가 주로 도쿄에서 생활한 것과는 다르다. 부친이 후생상을 지낸 중의원 출신의 정치인 집안이다.

하야시 신임 외무상은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후 종합상사 등 민간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한 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하고 정계에 입문한 엘리트 정치인이다. 하야시는 참의원 시절 방위상·농림수산상·문부과학상을 지내는 등 국정 경험이 풍부하다. 통상 참의원의 경우 장관 자리를 한 번 정도밖에 할 수 없는 데 비해 여러 번 장관 자리를 맡았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는 지난 10월31일 참의원에서 중의원으로 자리를 바꾸는 도전을 감행했다. 야마구치 3구는 자민당 중진인 가와무라 다케오 중의원의 지역구다. 가와무라 의원은 내각의 넘버 투인 관방상을 지낸 10선 중진의원이다. 하야시 의원이 뚝심으로 밀어붙이자 결국 가와무라 의원은 출마를 포기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당내 중진의 자리, 그것도 관방상 경력 소유자인 현역 중의원의 자리를 넘본다는 것은 정치적 리스크가 작지 않다. 그의 정치적 야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일본 국회에는 중의원과 참의원이 있다. 예산, 조약, 내각총리 지명, 법률안 의결에 대해서는 중의원이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내각불신임안 결의는 중의원만 할 수 있다. 총리가 되려면 중의원이 돼야 한다. 실제 일본의 역대 총리는 모두 중의원 출신이다. 하야시가 중의원으로 변신한 이유가 보인다. '포스트 기시다'를 노리는 것이다. 즉 차기 총리 도전이다.

한·일 관계 개선 기대는 당장 어려울 듯

하야시 외무상은 한국에 '지한파'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중국통'에 더 가깝다. 참의원 시절에는 외교방위위원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외교통인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의 역할 조정과 관련해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아베 총리 시절엔 아베 자신이 외교의 중심이 되어 전 세계를 다녔다. 아베 전 총리는 북방영토 반환, 북한에 납치된 피해자 생환 등 외교 목표를 거론했으나, 결과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미·일 관계는 강화했지만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더 악화되었다.

당시 외교 책임자인 기시다 외무상에게도 외교적 성과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기시다 정부에서도 외교 문제에서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의 역할 정립이 관심사다. 하야시 외무상은 참의원 시절 중일우호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친중파다. 중국통이기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이는 아베 진영의 공격 논리라는 주장이 나온다.

하야시의 경력에서 보듯이 그는 미국에서 공부했고, 전통적으로 일본의 외교 기본노선인 미·일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는 갈등을 관리하고 상호 이익을 위한 실용적인 관계를 정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하야시 외무상이 언급한 적이 없지만, 기시다 총리 자신이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협상에 임한 적이 있어 하야시 외무상도 그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기시다 당시 외무상은 윤병세 외무장관과 위안부 문제를 종결짓는 합의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당시 자민당 내 반발도 있었지만 기시다 외무상은 합의를 강행했다. 기시다 총리는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동시에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고 합의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화되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한국 측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 측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신임 외무상은 국제 문제에 정통하지만, 한국 문제에서만은 기시다 총리의 생각과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은 당분간 현재 상태에서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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