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창간한 문학잡지 '청색종이'와 '한국시인' [김정수의 시톡 (4)]

2021. 11. 10. 09: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잡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주간경향]

한자 잡(雜)은 참 복잡한 글자입니다. ‘섞이다, 만나다, 모으다, 함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한그루의 나무에 여러마리의 새가 뒤섞여 앉아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라 합니다. 잡종, 잡식, 잡학, 잡념, 잡담, 잡음, 잡초 등 잡은 긍정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순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잡스럽고 천한 것 취급을 당했습니다. 민초(民草)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문학에선 시나 소설 이외에는 잡문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순수한 그것’을 잡지(雜誌)에 담았으니 참 아이러니하지요. 순수문학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둘레에 방어막을 치고는 잡의 개입을 경계했습니다. 순수에서도 수준을 나눠 끼리끼리 어울렸지요. 조선시대로 보면, 스스로 양반 행세를 하며 차별한 것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잡이 아닐까요. 순수혈통을 고집하다 도태되고, 쇄국으로 나라가 망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지요. 이번 가을에 창간한 문학잡지 ‘청색종이’와 ‘한국시인’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참 궁금합니다.

청색종이 /청색종이, 한국시인 / 한국시인협회


불가능한 목적에 투신한 ‘청색종이’

시 전문 계간지 ‘청색종이’가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창간 목적이 중요하겠지요. 발행인 김태형 시인은 “새로운 문예지를 시작하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목적에 투신하는 일”이라며 “불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그 뒤를 쫓는 것 또한 시적인 것이라는 믿음”으로 창간했다고 밝혔습니다. 불가능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시가 어려워지면서 독자들과 점점 멀어진다는 말을 들은 지 꽤 됐지만, 여전히 우리 삶을 따스하게 해주고 시로 위로를 받습니다. 시와 시집이 시인과 독자의 일 대 일 대화라면 잡지는 시인들과 독자들의 다 대 다 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청색종이’는 “시를 통해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실천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지향한다네요. 단순히 독자들과 대화의 장(場)을 마련하는 것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공동체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청색종이’가 불가능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창간호에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를 살펴보면 ‘청색종이’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문예지의 꽃인 기획특집은 ‘시는 어떻게 새로워지는가’입니다. 시인들의 다양한 존재양식과 이들을 수용하고 연결하는 ‘시-플랫폼’의 변화를 진단하고 미래의 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합니다. 신작소시집인 ‘시인’에서는 나희덕 시인의 신작시와 작가론을, ‘번역시’에서는 프랑시스 퐁주를 다뤘습니다. 시인들의 신작시와 시집 리뷰, 시창작 강의 등은 문학잡지의 단골 메뉴입니다. 다른 문학잡지와 차별화된 새로운 기획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파격을 선택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문학잡지라는 뜻이지요. 내용보다는 형식이 더 눈에 띕니다. ‘시’와 ‘시학’, ‘문학’이 들어가 있지 않은 ‘청색종이’라는 제호는 신선합니다. 표지를 보면 유화 바탕에 통권 제1호와 창간호를 한자로 썼습니다. 칼럼 제목과 인용시를 2도 별색으로 인쇄를 했고요. 편집디자인에 근대적 취향을 반영했습니다. 현대의 첨단보다는 조금 거칠지만, 복고적인 편집을 반영해보고 싶었답니다.

주춧돌 하나 놓은 그 자리 ‘한국시인’

한국시인협회는 국내 최초로 시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조지훈, 박남수, 박목월 등이 앞장섰지요. 이번에 창간한 반연간지 ‘한국시인’은 한국시인협회 기관지 겸 문예지입니다. 창간호를 표방했지만, 1957년 한국시인협회 발족과 함께 기관지 ‘현대시’를 2호까지 발간했고, 비정기적으로 ‘한국시인’을 소책자 형식으로 펴냈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1호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일 건 분명합니다.

회장 나태주 시인은 ‘창간사’에서 오랫동안 협회 기관지가 없었지만, 선뜻 나서서 만든 사람이 없었다며 “이참에 누군가 무모한 사람 하나 있어 주춧돌 하나 놓”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세찬 강물이고 우리는 조그만 배”라고도 했습니다. 거센 물결에 배가 부서질 수 있으니 함께 힘을 보태 강을 건너자는 것이겠지요. 각 단체장의 축사도 있습니다. 구중서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김규화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김용제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김후란 문학의집·서울 이사장,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이상국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최원현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등 쟁쟁한 여러 문학단체장의 자필 축사가 실려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은 ‘축시’에서 “삶이란/ 어떤 것이던가요/ 낯설은 심연에서 부침하곤/ 다음 날 그 바다로/ 또 다시 출항하던 일 아닌가요”라고 했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것이 삶이고 잡지 창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니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64년의 역사를 담다 보니 앞보다는 뒤를 더 돌아보게 됩니다. ‘나와 한국시인협회’에서는 이건청·신달자 전 회장의 회고담과 ‘작고시인을 그리워하며’, ‘사진 한 컷’도 과거에 손을 내밉니다. 회원들의 신작시와 신작시조, 시인의 산문, 문학관 탐방 등은 회원들의 현재를 가름할 수 있는 척도입니다. 내적 결속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문을 열어 잡(雜)을 수용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남들이 보기엔/ 저 사람은 늘 저 얼굴이라 하겠지/ 적어도 내 속엔 얼굴이 여럿”이라는 이생진 시인의 시 ‘두 개의 얼굴’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시인의 말




▲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
임혜신 지음·상상인·1만원

나의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 긋는 저녁에 도착할 수 있을까?
박미라 지음·현대시학사·1만원

이루 적을 수 없는 죄가 쌓여서
나는, 제목도 없는 반성문을 쓰고 또 쓰는
어깨 처진 시인으로 복역 중이다.



▲몽실 탁구장
이동훈·학이사·1만1000원

詩도
탁구도 폼이다.
걱정이라면
폼 잡다가
재미 놓칠까 하는.



▲살어리랏다
박일만·달아실·8000원

민족상잔 때 치열한 전투도 겪었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마을,
사람은 적고 꽃들은 지천인 거기에 뼈를 묻고 싶다.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
윤희경 지음·천년의시작·1만원

매듭을 잘 풀지 못한, 몹시 불편한 채로 보낸다.
아직 발화되지 못한 기억과 사랑을 한구석에 푹 심어 두었다.
훗날, 또 꺼내 쓸 ‘좋은 약속’들이다.



▲흐르는 나비 그리고 거짓말
임상요 지음·문학의전당·1만원

동선을 바꾸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설렌다,
나 아닌 누군가도 설레게 할 수 있기를.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