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파이터'의 대출 규제, 집값 잡을까? 서민 잡을까?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1. 10. 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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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범 금감위원장, 서민 피해 반발에도 대출 규제 밀어붙여
"집값 상승률 세계 3위, 버블 차단 위해 대출 규제 불가피"
공급부족이 부른 집값 폭등 책임 떠넘기고 서민만 피해 비판도
중국 캐나다는 대출 규제로 집값 잡아, 일본은 버블 붕괴로 이어져

<2022년 집값 대전망 >2=집값 최대 변수, ‘버블파이터’ 자임하는 고승범의 대출 규제

“2010년 이후 한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이 세계 3위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율이 세계에서 속도가 가장 빠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한국의 집값이 지나치게 급등, 버블이 쌓이고 있다”면서 대출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와대의 인식과는 정반대이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작년 OECD 평균 집값 상승률이 7.7%인데 한국은 5.4%에 불과하다”며 집값 폭등 자체를 부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최근 출간한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이라는 책을 통해 “부동산 거품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한국의) 집값 상승률이 전 세계 평균보다 단연 낮다”고 했다. 주택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이다.

8월 31일 취임한 고 위원장은 한국 주택 가격이 지나치게 급등,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한 포럼에 참석, “지금 버블이냐 아니냐 사전 판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수도권 서울 집값에 계속 버블이 쌓여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의 GDP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104.2%로, 일본(63.9%) , 영국(89.4%), 미국(79.2%)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는 점도 지적했다.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폭등을 방치한 전임 금융위원장과 현 정부의 정책을 전면 비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 위원장은 행정고시 28회로 공직에 입문,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 등을 지낸 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역임한 금융전문가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태 처리를 주도했다.

일본, 중국, 캐나다 대출 규제로 집값 잡아

고 위원장이 강조하는 가계 대출 총량 규제가 집값을 잡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일까. 중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집값이 급등하자, 강력한 대출 규제 정책을 도입했다. 결국 신규 주택 판매가격이 내림세로 전환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집값 급락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출 규제로 민간 1위의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이 부도위기에 처했다.

일본은 90년대 초반 금리 인상과 함께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를 도입, 부동산 거품을 터트렸다. 캐나다는 지난 6월부터 모기지 스트레스 테스트 강화를 통해 대출을 줄였고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금리가 인상됐을 때를 가정, 소득 대비 모기지 상환능력을 심사해서 대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대출 총량규제에 대한 비판도 많다. 대출이 늘어난 것은 집값 폭등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집값 폭등의 책임을 서민들에게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가계대출 증가율 6% 가이드라인도 자의적이며 시대에 맞지 않는 관치금융이라는 주장도 있다.

금융위기 염두에 둔 버블파이터 고승범의 대출 규제

고승범 위원장은 8월31일 취임사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아데어 터너 영국 금융감독청(FSA) 의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의장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불과 일주일 전에도, 재앙이 코앞에 와 있음을 알지 못했다” 고 위원장은 “금융위기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현실화된다”고도 했다. 한국도 언제든 부동산발 금융위기가 발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 위원장은 가계 대출 증가율을 올해 6%, 년 4%로 규제하겠다고 했다. 현 정부는 주택담보 대출을 크게 규제한다고 했지만, 지난해 가계부채는 8%, 올해 2분기는 10.3% 급증했다. 고 위원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가계 대출 증가율 6%를 넘긴 일부 은행이 전세대출까지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28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은행업계 간담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고 위원장은 실수요자들의 반발에도 대출규제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는 대출 증가세를 용인할 경우, 주택시장의 버블이 더 커져 금융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위원장이 도입하려 했던 전세 대출규제는 여야 모두의 비판을 받았다. 대권에 도전한 야당 윤석열 전 검찰 총장은 “가계부채를 잡는다면서 국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밀고 있다”고 비판했고 원희룡 의원은 “문 정부가 대부업체와 깐부(친한 친구)”라고 했다. 지나친 대출 규제 탓에 서민들은 고금리를 감수하고 대부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민주당의 노웅래 의원은 “집 없는 설움 모르는 탁상행정”, 김병욱 의원은 “가계대출 총량규제는 관료주의”라고 비판했다. 여당의원들은 지나친 대출 규제가 서민들의 반발을 초래, 내년 대선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 묘수로 돌파한 고승범의 대출 규제

전세대출까지 규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실수요자 피해 없도록 하라” 고 지시, 금융위의 대출규제는 백지화되는 듯했다. 고승범 위원장은 “실수요자를 고려해 전세대출과 (중도금) 집단대출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은 성난 민심에 고 위원장이 백기 투항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고 위원장은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묘수’로 우회 돌파구를 찾았다. 전세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대출 한도를 ‘전세금 증액 금액 범위 내’로 축소한 것이다. 전세금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올랐다면, 지금까지 기존 전세대출이 없는 세입자는 임차보증금(6억원)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출 한도를 전세금 증액분까지 제한, 세입자는 오른 2억원만 빌릴 수 있다. 실수요자의 피해를 줄이면서 불요불급한 전세대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금융위는 급증하는 전세자금 대출이 전세금 급등과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갭투자로 이어져 집값을 밀어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지난 2015년 말에서 작년 말까지 5년간 금융권 전체의 전세대출 잔액은 40조원에서 153조4천억원으로 283.5% 증가했다. 실수요자를 지원한다는 명분 탓에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전세대출이 지나치게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위원회는 26일 발표한 가계 부채 관리 강화 대책을 통해 내년에는 대출을 더 줄이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대책의 핵심은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DSR) 규제의 강화이다. 내년 1월부터 가계대출 2억원을 초과하면 DSR 규제를 받는다. 내년 7월부터는 총대출 1억원 초과도 DSR 규제 대상이 된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도 DSR 규제 강화로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9월 14년만의 대폭등, 대출 규제강화론 나오면서 10월 오름세 주춤

버블파이터 고승범 효과일까. 9월만해도 14년만의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던 아파트 폭등세가 10월 들어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다. 서울에서도 나홀로 아파트를 중심으로 미계약물량이 나오고, 주간 단위 상승폭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하는 서울 아파트 매매 수급 지수도 10월 4주(25일 기준)가 100.9로, 전주 101.6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는 7주째 하락세다. 이 지수는 100 이상으로 지수가 높아질수록 매수 심리가 강하다는 의미이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의 10월 넷째주(25일 기준) 수도권 매수 우위지수는 83.8로, 1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수우위지수는 100을 초과할수록 매수자가 많다는 의미이다.

금융위는 내년도 가계 대출 증가율을 ‘4~5%대’ 수준으로 관리하고 대출 증가폭이 이를 초과할 경우, 전세대출을 포함해 더 강화된 규제를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집값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주간단위 아파트 상승률(25일 기준)이 전국 0.35%, 서울 0.25%를 기록했다. 집값이 내린 곳은 세종시(-0.01%) 한 곳뿐이다.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 급감으로 인한 전세난과 20~30대의 패닉바잉으로 언제든지 집값이 다시 급등세로 돌아설 수 있다. 이미 15억원 이상 아파트는 아예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된 만큼, 서울의 고가 주택은 추가적인 대출 규제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11월 기준금리가 동결될 경우, 주택 매수세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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