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시간 15분, 근골격계 질환 81%'..서울대 생협 식당의 골병 드는 노동

2021. 10.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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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서울대 생협 급식 조리실 노동 및 건강 조사연구 보고서' 발표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쉴 수가 없어요. 식사 준비하고 배식하고 배식 끝나면, 남은 거 설거지하고. 또 주방일은 서로 협력해야 하는 일이 많으니까 나 힘들다고 '잠깐 쉬고 올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예요."

"하루 종일 서 있어야 돼요. 다리가 많이 아파요. 지금 (서울대) 생협 직원(급식 조리 노동자)들 하지정맥류 수술한 사람도 꽤 있을걸요."

"지금 또 신입이 들어왔는데 힘들다고 못 다니겠다고 오늘까지만 한다고 하네요. (10명 오면 몇 명 정도 나가나요?) 절반 이상은 도로 나가는 것 같아요."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급식 조리 노동자가 부족한 인력 때문에 쉴 틈 없이 일하며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린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무거운 물건을 다루고, 긴 시간 불편한 자세로 일하는 탓에 10명 중 8명 가량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13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 조리실 노동환경 및 건강영향실태 조사연구 보고회(관악구노동복지센터 주최)'에서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작성했다.

이번 조사는 조리 노동자 84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조리 노동자 8명을 상대로 한 면접조사, 연구원들이 직접 서울대 생협 식당 4곳을 찾아 노동강도를 살핀 현장조사로 이뤄졌다.

설문조사에서는 조리 노동자들이 높은 노동강도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점 만점의 주관적 노동강도 평가 점수는 평균 14.18로 우체국 집배원, 건설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응답자 81%(68명)는 최근 1년 내에 근골격계 질환 증상이 있었다고 답했다.

▲ 13일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 조리실 노동환경 및 건강영향실태 조사연구 보고회'에서 유청희 한국노동보건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밥 먹는 시간 15분, 서울대 생협 조리 노동자의 '쉴 틈 없는 노동'"

설문조사 결과는 연구원들의 현장조사에서도 재확인됐다. 현장조사를 수행한 연구원들은 보고서에서 서울대 생협 급식조리 노동자의 노동과정을 '쉴 틈이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서울대 생협 조리 노동자는 대부분 근무표에 따라 오전 8시 혹은 10시에 출근해 각자 역할에 따라 전날 손질해둔 재료로 당일 음식을 조리하거나 오후에 사용할 재료를 손질한다. 이후 본격적인 배식 업무가 시작되기에 앞서 10시 40분쯤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15분 정도다.

11시부터는 대부분의 조리 노동자가 하던 업무를 중단하고 배식 업무에 들어간다. 배식은 보통 오후 2시쯤 마무리된다. 찾는 인원이 많은 학생회관 식당의 배식 업무는 오후 3시 정도에 끝난다.

점심 배식이 끝나면 오전 8시에 출근한 노동자에게는 30분 휴식이 주어지고 다른 노동자들은 설거지와 청소를 시작한다. 아직 손질하지 않은 재료가 있다면 이를 손질하기도 한다. 저녁 급식까지 이뤄지는 식당에서는 다음 배식 업무 준비가 시작되기도 한다.

조리 노동자들은 일하는 시간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 보고서의 책임연구원으로 발표를 맡은 유청희 한국노동보건연구소 연구원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일이 힘들어 스테로이드를 맞고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며 "실제로 보니, 정해진 배식 시간에 맞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속도가 매우 빠르고 '쉴 틈 없는 노동'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20kg 쌀 포대 나르고, 종일 서서 일하고...폐암 위험물질 '조리흄' 노출도"

질병과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작업환경도 관찰됐다.

우선 무거운 물건을 다뤄야했다. 서울대 생협 식당에 들어오는 쌀 포대 무게는 20kg이다. 초·중·고등학교 급식실에서는 노동자의 근골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10kg이나 5kg 쌀 포대를 들여오는 추세다.

식당에서 쓰이는 밥솥의 무게도 비었을 때 8.4kg, 쌀을 담으면 16.8kg에 달했다. 숟가락을 담는 통의 무게는 12kg, 젓가락을 모은 통의 무게는 8.7kg이었다. 조리 노동자들은 또 식판, 국그릇, 덮밥용 그릇을 담은 박스 등 중량물을 일상적으로 다루며 일했다.

또, 조리 노동자들은 쉴 틈 없는 노동시간의 대부분을 서서 보냈다.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도 조리도구를 청소하고 바닥을 닦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거나 쪼그려 앉는 등 불편한 자세로 있었다. 조리대나 배식대도 노동자의 신장에 맞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밖에 질병 사고 위험요인으로는 △ 폐암 위험물질인 조리흄(고온 기름 조리시 나오는 연기)를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식당의 환기장치 △ 항상 물이 남아있는 데도 미끄럼 방지장치가 없는 바닥 등이 지목됐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들이 촬영한 서울대 생협이 운영하는 학생회관 식당의 환기 상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인력 충원하고 위험한 작업환경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연구원들은 서울대 생협 조리 노동자의 노동 강도 완화를 위해 인력 충원, 몸에 무리를 가하는 작업 조건의 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 원구원은 "서울대 생협 조리 노동자들은 사람이 부족해 일하는 시간 동안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릴 뿐 아니라 연차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며 "노동자들이 필요할 때 쉴 수 있게 하고 일할 때 부담 작업을 줄이려면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연구원은 "노동자들이 들고 나르는 물건의 무게를 줄이고 배식대의 높이를 낮추는 등 개선공사도 필요하다"며 "제대로 연기를 빨아들이지 못하는 환기장치와 미끄럼방지 장치가 없는 바닥 등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도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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