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절벽 넘어 빙하기.. '거래지수' 금융위기 이후 최저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빙하기’에 접어들고 있다.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거래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작년 7월 말 주택임대차법 개정 이후 전세 매물이 급감한 상황에서 최근 정부의 대출 규제가 더해지면서, 일선 중개업소에서는 전세 거래 건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을 ‘시장 안정’으로 단정짓기는 이르다는 평가한다. 임대차법 갱신 계약이 끝나는 세입자들이 시장에 쏟아지는 내년 8월부터 다시 전셋값이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대출 규제로 일시적으로 전세 가격을 통제할 수는 있겠지만 1주택자 실거주 의무 강화, 신규 아파트 입주 감소 등 전세 공급을 줄이는 변수들은 여전하기 때문에 언제든 시장 불안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가 안 된다
11일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거래지수는 9.8을 기록했다. 전세거래지수는 KB가 일선 공인중개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심리 지표로, 숫자가 작을수록 거래가 뜸하다는 의미다. 전세거래지수가 한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08년 12월(4.3) 이후 처음이다. 임대차법 개정 직전인 작년 6월 43.3에서 8월 26.1로 급감한 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실제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최근 ‘절벽’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줄었다. 지난달 7212건으로 2년 전(1만2378건)보다 5000건 이상 적다. 통상 전세는 2년마다 거래를 하기 때문에 2년 단위로 비교하면 거래량이 비슷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 개정 후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반전세나 월세를 선호하게 되면서 전세 거래가 급감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실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와 반전세의 비율은 36.3%로 임대차법 개정 이전인 작년 7월(27.4%)보다 8.9%포인트 높아졌다. 강남구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들은 세금 때문에 월세를 선호하고, 세입자들 역시 당장 전셋값이 오른 만큼의 보증금을 구하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반전세나 월세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거래가 급감하면서 가격도 최근 안정 추세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주간 전세 가격 상승률은 9월 첫 주 0.17%에서 이번 주 0.12%로 축소됐다. 성동구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여름까지만 해도 전세 수요가 많아도 매물이 없어서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았지만 9월부터는 대출이 잘 안 나오게 되면서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도 잘 없다”며 “일부 급한 집주인들이 호가를 3000만~5000만원 정도 낮춰 내놓기도 하지만 거래는 잘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 지속 어렵고 공급은 부족...”내년 전셋값 급등 우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전셋값 안정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2022년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보고서’를 통해 내년 전셋값이 전국적으로 6.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임대차법으로 전세 대란이 빚어졌던 작년 상승률(4.6%)보다 높은 수준이다. 건산연은 “내년 8월 이후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된 물량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 전세 가격 상승 폭을 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하는 점도 전세 시장의 불안 요소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는 2만491가구로 올해(3만1633가구)보다 35% 적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로 전세 수요를 옥죄는 정책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진단한다. 대출 규제 총량 규제가 연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내년이 되면 다시 대출 한도가 풀리는 데다, 전세 대출은 무주택자 주거 안정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규제를 지속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내년에는 대선도 있기 때문에 전세 대출은 어떻게든 풀릴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 수요가 정상화되면서 ‘2차 전세 대란’이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면 1주택자 실거주 요건 완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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