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광막한 우주를 떠돌다가 접촉하는 그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1. 11. 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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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문명이나 종교는 특정한 음식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다. 예를 들면, 이란이나 이라크, 파키스탄 등 이슬람 문명권은 돼지고기와 그 제품을 먹는 것을 금하고, 인도의 힌두교도나 시크교도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문명과 종교의 금기 현상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소설가 김초엽은 문뜩 한 생각이 피어올라서 급하게 메모했다. ‘음식의 금기 현상을 다루면서, 그 금기의 원인을 SF적으로 해석해 보자!’

음식에 대한 금기 문제를 SF단편으로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다시 지구와 인간간의 은유로까지 확장해 보고 싶었다. 인간이 지구의 일에 너무 개입해 버렸고, 지구와 복잡한 공생관계가 돼버린 시대를 의미하는 ‘인류세’라는 개념도 있지 않는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잘 진행되지 않던 기존의 작품을 뒤엎고서. 머리 속에는 행성에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든가, 주인공이 떠나간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 등은 이미 떠올라 있었다. 소설은 편하게 쭉쭉 뻗어나갔고, 나흘 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행성 ‘벨라타’의 사제 ‘노아’가 이 행성을 탐사하고 떠난 지구인 ‘이정’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행성과 생명체간 또는 지구와 인간의 공존 문제를 제기한 단편 「오래된 협약」이 탄생했다. 지구에서 온 탐사대원 이정을 맞아 벨라타의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노아, 탐사 끝에 벨라타인의 수명 단축에 영향을 미치는 ‘오브’를 먹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이정. 서른도 되기 전에 일종의 정신병을 앓다가 죽게 될 노아는 이정이 떠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오브와 벨라타인 사이에 존재해온 오래된 협약에 대해 고백하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이 행성의 시간을 잠시 빌려 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지요…먼 우주에서 온 작은 존재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떼어 주기로 결정하는 마음이, 이 잠든 행성 벨라타 전체에 깃들어 있었어요. 저는 눈을 감고 그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오래된 협약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지키고 있는 존재들을.”(224-225쪽)

‘2021년 올해의 문제소설’로 뽑힌 「오래된 협약」을 비롯해 지난 2년간 쓴 7편의 단편을 수록한 김초엽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가 출간됐다. 책은 출간 1주일 만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각종 베스트셀러 차트의 상위에 랭크됐다.

왜 수많은 독자들은 김초엽이 구축하는 작품 세계을 읽고 열광하는 것일까. 김초엽과 그의 작품은 어떤 비밀과 장점을 품고 있은 것일까. 출판 불황기에도 무려 25만부가 팔린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으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김 작가를, 26일 낮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소설 「오래된 협약」이 품은, ‘죽음을 앞두고 시간을 나눈다’는 발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처음 발단이 된 아이디어는 음식 금기였고, 소설을 쓰는 단계에서 벨라타 행성과 사람으로 관계로 극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일대일로 대응한 것은 아니고, 이야기적인 변화가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처음 발단이 된 것은 두 가지였다. 대개 편하게 썼던 것 같다.(‘삶의 시간은 행성의 시간을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많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복잡해서 바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은유로 말하고 싶었다.”

단편 「인지 공간」은 인지 공간의 관리자인 ‘나’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작고 연약해 인지 공간에 들어갈 수 없던 ‘이브’와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작품. ‘인지 공간’에 들어갈 수 없던 이브는 인지 공간 밖으로 탐험하던 중 들짐승에 의해 죽고 만다. 나는 이브의 방에서 작은 인지 공간인 ‘스피어’를 발견하고, 완전한 세상이라고 여겼던 인지 공간이 사실은 모든 것을 담지 않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기억들을 지워간다는 걸 깨닫고 결국 인지 공간을 떠나기로 하는데.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
―「인지 공간」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제가 읽고 있는 잡지의 기사에서 출발했다. 흔히 기억을 생각할 때는 추상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은데, 기사에 따르면 지식을 습득할 때 공간적으로 인접한 개념이면 뇌 안에서도 인접한 뉴런에 저장된다고 한다. 그래서 기억이란 공간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면서 남겨진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출발해 인간의 기억이 두 개골에 갇혀 있는 뇌에만 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면, 거대한 물리적 구조물로 형상화된다면, 형상화된 지식을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게 첫 번째 아이디어다. 여기에 물리적인 환경이 한 사람이 제한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공간이 많지만, 만약 휠체어 탄 사람을 위해서 그를 중심으로 설계가 되면 제한이 사라진다. 인지 공간이라는 물리적 구조가 있으면 설계된 방식에 따라 어떤 사람은 자연스러울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지공간이라는 거대한 구조물과 그것에 접근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됐다. (소설 속 인지 공간은 마치 서재나 도서관, 수납장 같은 그런 인상을 준다) 커다란 ‘정글짐’ 같은 느낌이다. 기사에선 그런 자세한 내용까지는 없었다. 기억이 공간적이라는 것만 아이디어가 됐고, 나머지는 모두 파생된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네트워크나 이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비슷한 개념 같다.”

―소설은 결국 작고, 사소하고, 배제되는 존재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연대를 보내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통해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란 결국 자신의 결함이 아닌 세계의 결함이라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보게 되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자신의 결함이 아닌 세상의 결함을 깨달은 자, 다른 위치에서 비로소 보이는 전혀 새로운 풍경, 더욱 풍성해지는 진실들…. 작가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불변하는 진리는 모두의 인지 속에서 동일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스피어가 정말로 분열일까? 스피어를 갖게 된 우리는 정말로 같은 격자를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공동 인지 공간을 거닐면서도 각자의 스피어를 통해 진리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진실을 만들어내는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268쪽)

소설집의 처음을 장식한 「최후의 라이오니」는 행성 3420ED를 탐사하게 된 결함이 있는 복제인간 ‘나’와 행성의 기계들 리더인 ‘셀’의 우정을 그린 단편이다. ‘나’는 시스템의 의뢰로 탐사할 가치가 없는 3420ED를 향했다가 기계들에게 붙잡히고, 리더 셀에 대한 비밀을 듣게 된다. 시각을 잃은 로봇인 셀은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라이오니라고 여겼고, 나는 죽어가는 셀을 만나서 그의 라이오니가 되는데.

―관건은 로몬인 내가 셀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라이오니인가 아닌지, 인데.

“아니다(웃음). 마지막 장면에서 구분을 지으려고 했었다. (셀도 이미 내가 라이오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 같은데) 그 부분도 일부러 모호하게 처리했다. 명쾌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게 관계를 복잡 미묘하게 만드니까. 그런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셀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기계이다 보니까, 오히려 기계의 사고 회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낭만 미스터리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라이오니인 것처럼 연기하고, 셀 역시 이를 받아주는 것이 되는데.

“서로 돌보는 관계를 묘사하고 싶었다. 저는 인간과 로봇, 인간과 외계인 관계를 쓸 때 인간과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따온 게 많다. 인간과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보면, 한편으론 일방적으로 사람이 강아지나 개를 돌본다고 여겨지지만, 반대로 사람이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 동물들이 와서 오히려 위로해주는 쌍방향적인 면이 있는 데, 그런 것을 SF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소설 속의 셀은 유기견, 버려진 강아지 같은 존재 아닐까요.”

단편 「로라」는 뇌의 ‘잘못된 지도’와 몸의 불일치를 치료하기 위해 ‘로라’가 세 번째 팔을 이식받겠다고 연인 ‘진’에게 통보하고, 진은 이런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취재 여행을 떠났다가 사랑과 이해가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김초엽 작가. 남정탁 기자
―로라처럼 ‘과잉 사지 감각’이라는 현상이 실제로 있는지.

“실제로 있는 내용들을 바탕으로 썼는데,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로라의 경우처럼 없는 팔을 있다고 느끼는 케이스도 있다고 책에서 봤다. 보통의 경우 팔을 잃어버렸는데,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케이스가 더 흔하고, 로라 같은 케이스는 드문 케이스다.”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하고,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가능한가.

“이해와 사랑은 별개라고 생각한다(이해할 수 없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를 비롯해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일단 그들 스스로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고 궁금해 할 것이고, 가족이나 연인 등이 그들만큼 궁금해 할 수도 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가까운 사람의 힘이 되고 주고 싶고 그가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싶지만, 마이너리티란 자기의 정체성을 설명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벽이 생길 수 있다. 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과학적 측면에 대해 조사해서 조금 더 알게 됐을 때, 내가 가진 이해가 이 사람을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좀더 객관적인 데이터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떤 사람들의 정체성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데이터화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주 세심하게 다뤄지지 않으면 이해라는 하는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실제 소수자 연구자들도 조심하는 부문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 명료하게 답을 내리지 못한 영역이기도 해서, 그것에 대한 제 생각을 「로라」를 통해 풀어본 것이다. 저는 어떤 현상이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문헌조사를 하는 타입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책부터 찾아본다. 제 입장에선 그를 이해하려 행동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그런 것을 이야기로 풀어본 것이다.”

단편 「케빈 방정식」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다른 시간을 살아가데 되는 언니 ‘현화’와 동생 ‘현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 제일 현실에 가깝게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실제 울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고, 과학적 묘사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일상까지 침범하지 않는 이론 물리학이다. 자매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도 여동생이 있어서 자매 사이에서 미묘한 애정을 묘사하려 했다.”

소설집에는 이들 외에도 특별한 방식으로 춤추는 시각장애인(「마리의 춤」)이나 발성기관이 퇴화돼 버린 ‘단희’(「숨그림자」) 등 작고, 소외되고, 배제돼온, 하지만 소중하고 사랑스런 우주적 존재들이 손을 흔들고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 다르게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 결코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는 다른 세계에서,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돌고 있는 또다른 우리를 향해.

그리하여,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몇 안되는 순간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작가의 말’ 중에서)을 절묘하게 조탁해내는 김초엽의 순간, 세계를 조우할 지도.

원예학을 전공한 음악가인 아버지,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한 어머니, 부모가 만들어내는 문화적인 환경과 독서 분위기…. 1993년 울산에서 태어난 김초엽은 어릴 적부터 소설도 좋아하고, 시도 읽었으며, 과학책도 좋아했다.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 은희경 작가의 소설 『새의 선물』, 칼 세이건의 논픽션 『코스모스』….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문학을 좋아한 그는 중학교 때 화학의 원리를 공부하면서 과학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전까지 과학을 추상적이라고 느껴온 그는, 화학의 원리를 알고 나선 물질의 세계가 견고한 원리 원칙을 가지고 있는 세계처럼 다가오는 걸 느꼈다.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고, 포항공대(화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각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동시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과 출신인데, 문학의 트랙을 타서 SF작가가 됐다.

“처음 소설은 왠지 대단한 사람들이 쓰는 것으로 느껴졌다. 에세이나 칼럼 등을 꾸준히 쓰다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소설에 도전해봤던 것 같다. 처음부터 순문학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저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쓴다면 판타지나 SF 등 장르소설쪽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한 계기들로 SF를 쓰게 됐다. 여러 작법서를 읽고 자신감이 생긴 것도 있었고, 다니던 학교에서 SF공모전이 있어서 쓰기 시작했다. 이공계이니까 SF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정도 습작한 뒤 과학문학상 공모전에 될 줄 모르고 응모했다가 소설가가 됐다. 쓰는 것도 재밌고, 결과도 잘 나오는 것 같아서 계속해서 쓰게 됐다.”

―포항공대에서 화학(학사) 및 생화학(석사)을 공부했는데, SF를 쓸 때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화학적 원리를 엄청나게 활용하는 작품을 쓰는 건 아니다. 다만, 직접적 지식을 활용하는 건 아니지만, 과학자들이 일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등 실제 과학자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묘사할 때는 제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등단 이후 소설집으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방금 떠나온 세계』(2021)를, 장편소설로 『지구 끝의 온실』(2021) 등을 펴냈다. 오늘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작가 전문 매니지먼트 기업인 ‘블러썸 크리에이티브’에 소속돼 있다.

―‘김초엽표 SF소설’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잘 읽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쓸 때마다 새롭게 쓰려고 하는 편이다. 항상 신경 쓰는 것은 독자들에게 걸림돌이 있는 것처럼 읽히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물 흐르듯 다가가는 것을 신경 쓴다. (과학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SF에 스펙트럼이 있다면 과학적 디테일이 많이 들어있는 작품이 있고, 거의 들어가지 않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 저는 중간 정도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구체화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은 과학적 디테일이다. 너무 많으면 장벽이 생기기 때문에 중간 정도가 제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구체적으로 쓸려면 디테일을 많이 넣을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일부러 이 정도만 넣는다. 작품마다 조금씩 정도가 다르다.”

―소설 문장들은 어렵지 않고, 적확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문장은 어떻게 단련하는지.

“원칙 제1번이 가독성, 잘 읽히는 문장 우선주의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고 하지 않고 잘 읽히고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걸리적거리는 부문을 덜어내는 편이다.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왜 많은 독자들이 김초엽과 작품에 열광하는 것일까(그는 지난 8월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홈페이지에서 실시한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저도 독자들이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재밌어서 많이 읽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소설에는 장르 소설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 출판계에서 지금까지 강조가 안돼서 그렇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어느 정도 비현실과 환상성이 가미된 작품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 그것이 많이 주목 받는 것 같다. 장르소설이라는 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이제 흥미를 끄는 게 아닐까.”

―롤 모델이나 참고하는 작가가 있는지.

“롤 모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좋아했던 작가로 김보영, 정소연 작가가 있다. 처음 SF를 쓰기 시작할 때 영향을 받았다.”

―작품이 많은 것 같은데, 글쓰기 전략이 있다면.

“구상을 오래 하는 편이고, 쓸 때는 빨리 쓴다. 단편은 구상을 미리 시작하고 어느 정도 줄거리를 짜놓은 뒤 집중해서 쓴다. 초고는 아무리 길어도 2주일 안에 끝내려고 하고, 빨리 쓸 때는 1주일 안에도 쓰려고 한다. 이후 많이 고친다. (이때 옆에 있던 출판사 편집자는 김 작가는 끝까지 고치는 스타일이라고 거든다.) 장편은 그렇게 안된다. 장편은 그냥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일상은 어떤지.

“초고를 쓸 때는 보통 밤에 쓴다. 낮에는 업무 연락이나 친구로부터 연락이 많이 와서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많이 읽어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책읽기도 하고 에세이 작업도 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긴 하다. 사실 규칙적으로 되지는 않고, 마감 있으면 밤이고 낮이고 쓴다. (집필은 작업실에서 하는가) 집 근처에 작업실이 있다.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생활한다. 집에선 잠만 잔다(웃음).”

―차기작 구상은 어떤가.

“당장 차기작에 대한 생각은 없다. 써보지 않은 것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지금까지 소설은 제가 잘 써보자고 해서 쓴 작품이다. 앞으로는 써보지 않은, 덜 잘 쓸 수도 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초반, 김 작가의 표정은 화가 난 듯 잔뜩 굳어 있었고 그 이유를 알지 못한 기자의 마음 역시 편치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걸까.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청각장애를 가진 그가 기자의 입모양을 보면서도 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작 전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를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던 출판사 편집자의 모습까지 겹쳐지자, 기자의 무심함이 한없이 미안하고 서글펐다.

다행히,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소리도 높아지고 빨라졌으며, 가끔 소리까지 내며 활짝 웃기도 했다. 그리하여, 1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희망하는가, 라고 묻자 처음엔 “지금 저에게는 너무 먼 모습이다. 당장 내년에 잘하는 것이 목표”라고 무덤덤하게 답하다가 재치 있는 대답을 꺼내놓는데. 그리하여, 기자의 마음도 함께 달이 뜨는데.

“피카소에게는 우리에게 알려진 몇 개의 작품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이 나오기 위해 그는 거의 2만개 작품을 그렸다고 하더라. 다작을 한 것 중에 몇 개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다. 발표한 작품이 걸작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많이 써서 그 중에 좋은 작품이 몇 개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많은 작품을 쓸 것 같은데) 말은 이렇게 해놓고, 쓰지 않을 수도 있다(웃음).”

김 작가와 편집자는 다음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고, ‘방금 떠나온 세계’의 하늘에 걸린 뭉게구름이 사람들을 팽팽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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