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인테리어는 가라.. 내 취향으로 채운, 홈 스위트 홈
30대 직장인 유진희씨의 집은 국적도, 연식도 각양각색인 물건들로 빼곡하다. 피노키오 깔대기, 사람 모양의 병따개 등 한 번 구입한 물건은 쓸모가 없어도 웬만하면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집 한구석에 자리를 내준다. '예쁜 쓰레기'로 불리는 이 물건들은 녹색, 빨간색, 갈색, 남색으로 알록달록한 그의 집 벽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나만의 집을 완성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한테 잘해주기 위해서 시선 닿는 곳마다 기분 좋아지는 물건을 뒀다"며 "이 집이 나를 가장 잘 알고 위해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잡동사니로 가득한 맥시멀리스트의 집, '클러터코어(cluttercore)'가 새로운 인테리어 스타일로 각광받고 있다. 클러터코어는 수십 년간 국경을 초월해 인테리어의 정설처럼 여겨지던 미니멀리즘, '비우는 인테리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채우는 인테리어'다. 다양한 소품과 식물이 가득하고, 화려한 패턴과 색감의 벽지나 커튼을 쓰며, 액자와 포스터로 빼곡한 벽 등이 특징이다.
좋아하는 물건으로 가득한, 편안하고 아늑한 집
클러터코어의 최대 장점은 사람에게 편안함과 아늑함을 준다는 것이다. 서울의 15평 복층 오피스텔에 사는 전지은(33)씨 부부의 집은 그가 좋아하는 가구, 그릇, 토분, 오브제들로 꽉 차있다. 다른 지역에 거주하다 사업차 잠깐 머물려고 집을 구한터라 그도 처음에는 '간단하게' 살려고 이불만 갖다 놓았다. "그런데 집이 삭막하고 집 같지 않더라고요. 마음이 안 가고 집에 오는 게 즐겁지 않은 거예요." '빈 벽을 못 보는' 본인 성향대로 집을 마음껏 꾸미고 나서야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됐다. 그는 "시간의 흔적이 남은 빈티지 제품을 좋아하는데 그런 소품들을 집에 갖다 놓으니 내가 오래전부터 여기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서경은(30)씨의 집은 디즈니랜드를 방불케 한다. 초등학생 때 만화 캐릭터에 빠진 그는 20대 초반부터 여행을 다니며 혹은 직구를 통해 미국, 영국, 일본에서 캐릭터 소품을 모았다. 도널드덕 모자, 미키마우스 도시락 가방, 스누피 달력, 푸우 TV 등 알록달록한 소품으로 가득한 집은 재기 발랄하다. 벽에 설치한 CD플레이어 위 4㎝ 남짓한 공간에도 작은 피규어를 올려 두었다. 물건을 다 꺼내놓기에는 공간이 좁아서, 상자에 보관해 놓고 때때로 소품을 바꿔주며 전시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는 "퇴근하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올 때, (캐릭터 소품들의) 보는 눈이 많아서 하나도 쓸쓸하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서도 주목하는 클러터코어
클러터코어가 물건을 막무가내로 쌓아두는 너저분한 인테리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미니멀리즘보다 오히려 정리가 더 중요한 인테리어다. BBC도 지난 6월 클러터코어 유행에 대해 보도하면서 "클러터(clutter·어수선함)라는 말에, 씻지 않은 찻잔이나 피자 상자가 굴러다니는 모습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며 "클러터코어는 결코 더럽지 않은, 미스매치에서 오는 생동감 있는 인테리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올봄 결혼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신혼집 인테리어로 클러터코어가 유명해졌다. BBC,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들 집은 영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룰루 라이틀이 담당했는데, 인도 부유층, 보헤미안,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 등에서 영감을 받은 전형적인 클러터코어 스타일로 알려졌다.
저서 '라이프 트렌드 2022(발행 부키)'에서 내년 트렌드 중 하나로 맥시멀리즘과 클러터코어를 꼽은 김용섭 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행, 공연, 전시 등 '경험 소비' 기회가 크게 줄면서 사람들이 취향을 채워 줄 물건을 소비하기 시작했다"며 "집에 더 오래 있게 되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미니멀리즘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클러터코어는 우리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주는 단서이기도 하다"며 "이를 굳이 모두 버리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겁내지 마세요, 취향일 뿐이에요
사연이 있는 물건은 클러터코어 인테리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유진희씨 집에 있는 물건 중 가장 오래된 건 30여 년 전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을 때 태교를 위해 손수 만든 호랑이 털실 자수다. 그의 집 모든 물건에는 이야기가 있다. 유씨는 "이거 살 때 누구랑 같이 갔지, 날씨가 어땠지, 같은 기억이 있어서 잘 못 버리고 계속 안고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튜버 '프로젝트 러브미'의 집에도 사람들이 '그걸 아직도 갖고 있어?'라고 되묻는 물건이 가득하다. 교복, 학생 때 명찰, 영화 티켓까지 아직 버리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준비물로 사주셨던 용이 각인된 벼루도 보자기에 곱게 싸서 각별하게 보관한다. 그는 "자취를 9년 하면서 유행에 맞춰 가구나 아이템을 샀는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촌스러워지더라"며 "내 취향이 뭔지 알고 그에 맞게 아카이브처럼 집을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클러터코어 인테리어 고수들은 말한다. "취향에 정답은 없다"고. 서경은씨는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면 맥시멀리즘을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개인 취향 차이라고 생각한다"며 "책상 위 벽처럼, 비어 있는 조그만 공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으로 채워본다면 개성 있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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