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꿈' 못 이룬 이순재, '리어왕' 되어 '리더를 말하다'

정혁준 2021. 11. 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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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어왕> 대장정 이순재 인터뷰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햄릿> 되고 싶어 배우의 길로
세익스피어는 바탕이 서민출신..리더는 '배려'를 알아야"
연극 <리어왕> 주연을 맡은 이순재가 10월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안에 걸려 있는 연극 <리어왕> 걸개 사진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1955년 대학교 2학년 때 충무로 스카라 극장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보며 전율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올리비에처럼 ‘햄릿’을 연기하고 싶었다. 결국 인생의 여러 갈래 길에서 배우의 길을 택한다.
이순재는 햄릿의 독백을 위해 희망의 화살을 쏘고, 희망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의 화살과 노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60여년이 훨씬 지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화살은 단단한 연극의 언어로 박혀 있었고, 그의 노래는 리어왕의 독백으로 되살아나 더 큰 울림을 전한다.
그리고 그는 또 길을 떠날 것이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기에.
(※이 글은 10월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배우 이순재와 한 인터뷰를 단편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서문은 헨리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 로버트 프로스트의 두 편의 시 <가지 못한 길>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에서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1장 햄릿

영화 <햄릿> 주연을 맡은 로렌스 올리비에가 그 유명한 햄릿 독백을 하는 장면. 이순재는 이 장면을 보고 소름이 쫙 끼쳤다고 했다. 영화는 연극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아카데미 등 해외 주요 영화상을 석권했다. 영화 <햄릿> 갈무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영화 <햄릿>(1948)에서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성벽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독백을 읊조린다. 이순재가 연극의 길로 들어선 건, 이 영화의 이 장면을 보고 난 뒤였다. “대학교(서울대 철학과) 2학년 때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오는 <햄릿>을 봤어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에서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 ‘연기도 예술’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지. 저 배우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책도 찾아보고 물어보곤 했어요. 알아보니 영국 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였죠. 그때만 해도 우리는 배우를 ‘딴따라’라고 불렀던 시절이었는데, 그 사람은 영국 왕에게 작위를 받았더라고요.”

로렌스 올리비에(1907~1989)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햄릿>은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베니스 영화제, 뉴욕 비평가협회에서 주는 상을 휩쓸었다.

영화 <꿈은 사라지고>(1959)에서 최무룡. 이순재는 최무룡을 메소드 연기의 대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영화 <꿈은 사라지고> 갈무리

이순재가 우리나라 배우 가운데 연기에서 눈여겨 본 사람은 최무룡(1928~1999)이었다. 최무룡은 중앙대 학생(법학과)일 때 연극에 심취해 <햄릿>을 통해 연극배우로 데뷔한 뒤 연기자의 길을 걷는다. 개성 있는 연기와 목소리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순재는 최무룡을 ‘메소드 연기의 대가’라고 했다.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는 극중 인물과 동일시하는 극사실주의적 연기 스타일을 말한다. 모스크바예술학교의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창안해 배우를 훈련하는 시스템에서 유래했다. 미국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메소드 연기로 배우를 훈련했고, 이곳을 나온 말론 브랜도가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영화 <대부> 등에서 응용하면서 유명해진다.

“내가 연극을 할 때는 악단에서 연기했던 분들이 연극을 많이 했어요. 감성적인 연기를 잘하시긴 했죠. 하지만 본인을 돋보이려고 ‘오바액션’도 많이 한 거지. 연기할 때는 다른 연기자도 고려하며 해야 하는데, 타인 연기를 무시하다시피 한 거예요. 그런데 최무룡 선배는 달랐어요.”

어떤 점이 달랐을까? “최무룡 선배는 연기를 절제적으로 했어요. 심리 표현에 중점을 두기도 했고. 표현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습니다. 미세한 가운데 자기표현을 잘했어요. 그렇게 디테일에 강했어요.”

2장 아버지

이순재가 세일즈맨 아버지 ‘윌리 로먼’을 맡은 연극 <아버지>(2012).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각색했다. 국립극장장과 문화부 장관을 지낸 김명곤이 제작·연출했다. 연극 <아버지> 포스터

이순재가 연극 극단에서 연습하고 있을 때 ‘누가 찾아왔다’고 했다. “나가서 보니, 아버지였어요. 연기한다고 아버지와 거의 연락을 끊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무작정 찾아오신 거야. 아버지가 이북 사람이잖아. 저를 한동안 말없이 보시더니만 ‘기래, 니 정말 이거(연극) 꼭 해야 되겠니?’라고 물으시는 거예요.”

이순재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지금까지 해 왔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니 끝까지 해보겠습니다’라고 했어. 아버지가 아무 말씀 안 하시더니 ‘기래, 앞으로 세상은 무신 짓을 하던 일류가 되면 밥이야 먹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용돈을 주시는 거야. 아버지가 연극을 허락한 거지. 그 이후엔 연극 공연을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포스터와 초대장을 보내드렸어요. 아버지에게 용돈 좀 보내달라는 거였지. 하하하.”

이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은 60여년 전 젊은 이순재의 얼굴과 겹쳤다. 아버지에게 드디어 인정받은 아들이라는 자신감, 아버지에게 용돈을 타서 좋았다는 철없는 즐거움이 스쳐 지나쳤다.

이순재가 아버지 역을 맡은 <세일즈맨의 죽음>(2000). 당시 이순재는 8년 만에 연극 무대 올라 화제가 됐다. <한겨레> 자료 사진

연극 배우의 길을 계속 갔지만, 가난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연극이 끝나면 쓸쓸했죠. 마음이 쓸쓸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쓸쓸했어요. 빵 하나, 꽃다발 하나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연극을 보러 올 여유가 안 됐지. 사람도 없고, 돈도 없을 때였어. 명동에서 연극이 끝나면 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야. 돈 한 푼 없었어. 공연 끝나면 배갈에 짬뽕 국물 하나 놓고 쫑파티를 했어요. 우는 게 일이었어요. 우는 게 일이었다고. 노래 부르다 울고 그랬지. 서럽고 자괴감도 들었지.”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끝까지 밀고 나갔지. 우리가 젊었을 때 느꼈던 그 감동과 예술성을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한 거였지.”

이순재는 친동생 얘기를 했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장남이거든. 부모님 모셔야 하잖아. 그런데 연극 배우 하면서 모시기 힘들지. 근데 내 동생은 서울대 상대를 나왔어요. 그래서 내 동생에게 ‘최악의 경우 내가 부모님을 못 모시면 네가 부모님 잘 모셔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연극을 할 때는 내 앞가림도 못 했으니, 부모님 모실 수 있겠냐고.”

‘대머리집’이란 별칭으로 불린 광화문 뒷골목 술집 명월옥 외상 장부. 이 장부엔 이순재, 최불암 등 여러 명의 연기자 이름이 올라와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60년대 서울 광화문 뒷골목엔 술집 ‘명월옥’이 있었다. 이 술집은 가게 이름보다 ‘대머리집’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일본 강점기에 처음 영업을 시작한 주인 김영덕씨 머리카락이 벗겨져서 대머리집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깨알같이 외상값이 적힌 이 집 외상장부가 2009년 공개됐다. 여기에 이름이 오른 사람은 술집 단골이었던 기자, 문인, 방송인, 교수 등 300여명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 손세일 전 국회의원 등 저명인사 외에 이순재, 최불암, 오지명, 김성원 등 연기자 이름도 많았다.

“허허. 나는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 많이는 안 갔는데, 내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그 집 주인이 아주 좋은 양반이었지. 연기자, 예술가, 작가를 이해하고 순순히 외상술도 내주곤 했으니까. 주인분이 일주일에 한 번씩 양복을 빼입고 극단과 방송국에 밀린 외상값 받으려 순회하기도 했어. 당시엔 옷과 화장품, 미제 담배를 보따리에 싸서 방송국 등을 도는 할머니도 있었고 그랬어요.”

이순재가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몇 안 되는 작품 중의 하나인 영화 <막차로 온 손님>(1967). 유현목이 감독을 맡았고 이순재, 1세대 트로이카로 불렸던 문희·남정임이 출연했다. 소설가 홍성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영화는 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문희가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과 영화 음악상을 받았다. 영화 <막차로 온 손님> 갈무리

‘햄릿’이 되고픈 젊은 이순재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순재는 9월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로서 최고의 행운은 좋은 작품과 좋은 연출을 만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햄릿 역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못 했다. 근데 최불암은 햄릿 역을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내내 떠올랐다. ‘얼마나 그 역할을 하고 싶었으면,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얼마나 부러웠으면, 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할까’라고 생각했다.

연극은 물론 다른 장르에서도 이순재는 제대로 된 주연을 맡지 못했다. 한국 영화가 전성기였던 1960년대에는 신영균·남궁원·신성일 등이 영화에서 남자 주연을 주로 맡았고, 텔레비전 전성기였던 1970년대엔 박근형·이정길·노주현 등 후배 배우가 안방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큰 키에, 덩치도 있고, 외모가 받쳐주는 배우 앞에서 이순재가 주연으로 설 자리는 없었다.

3장 풍운

티브이(TV) 안방극장에서 ‘이순재’라는 이름을 알린 <한국방송>(KBS) 역사드라마 <풍운>의 한 장면. 유주현 작가의 소설 <대원군>이 원작이다. 개화기가 배경으로 흥선대원군이 주인공이다. 이순재는 드라마에서 맡았던 흥선대원군 역이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했다. KBS 제공

이순재는 콤플렉스에 무릎 꿇지 않았다. 오히려 콤플렉스는 이순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더 큰 그릇을 만드는 틀이 됐다. 그 기간 배우의 기본을 다져나갔다. 그는 이중모음과 단모음, 장음과 단음을 구분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배우다. 언어학 천재여서가 아니다. 무수한 연습을 통해서다.

“연기의 기본은 언어 전달이죠. 그러려면 언어표현이 정확해야 해요. 난해한 언어가 나오는데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날려버리면 관객이 알 수가 없죠. ‘정(丁)세균’의 정은 짧게, ‘정(鄭)몽준’의 정은 길게 발음해야 해요. 정의(情意)와 정~의(正義)도 마찬가지고.”

이순재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역을 맡았다. 당시엔 대부분 손사래를 치는 악역도 마다치 않았다. 형사물 시리즈에서 범인만 33번을 했다. 다양한 배역을 맡으면서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를 익혀 나갔다.

평균 시청률 59.6%로 시청률 역대 1위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 인쇄소 사장으로 나온 이순재는 엄격하고 깐깐한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연기했다. 이순재 아내 역할은 김혜자가 맡았다. 최무룡의 아들인 최민수가 이 드라마에서 이순재 아들로 나온다. 최민수와 하희라는 연인 관계였다. 김수현 작가가 대본, 박철 PD가 연출을 맡았다. MBC 제공

2006년 젊은 층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레전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그는 ‘야동 순재’를 마다치 않았다. 당시 ‘거침없는’ 이순재의 활약은 29일 방송한 <다큐플렉스>(MBC) ‘청춘다큐-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지붕 아래 사는 개성 넘치는 3대 가족들의 코믹한 일상을 담은 167부작 시트콤 <거침없는 하이킥>(2006). 방영이 끝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유튜브 등에서 상당히 높은 조회 수를 보이고 있다. 이순재는 이 시트콤에서 한방병원 원장을 맡았다. 처음엔 큰 인기가 없었는데 20회 야동 순재 에피소드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MBC 제공

“내가 키가 큰 편은 아니잖아.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생긴 건 아니고(웃음). 외모가 좋으면 광고도 들어오고 주연급도 잘 맡겠지. 오달수 봐봐. 광고하게 생겼나. 하지만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끝까지 나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제 역할을 해.”

이순재는 배우를 2개 스타일로 분류한다고 했다. “하나는 모델 스타야. 인기 있고 화려해서 요행히 작품 하나 잘 만나 연기도 안 하고 광고 많이 해서 돈 많이 버는 스타죠. 다른 하나는 화려하지 않아도 인기가 없어도 연기를 알차게 하는 사람이 있어. 이런 사람이 액팅 스타야. 송강호, 최민식 이런 후배들이죠. 많은 후배가 이런 액팅 스타가 됐으면 좋겠어.”

그는 말을 이었다. “돈 많이 버는 후배 배우들이 있잖아. 그러면 돈 쓰지 말고, 액터스 스튜디오에 가서 연기 좀 배워 보라는 얘기를 자주 해요. 그런데 아무도 배우러 가는 사람이 없더구먼(웃음).”

이순재는 주연을 맡지 못했지만, 출연한 드라마는 대부분 히트작이었다. <풍운>(1982) 흥선대원군, <제2공화국>(1989) 윤보선 대통령, <사랑이 뭐길래>(1991) 대발이 아빠, <허준>(1999) 유의태, <상도>(2001) 거상, <이산>(2007) 영조, <베토벤 바이러스>(2008) 오보에 연주 할아버지 등을 맡으면서 그는 배역을 100% 소화해 냈다. 어떤 배역을 맡겨도 해냈기에 드라마 제작 때마다 섭외 0순위였다.

이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배역을 물었다. “애착이 가는 작품은 <풍운>이에요. 내가 흥선대원군을 맡기 전까지 대원군역은 김승호, 최불암처럼 체격이 큰 사람이 도맡았죠. 작은 체구 연기자가 대원군을 맡은 건 내가 처음이야. 덩샤오핑처럼 작았지만 큰 스케일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만들어 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했어요. 드라마 중에 고관대작을 앞에 두고 4분 동안 내지르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대사를 위해 피워왔던 담배도 끊었죠.”

3장 번외-정치

이순재는 65년 연기 생활에서 잠시 외출한 적이 있다. 서울 중랑구 갑에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서 낙선하고, 14대 선거에서는 당선됐다.

그는 친구 따라 정계에 입문한 거라고 했다. “배우 이낙훈이 11대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둘이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나라는 문화예술 정책 기본이 안 돼 있다. 말로만 ‘문화’, ‘문화’ 하지 구체적인 액션이 없다. 우리라도 국회에 가서 제대로 역할을 하자.’ 이런 얘기 하다 보니 정계에 입문하게 된 거였지.”

낙선 한번, 당선 한 번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13대 국회의원 선거가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었어요. 지역구에서 1등 해야 국회의원이 되는 거지. 정치인도 아닌데 소선거구제에서 선거 치르기 어렵잖아. 그래서 선거에 안 나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티브이(TV)를 보는데 여당 공천 명단이 나왔어요. 내 이름이 중랑구 갑에 딱 떠 있는 거야. 그래서 안 한다고 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사인까지 해서 안 된다’고 하더구먼. 그래서 선거에 나갔지. 졌는데 700표(759표 차이)였어. 14대에도 안 나가려 했는데, 중랑구 갑이 야당 강세지역이라 여당에서 아무도 안 나가려고 해서 나간 거지. 그때는 이겼지.”

국회의원은 어땠을까? “막상 국회의원이 돼서 문화정책을 얘기했더니, 정치인들은 관심도 없었어요. 그나마 내가 예술인에게 저작인접권을 찾아 준 사람이야. 내가 법을 뜯어고쳐서 저작인접권을 예술가에게 넘겨준 거지. 근데 그런 중요한 이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거야.”

정치인과 돈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내 경험에서 볼 때 국회의원 하려면 자신과 가족을 모두 포기해야 해요. 선거는 돈이야. 공짜 돈은 하나도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잘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정치할 때 돈 안 쓰는 선거를 만들었거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지만, 국제정세 변화에는 유연하게 잘 대처했고.”

4장 꽃보다 할배

<꽃보다 할배-스페인 편>에서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고 주저앉아 버리면 늙어버리는 거고, 난 아직도 한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라는 그의 말이 회자가 됐다. 기성세대의 ‘꼰대’와 ‘라떼’를 지적하는 사회에서 이 말은 어록으로 떠돌아다닌다.

“콘텐츠 하나를 만들 때 배우와 스태프 숫자가 70~80명에 이를 정도로 공동 작업을 해요. 근데 ‘내가 주인공이다’ ‘내가 어른이다. 편의 제공을 해라’고 하면 협동이 되겠냐고. 인기가 있으니, 나이가 들었으니 ‘대접이 좀 달라졌다’는 말을 안 좋아해요. 그건 특권을 누리겠다는 거거든. 그렇게 특권을 누리면 함께 해야 하는 일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죠.”

후배를 위한 배려도 엿보였다. “나 때문에 내 후배들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연기를 할 때 표현에 문제가 생겨요. 나도 힘있게 해야지. 후배들이 나 때문에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국민배우’, ‘직진 순재’, ‘야동 순재’, ‘꽃할배’ 등 그에게 붙은 별명도 많다. 이 가운데 어떤 별명을 좋아할까? 그는 허허 웃었다. “‘직진 순재’는 꽃할배에서 나왔죠. 할배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거든. 내가 젤 선배여서 길을 잘 찾아야 했지. ‘그 귀한 시간을 내서, 그 먼 나라까지 갔는데 하나라도 더 봐야지’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리 진 거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라는 광고 카피가 국민 유행어가 됐다.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 몰랐지. 카피를 잘 만들어 광고가 절묘했어요”라고 했다.

넷플릭스 영화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으로 열연한 오영수를 아는지를 물었다. “국립극단에서 오랫동안 연극을 한 배우여서 잘 알죠. 꾸준히 연기해 온 배우였는데, 빛을 발휘해서 좋았죠. 은근하게 축적해온 노력의 결과가 빛난 것이죠”라고 했다.

하나를 덧붙였다. “봉(준호)감독과 윤(여정)여사의 아카데미상, 케이팝,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우리나라 콘텐츠가 글로벌에서 뜨고 있는 걸 느껴요. 이젠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제대로 좀 만들자는 거지. 국내에서 1~2% 시청률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나라 콘텐츠가 세계 문화수출 상품이 되면 우리 국력과 국가 이미지에도 기여하는 거거든.”

5장 리어왕

“이 잔인한 폭풍을 견디고 있을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이여! 머리를 눕힐 집 한 칸 없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구멍 뚫린 누더기를 걸치고, 어찌 이 험한 날씨를 감당하려 하느냐. 나는 그동안 너무나 무관심했구나. 부자들이여! 가난한 자의 고통을 몸소 겪어보라. 넘쳐나는 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자.”

이순재에게 연극에서 기억나는 대사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리어왕이 폭풍우를 맞으며 참회하는 장면(3막4장)의 대사를 이렇게 읊었다.

“이게, (이 연극의) 핵이에요. 리더는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리어왕은 그렇지 않은 거지. 리어왕이 이걸 반성하고 회개하는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에요.”

연극 <리어왕>은 서울대 극예술 동문 중심으로 만든 극단 관악극회에서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은 이순재를 기리기 위해 준비한 프로젝트다. 이순재는 지난 30일부터 이달 21일까지 3주 동안 예술의전당 씨제이(CJ) 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23회차 모든 무대에 선다.

이순재가 찍은 <리어왕> 포스터 가운데 머리에 꽃과 가시로 된 왕관을 쓴 사진이 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공포가 서려 있는 얼굴이다. 미친 듯, 서글픈 듯한 표정에는 회한과 슬픔이 묻어난다.

이순재는 “사진을 잘 찍어서 그랬지, 뭐”라고 했다. 인터뷰할 때 옆에 있던 홍보기획사 파크컴퍼니 박정미 대표가 살짝 거들었다. “사실 사진을 찍을 때 의상 준비가 안 됐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리어왕> 3막도 찍어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준비를 급하게 했어요. 실제 나뭇가지로 만들어서 쓰신 거예요. 하지만 의상이 없었어요. 근데 분장 가운을 눈여겨보시고 ‘저거 입으면 되겠다’고 하셨죠. 그래서 찍으신 사진이에요. 선생님이 감정 연기를 잘하셨죠.”

이순재의 <리어왕>은 ‘원전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공연 시간만 3시간20분에 이른다. “그동안 <리어왕> 연극은 많이 있었죠. 하지만 시간을 줄이거나 연출가가 원작과 다르게 해석한 작품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셰익스피어 연극의 진수를 제대로 전달 못 했어요.”

그가 생각하는 진수는 무엇일까? “셰익스피어 연극의 진수는 대사에 있습니다. 그게 본류입니다. 리어왕 줄거리는 ‘딸들에게 속아 미쳐서 죽는다’에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대사에 문학과 사상이 녹아 있고, 시대 상황과 메시지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동안 그런 대사를 잘라 내버렸거나 다르게 해석했어요. 이번엔 원전 그대로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본령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고전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정밀한 어휘를 선택했다. 요즘은 잘 안 쓰는 ‘궁핍’ 같은 한자어가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이런 원작은 일반 극단에서 하기 힘들어요. 수익성 때문에 본전 뽑기 쉽지 않아서죠. 하지만 지금은 관객 수준이 높아졌어요. 좋은 연극을 제대로만 하면 관객은 찾는다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걱정은 됐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3층까지 모든 자리가 매진됐을 만큼 관객 호응이 좋은 편이다.

이순재는 리어왕에서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을까? “리더는 국민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민동락(왕이 백성과 더불어 낙을 같이 나눔)이죠. 이건 통치자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야근하면 족발, 막걸리 사 와서 건네주는 거예요.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눈을 돌리고 배려하는 그런 마음이죠.”

그는 덧붙였다. “셰익스피어는 바탕이 서민 출신이에요. 서민 생활에서 나오는 애환, 서민을 향한 애정을 품고 있었죠. 그런 호소를 작품에서 노래하는 거죠.”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는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도 와 닿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하는 얘기가 있죠.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재산 나눠 주지 말라’는 말이 확실히 와 닿을 겁니다(웃음). 자식 세대에겐 ‘나는 저런 자식이 되면 안 되겠다’를 생각해 보게 하며 효와 불효를 생각하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거예요. 연극에는 에드먼드라는 인물이 나와요. 출세를 위해 물불을 안 가리죠. 출세주의자의 말로를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는 2시간을 넘겨 낮 1시가 넘어섰다. 인터뷰가 힘들 법도 한데, 80대 노배우의 눈동자는 오히려 총명해졌다. 하지만 공연은 이틀 남았고, 연습은 해야 했다.

이달 17일은 이순재의 음력 생일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88살. 이순재는 이날도 <리어왕> 무대에 오른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사극 녹화를 했고, 어머니 돌아가신 날 연극 공연을 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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