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선 것도 아닌데 '펑'..'강화유리 체중계', 괜찮을까요?

이우연 2021. 11. 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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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유리 자연폭파 사고 5년간 168건
생활용품 강화유리 안전기준 없어
제조사 "자연파손 확률 20만분의 1"
전문가 "스크래치 생기면 사용 말아야"
지난 2일 자연파손된 카스(CAS)사의 체중계. 윤아무개씨 제공

지난 2일 아침, 윤아무개(27)씨는 침실 바닥에 엄지손톱 크기의 유리 파편이 사방에 튀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리 파편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시선을 돌리다 보니 산산조각이 난 카스(CAS)사의 체중계가 보였다. 어떤 충격도 가하지 않았지만 체중계가 혼자 폭발한 것이다. 윤씨는 “몸을 맞대고 사용하는 체중계가 저절로 파손된 것을 보고 자칫하면 나도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당황했다”며 “폭발할 수 있는 제품이면 애초에 판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체중계처럼 각종 생활용품에 쓰이는 강화유리가 외부충격 없이 저절로 파손(자연파손)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강화유리 파손 사고는 최근 5년간 168건에 달하지만 체중계 제조사 등은 “강화유리 특성상 자연파손은 어쩔 수 없다”며 사용자가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는 수준이다. 현재 생활용품에 쓰이는 강화유리에는 안전기준이 따로 없는데, 파손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씨와 같이 강화유리를 사용한 체중계가 스스로 깨졌다는 경험은 온라인에 꾸준히 공유되고 있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만 최근 3년 사이 최소 5건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3일 네이버 카페에서 한 누리꾼은 파손된 카스 체중계 사진을 올리며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길래 보니 거실 한쪽에 뒀던 체중계에 아이의 발이 걸리면서 체중계가 터졌다. 체중계 위에 올라갔을 때 깨졌으면 어떻게 됐을지 끔찍하다”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도 체중계 파손 경험담을 블로그에 올리며 “우리가 매일 올라가는 체중계가 시한폭탄인 셈”이라고 적었다.

강화유리 자연파손 사고는 매년 20∼40건이 신고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강화유리 파손으로 접수된 위해 사례는 2017년 21건, 2018년 41건, 2019년 37건, 2020년 40건, 2021년(9월 기준) 29건으로 총 168건이다. 강화유리 냄비 뚜껑이 파손돼 2살 여아가 손을 베이거나, 샤워부스 유리가 깨져 40대 여성이 손과 발, 발가락에 열상을 입은 사례가 접수됐다.

전문가들은 제조 과정에서 황화니켈(Nis) 등의 불순물로 인한 결함이 생기거나, 강화유리 표면에 계속해 압력이 가해지면 파손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배병수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체중계의 경우에는 사람이 계속 체중계 위로 올라가다 보니 압력을 많이 받고 기스가 나는 과정에서 자연파손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제작 과정에서의 불량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류봉기 부산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강화유리는 충격을 가지고 있다가 손상되기 때문에 스크래치와 같은 징후가 있다면 사용하지 않는 식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체중계 제조사는 소재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스 관계자는 “강화유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강화유리가 들어가는 제품에 폭발 주의 문구를 넣은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다”며 “(자연파손 가능성을) 20만분의 1 정도의 확률로 파악하고 있다. 피해를 본 분들에게는 병원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신체가 자주 닿는 생활용품에 쓰이는 강화유리의 안전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축물이나 철도 차량, 선박 등의 창문이나 가구에 사용하는 강화유리에 대해서는 국가표준(KS)이 있지만 생활용품에 쓰이는 강화유리에는 안전기준이 따로 없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관계자는 “생활용품에 사용되는 강화유리에도 최소한의 안전기준이 필요하다”며 “비산 방지 필름 부착과 같은 조치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파손 가능성이 있는 유리의 열처리를 검증하는 ‘열간유지시험’을 필수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럽에서는 품질인증을 받으려면 해당 시험을 거쳐야 한다. 판유리창호협회 관계자는 “생활용품에 쓰이는 강화유리에도 열간유지시험 등을 거치도록 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연 장현은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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