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에 보내는.. - 시애틀 추장 [김남일의 내 인생의 책 ①]
[경향신문]
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소리도 없이 끌려가 피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너무 아득하지만 그런 졸경의 세월 속에서도 악착같이 내 곁을 지켜준 책들이 몇 권은 남아 있다. 그저 고맙고 기특할 수밖에. 그중에 ‘월간 대화’라는 잡지가 있다.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펴낸, 이른바 반정부 잡지였다. 유동우와 석정남 같은 노동자들의 수기가 실려 당대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건 딱 한 권이다. 1977년 10월호. 거기에 난생처음 보는 종류의 글이 한 편 실려 있었다. 1855년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수와미족의 시애틀 추장이 보낸 답변으로, 나는 그것을 읽고 거의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다.
추장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건 조상 대대로 수천년을 살아온 그 땅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아 달라는, 그러면서 그 땅에 사는 짐승들까지 형제처럼 생각해 달라는 당부였다.
“만일 모든 짐승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커다란 영혼의 고독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대로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어 그는 또 만일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밤의 연못가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도 묻는다. 물론 당부는 지켜지지 않았다. 물음에는, 하늘을 뚫자고 치솟는 마천루와 천지를 뒤덮는 미세먼지가 대신 답을 한다. 잡지가 빛을 바래도 늘 생생함을 잃지 않던 이 글은 훗날 몇 차례 새로 번역이 이루어진다. 고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에 소개하기도 했다. 귀한 글이다.
김남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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