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냐 보존이냐]② 모호한 규정이 낳은 검단신도시 건설중단.. "3기 신도시에서도 반복될 일"
[편집자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인근에 20층까지 지은 아파트가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 문화재청이 이 아파트가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 재건축 아파트는 표면조사 과정에서 문화재가 쏟아져 나오면서 착공이 수개월째 미뤄지는 실정이다. 문화재는 아니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노후 건축물을 보존하는 문제로 건축심의가 지연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문화재 보존과 지역 개발 사이의 해법은 없을까. 최근 사례를 통해 보존과 개발의 공존 방법을 모색해봤다.
지난 7월 문화재청은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3개 단지 총 44개 동 가운데 김포 장릉의 경관을 가리는 19개 동에 대해 공사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들 건설사가 문화재 인근에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아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건설사들은 택지개발을 시행했던 인천도시공사가 지난 2014년 문화재 관련 허가를 받아둔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 추가 심의를 받지 않은 것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건설사 관계자는 “택지개발에 대한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은 택지를 2017년 하반기에 매입해 2019년 사업계획 승인을 받는 등 적합한 절차에 따라 시공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중단 사태는 건설사들과 문화재청 간의 지리한 소송전이 이어지며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사 중단 명령에 반발한 건설사들은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이를 인용했다.
그러자 문화재청은 기존 명령을 직권 취소하고 새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현재는 건설사 3곳이 공사 중지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다시 한 번 제기하고, 이 가운데 한 곳만 신청이 인용돼 공사를 재개하는 상황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지난달 17일 올라온 해당 청원에 대한 동의는 열흘여 만에 13만명이 넘었다.
문화재법을 위반한 아파트를 철거하자니 애꿎은 입주민들이 분양권을 날릴 위기이고, 그대로 아파트를 짓자니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된 왕릉이 고층 아파트 병풍에 휘감길 판이다.
이처럼 난처한 사고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호한 문화재 보호 관련 법제가 낳은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해당 택지가 개발되던 지난 2014년 당시 인천 서구청은 검단신도시 택지개발계획에 대해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법 저촉사항 없음’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그러나 2017년 문화재청은 김포 장릉 인근에 대한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새로 고시했는데, 반경 500m 내에 들어서는 최고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개별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고시에는 ‘허용기준의 고시 이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도시계획 변경 시 문화재청장과 사전 협의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있었다. 인천 서구청과 건설사 측은 도시계획이 변경되지 않았으므로 다시 심의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는 입장이고, 문화재청 측은 택지개발계획과는 별개로 건축심의도 당연히 받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건축사업은 건축 심의 과정에 문화재 관련 심의도 포함되지만, 검단신도시와 같은 대규모 택지는 택지개발을 맡은 시행사가 미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라면서 “택지개발 이후 실제 건축 행위가 이뤄지는 수년 사이 문화재 규정이 바뀌면서 허가를 받았다고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모호한 문화재 보호 규정...심의위원만 공략하면 된다?
이외에도 문화재 보호 관련 법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일관적이지 못한 모호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따르면, 문화재 반경 500m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돼 건축행위 전 현상변경 허가신청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자체 조례에 따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가 다르다.
경기·대전·세종 등은 문화재 종류와 용도지역에 따라 반경 300~500m를 보존지역 범위로 규정했지만, 부산·대구·인천 등은 반경 200~500m가 보존 범위다. 서울의 경우에는 국가지정문화재는 반경 100m, 시·도지정문화재는 반경 50m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경기도 녹지지역과 인천 도시지역의 경계 부근에 건축물을 신축한다고 하면, 보존지역의 범위가 경기도 기준인 반경 500m가 될지, 아니면 인천 기준인 반경 200m를 보존지역으로 봐야할 지 모호한 부분이다.
이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 관련 법은 문화재 신규 지정 시 6개월 내에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현상변경 허용기준)’을 마련하고 고시하도록 하고 있다. 문화재 보존지역을 여러 구역으로 나눈 뒤, 각각의 구역에 대해 허용되는 건축행위를 규정해두는 것이다.
문제는 현상변경 허용기준 고시의 내용도 모호한 부분이 많아 검단신도시 사례처럼 얼마든지 사후에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사적 제367호 남양주 ‘영빈묘’에 대해 지난 2017년 1월 고시된 내용을 보면, 보존지역을 총 4개 구역으로 나눴다.
고시에 따르면, 영빈묘에 인접한 세개 구역은 ▲1구역 개별심의 ▲2구역 건축물 최고 높이 5m 이하(이하 평스라브 기준) ▲3구역 건축물 최고 높이 8m 이하 등으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면적이 넓은 4구역의 경우에는 ‘남양주시 도시계획조례 등 관련 법률에 따라 처리’라고만 언급되어 있다.
문화재청이 아닌 지자체 단위의 문화재위원회에서 어느 정도까지 개발을 허용할 지에 대해 매 사안마다 심의를 열어 판단하라는 의미다. 문화재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한 전문가는 “보직 변경이 잦은 공무원들은 허가 기준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아, 위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게 대다수”라면서 “위원 몇 명에게 사업의 향방이 달린 셈이라 시행·시공사가 로비를 통해 ‘안 되는 것도 되도록’ 통과시키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 6372만㎡ 개발되는데...체계적인 문화재 계획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개발 사업과 문화재 보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지자체별로 체계화된 문화재 관리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는 5년마다 ‘역사도심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서울시를 제외하면 별도의 문화재 관리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는 “문화재청에서 내놓는 개별 고시와 같은 규정은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일 뿐, 문화재마다 지닌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자체 차원에서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남양주 왕숙·인천 계양·하남 교산·부천 대장·고양 창릉·광명 시흥·의왕군포안산 등 3기 신도시 신규택지 13곳을 잇달아 발표해오고 있다. 이들 택지지구의 총 면적은 약 6372만㎡에 달한다.
여기에 지난해 8·4대책에서는 신도시 용적률을 상향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지역의 문화재 보존과 택지개발 사업의 충돌은 더욱 빈발할 전망이다. 약 3만8000가구가 들어설 창릉신도시만 해도, 택지예정지구로부터 약 250m 거리에 사적 제198호 ‘서오릉’이 위치하고 있다. 검단신도시 사례처럼 고층 아파트 병풍에 둘러싸인 조선 왕릉이 또다시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다.
김 명예교수는 “대규모 택지개발은 인근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한 만큼, 지금의 단순한 고시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추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면서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만 맡기지 말고 개발의 주체가 되는 LH 등이 사전에 문화재 인근이나 경관 등에 대한 계획을 함께 수립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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