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마음을 비우고 감성을 찾다..나를 위한 작은 쉼표, 한옥

허윤희 2021. 11. 11. 1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SC : 커버스토리]ESC 커버스토리: 한옥스테이&서촌 여행
서울 종로 통인동 한옥스테이 체험과 서촌마을 여행
나만을 위한 고즈넉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
경복궁 옆 오래된 동네 돌아보며 서촌의 낭만 느껴
마당이 있는 한옥.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한옥스테이가 새로운 숙박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한옥에서 휴가를 보내는 ‘한옥캉스’ ‘옥캉스’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여행지에서 쉬면서 원격근무를 하는 ‘워케이션’(일과 휴가의 합성어)의 장소로도 인기다.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 열풍과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달래는 힐링 여행 바람이 인기의 근원지다.

복잡한 도시에서 힐링할 수 있는 서울의 한옥 숙소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한옥으로 떠나는 여행은 어떨까. 또 어떤 매력이 있을까.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가 진행하는 ‘인사이드: 한옥’ 캠페인에 참여해 직접 한옥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한옥 숙소에서 일상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한옥이 있는 낯선 동네에서 마치 동네 주민이 된 듯 살아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주목받고 있다.

한옥 천장에 노출된 서까래.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서울에서 서울로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한옥 숙소 ‘통인 1939’에 도착했다.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촌이라 하는 동네에 자리 잡은 곳이다. 서촌은 효자동·창성동·통인동·누상동·옥인동 등 동이 9개 있는데, 행정구역으로는 전부 묶어 청운효자동으로 분류한다. ‘통인 1939’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939년에 지은 고택이다. 이곳뿐 아니라 서울에서 한옥 숙박을 하는 한옥체험업소는 175곳(2021년 9월30일 기준)이 있다.

묵직한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ㅁ’자형 한옥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마당과 방이 반겨주었다. 마당을 지나 방문을 열면 주방과 마루가 나왔다. 마루 천장의 서까래가 이 집의 나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루 벽면에 진열된 한옥과 서촌에 관한 책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마루와 이어진 온돌방 안의 두툼한 이불, 손때 묻은 고가구, 도자기가 이곳이 오래된 한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옥과 잘 어울리는 한식 디저트 약과와 떡.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한옥 체험도 좋지만 일단 먹어야지. 2박3일 서촌 주민으로 살기 위해 먹거리를 사러 나갔다. 한옥 숙소에서는 식재료를 사와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집이니까. 걸어서 5분 거리에 통인시장이 있다. 떡집, 반찬가게, 정육점, 김밥집 등 다양한 상점이 나를 유혹했다. 오래된 맛집인 기름떡볶이 가게의 주인이 큰 무쇠솥에 국물 없이 기름과 고춧가루로 떡을 볶는 걸 지켜봤다. 1956년부터 60년 넘게 이어져오는 이 가게는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됐다. 흔히 먹는 고추장떡볶이와 달라, 그 특별한 맛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 오랜만에 전통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찌 구경만 하랴. 시장에서 기름떡볶이, 쑥설기, 모둠전, 약과, 채소를 바리바리 샀다.

첫날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 오는 날 한옥이라니, 텔레비전에서 보던 풍경 아닌가. 역시 운치가 넘쳤다.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니 힐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가 집 곳곳에 퍼졌다.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게 에이에스엠아르(ASMR)이지.

어둑한 마당으로 나와 불 켜진 방을 보니 낮과 다른 밤의 분위기였다. 창호를 통해 비치는 은은한 불빛이 따뜻했다. 이날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며 기사를 썼다. 감성 넘치는 ‘우중 마감’이었다.

마당에서 볼 수 있는 밤하늘의 달. 허윤희 기자

고요한 휴식 공간 마당

비가 그친 다음날 날씨가 맑았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쪽마루에 앉아 마당 위 네모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만 볼 수 있는 서울의 하늘이다. ‘하늘멍’ 하기 딱 좋은 장소. 해의 높이에 따라 마당에 나타나는 그림자가 시시각각 다른 모양을 보여주었다.

집 안에서도 여러개의 창과 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었다. 방문만 열면 바로 밖으로 통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한옥의 장점이 느껴졌다. 선조들은 한옥에서 밖을 보는 것을 ‘차경’이라 했다. 가지려 하지 않고 잠시 빌려서 풍경을 즐긴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한옥의 창과 문은 액자다. 그걸 통해 밖의 살아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고가구와 도자기가 있는 방.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곳 한옥 숙소는 30대 여성들에게 인기다. ‘통인 1939’를 운영하는 김지수 호스트는 “독채로 사용할 수 있고 마당이 있으니 친구 모임, ‘브라이덜 샤워’(결혼을 앞둔 신부를 축하하는 파티) 등을 하기 위해 찾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방문객들은 이곳 숙소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에 올려 공유를 많이 한다고 했다.

에어비앤비의 ‘인사이드: 한옥’ 캠페인에 참여한 비주얼 스토리텔러 오토(본명 정준영)는 10월의 마지막 주에 6일간 서촌의 한옥에서 살았다. “호텔 같은 경우엔 1층에서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을 열어야 비로소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 하지만 한옥은 대문의 도어록만 열면, 안쪽의 아늑한 마당과 위를 올려다보면 바로 보이는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조금은 답답한 호텔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함과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의 한옥살이 소감이다.

인왕산의 수성동 계곡. 허윤희 기자

여행자의 마음으로

마지막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서 인왕산을 향해 걸었다. 골목길에 있는 작은 텃밭, 플라스틱 의자, 담을 타고 올라간 붉은 담쟁이가 보였다. 가정집에서 나는 밥 냄새, 카레 냄새가 솔솔 풍겼다. 영업을 준비하는 빵 가게의 빵 냄새도 코를 자극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날 아침 풍경을 사진에 담은 이는 나밖에 없었다. 이 동네에 혼자 여행 온 여행객이 된 기분.

서촌의 골목길 풍경. 담벼락의 담쟁이덩굴이 붉게 물들었다. 허윤희 기자

서촌은 서울에서 옛 정취를 간직한 몇 안 되는 곳이다. 서울의 한옥마을이라 하면 북촌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서촌 인근에도 한옥이 600여채나 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한옥을 감상할 수 있다. 아파트가 생기면서 사라진 골목길을 걸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촌을 여행하듯 골목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가 담벼락에 쓴 독특한 시를 발견하게 될 테다. 문희정 작가가 쓴 수필집 〈낭만서촌〉에서 서촌을, “서울에서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흐르는 곳”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옛 정취를 품은 이곳에 있으면 마치 과거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집 담벼락에 작은 태극기와 ‘윤동주 하숙집터’라는 표시판이 보였다. 시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 있던 자리다. 아쉽게도 지금은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 10분 정도 걸으니 9번 마을버스 종점인 수성동 계곡이 나왔다. 조금 더 오르면 산책 코스인 인왕산 자락길로 접어든다. 이날 반려견과 산책을 하던 한 주민은 저녁 6시만 되면 퇴근을 한 직장인들이 야경을 보러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길 안내도에 누군가가 매직펜으로 ‘야경 포인트’라고 쓴 것이 보였다. 밤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길을 잃지 않고 야경을 볼 수 있게 표시를 한 것이다.

서촌은 걷기 좋은 동네다. 골목길뿐 아니라 경복궁 돌담길, 청와대 앞쪽길이 산책 코스로 좋다. 청와대가 있는 곳이라 사복경찰과 의경을 자주 볼 수 있는 이곳은 치안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대신 거동이 수상한 이들은 검문을 받을 수 있다. 한 주민은 청와대 앞 산책을 할 때 반려견과 같이 가야 수상한 자로 오해를 받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최근 젊은층에 인기가 높은 스페인의 사진가 요시고의 전시회도 보기로 했다. 통의동 그라운드시소 전시관 앞은 평일 아침인데도 10시 개장에 앞서 온 이들로 인산인해였다. 평일에도 줄 서서 보는 인기 사진전이라는 말이 맞았다. 요시고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전시해, ‘코시국’에 여행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성공한 전시회로 평가받는다. 엄청난 대중의 호응 덕분에 주최 쪽은 애초 12월에서 내년 3월1일까지 전시회를 연장하기로 했다.

한가지 더. 경복궁 야간 개장(오후 7시부터 9시30분까지)이 11월29일까지 진행된다. 서촌에 머문다면 궁의 가을밤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서울 서촌의 한옥에서 2박3일간 설레는 여행자의 마음을 품고 살았다. 고즈넉한 한옥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꼈다. 한옥 구조상 벌레가 들어오기 쉽고 웃풍이 있지만, 그런 불편함은 아파트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체험이 되었다. 그뿐이랴, 창과 문을 통해 볼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히 멋진 풍경 ‘소확뷰’도 있지 않은가. 낮 12시 체크아웃 시간. 서촌에서, 한옥에서 지낸 여행자의 시간이 끝나고 있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