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해프닝치곤 가볍지 않은 靑대변인 '지리盲'

이규화 2021. 11. 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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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세계지도 남북 거꾸로 그려
교황방북 불가는 추위보다 북한 때문
아르헨, 끄트머리 남극기후 사계절國
地理가 사고 지배, 지정학 매우 중요

호주를 여행하다보면 잡화점이나 서점에서 남극이 위에 그려진 '거꾸로 된' 세계 지도가 자주 눈에 띈다. 관공서나 역 등에도 이런 세계지도가 걸려있다. 북극이 위에 있는 지도에 익숙한 한국인이나 북반구 사람들에게는 신기해 보인다. 요새는 이런 지도를 국내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거꾸로 그려진 세계지도는 호주 사람들의 세계관, 지리관을 반영한다. 미국, 영국과 오커스(AUKUS) 동맹을 맺고 중공(중국공산당)의 막무가내 패권을 제어하는 데 적극 참여하는 것을 보면, 호주인들의 그런 지정학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교황 따듯한 나라 출신이어서 2월 방북 어렵다고?

지리(地理)는 사고를 지배한다. 실학(實學)이 태동한 조선 후기 그려진 지도들에서 조선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진 이유를 짐작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방북을 요청한 것과 관련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교황의 방북 시기를 묻는 질문에 '교황이 따뜻한 나라 출신이라 2월에 (추운 평양을) 방북하기는 어렵다'고 한 발언이 소란이 됐다.

박 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따뜻한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임기 내, 가능하면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2월 전후 교황의 방북을 희망하고 있는데, 그 희망사항을 알고 있는 기자가 2월 방북이 가능한가 묻자 이렇게 답한 것이다. 교황 방북이 조기에는 이뤄지기 힘들다며 애먼 '추위'를 이유로 들었다. 교황이 추위를 싫어한다는 점을 박 대변인을 통해 새삼 알게 됐는데, 문제는 '따뜻한 아르헨티나'였다.

박 대변인의 발언은 미국에서 사달이 났다. 그러잖아도 김정은 '대변인' 역할에 골몰하는 문재인 정권에 불만이었던 워싱턴DC의 대북 관련 정책입안자와 연구자들한테는 교황 방북이 어려운 이유가 추위 때문이라는 건 해괴한 논리다. 교황 방북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교황청 입장에서 봐도 최악의 인권침해국가에 가톨릭 신자와 성직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백보 양보해 인권 개선 촉구와 선교를 위해 교황이 방북한다고 해도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순순히 따라줄 리가 없다.

◇北인권 개선 없인 방북 난망, 코로나 봉쇄도 벽

북한 김정은 입장에서도 교황 방북은 어림없는 소리다. 평상시 같으면 선전을 위해 교황을 초청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엄중한 코로나 시국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4일 겨울에 내리는 눈을 통해서도 코로나가 감염될 수 있다며 철저한 방역을 주문했다. 북한은 아직도 국경을 봉쇄하고 있다.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면 수행원만 수십 수백 명에 이를 텐데, 이게 가능하겠는가. 의료수준이 낙후한 북한에 코로나가 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를 잘 아는 김정은이 정권 붕괴를 막기 위해 철통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혈압, 고지혈증 등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김정은 자신 입장에서도 코로나 감염은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김정은 위원장과 사전 교감 후에 나온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일 수 있다. 박 대변인이 교황의 방북을 전제로 추위 때문에 방북시기가 2월은 아니라고 말한 것도 교황 입장에서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비본질적 '아르헨 따뜻한 나라'가 화제

아무튼 교황 방북은 가까운 장래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한반도 정세분석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래서 박 대변인의 아르헨티나 발언이 교황 방북이라는 본질보다 더 화제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VOA방송은 지난 3일 박 대변인의 발언이 워싱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VOA는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이 "아르헨티나에 스키장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며 "아르헨티나의 관광도시 바릴로체에 있는 파타고니아 스키리조트에는 영하 25.4도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교황방북의 어려운 것을 추위에 돌린 것을 비판한 것이다.

스칼라튜 총장의 지적처럼 아르헨티나는 결코 따뜻한 나라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남회귀선(南回歸線, tropic of capricorn)이 지나는 북부지방은 연중 따뜻하지만 사계절이 있는 국가다. 미국 플로리다가 북회귀선(北回歸線, tropic of cancer) 바로 위에 있다고 해서 미국을 따뜻한 나라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르헨티나는 국토의 남북길이가 3700km에 이른다. 남부는 만년빙하로 덮여있다. 남쪽 끝자락은 남극기후에 속한다. 이런 나라를 '따뜻한 나라'라고 했으니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박 대변인은 수학교육학 박사 출신이다.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다. 그래서 그의 오인(誤認) 또는 실수는 교황방북의 비현실성만큼이나 엉뚱하다.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지도자나 중요 직책에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호주 사람들이 왜 세계지도를 '거꾸로' 그려놓고 생활하겠는가. 박 대변인의 '지리맹'(地利盲) 노출은 해프닝치곤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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