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잠근다고? 사상초유 자폭규제가 가져올 변화 [집코노미TV]
가계부채 폭증·부동산 유동성 공급
미운오리 된 전세대출 '수술' 시사
*9월 30일 집코노미TV 유튜브 채널에서 라이브로 진행된 방송의 스크립트입니다. 빨리 보는 것을 원하시는 독자 분들은 유튜브 또는 네이버TV에서 2배속으로 재생해주세요.
▶전형진 기자
혹시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라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우리 말로는 '부러진 화살'인데요.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위 워 솔저스'라는 영화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진내사격(陣內射擊)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진영에 적이 들어왔기 때문에 포격을 해달라, 아군이 죽는 오폭을 감수하고서라도 제압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요즘 전세대출 규제가 거론되는 상황이 브로큰 애로우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비유해봤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이고, 앞으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함께 기사를 보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시중은행이 전세대출을 잠그거나 한도를 줄이고 있다고 하죠. 일단 당국에서 규제를 시작한 건 아닙니다. 다만 규제를 시사하고 있죠. 초강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요.
사실 은행들의 연간 가계부채 증가 상한은 전년 대비 6% 정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내년부터 4%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아직 연말이 되지 않았는데 6%가 모두 차서 벌써 대출을 잠그는 상황이라면 내년엔 한도가 더 빨리 소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위에서는 지속적으로 전세대출 규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고승범 위원장이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죠. 10월 초중순에 발표할 가계부채 대책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고로 고승범 위원장은 2005년 8·31 대책 당시 DTI를 설계해 도입을 주도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DSR이라는 상위 규제가 나왔죠.
그럼 전세대출이 얼마나 많은 수준이길래 정부에서 손을 대려 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 통계를 많이 보셨을 텐데요.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인 ECOS에 들어가면 이런 자료가 나옵니다. 그래프는 16개 예금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총량입니다. 올해 2분기 기준 702조원인데요. 이건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합친 수치입니다. 참고로 한국은행에선 전세대출 총량을 따로 공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따로 알아봤습니다. 위의 파란색 그래프는 주택담보대출 총액이고 아래의 빨간색 그래프는 전세대출 총액입니다. 주담대의 경우엔 늘어날 때도 있고 줄어들 때도 있습니다. 대출규제 직후엔 감소했었고요. 올해 2분기의 경우도 전기 대비 7000억 감소했습니다.
반대로 전세대출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전세대출은 올해 2분기에 전기 대비 7조원 증가했습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3배 정도 늘어난 수준입니다. 그동안 정책적으로 전세대출을 키운 부분도 있고요.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너무 좋은 제도였죠. 그러다 보니 대출 규모가 점점 커졌고, 정부에서도 가계부채에서 전세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졌다고 보고 있는 것이죠. 정부의 상황인식이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서민대출을 굳이 건드리려는 것일까요. 전세대출은 크게 보면 두 가지 갈래입니다. 우선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하는 정책대출이 있죠. 대표적인 게 버팀목대출입니다. 그리고 개별 은행에서 집행하는 대출이 있습니다. 통상 은행대출이 정책대출보다 한도도 높고 보증금 대비 대출 비율도 높습니다. 그래서 규제를 한다면 은행들의 자체적인 전세대출을 손볼 가능성이 높겠죠.
정부는 부동산시장에 공급되는 유동성의 상당부분을 전세대출이 담당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값 상승의 원흉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소득이 많지 않은 분이 전세대출을 일으켜 자산보다 비싼 전셋집에 들어간다고 치죠. 이때 레버리지를 활용해 갭투자를 하려는 분들 입장에선 실투자금이 낮아지는 것이죠. 세입자가 감당한 보증금 수준이 높아지니까요. 그래서 그동안 전세대출의 유동성을 경고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채상욱 애널리스트가 대표적이었죠. 이 같은 지적엔 저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빌라는 더 심합니다. 특히 신축빌라는 아예 무피투자 시장이 돼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신축빌라를 2억원에 분양받는다면, 계약만 걸어두고 세입자를 2억원에 맞추는 거죠. 집주인은 순식간에 원금을 회수하는 겁니다. 갭이 없어서 무피투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3분부동산 시리즈를 통해서 신축빌라 전세의 위험성을 경고해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세대출 규제는 가계부채대책이란 이름을 달고 나와도 사실상의 부동산대책이라고 봐야 합니다. 2017년 10·24 가계부채종합대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DSR과 RTI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었죠.
어떤 식으로 전세대출을 규제할까요. 지금까지 언급된 것을 정리하자면, 첫 번째는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시키는 겁니다. 안 그래도 DSR은 단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죠. 이 기간을 더 단축시키고 범위를 넓히는 과정에서 전세대출이 포함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전세대출을 갖고 있는 분이 다른 대출을 받을 때 한도가 줄어들고, 반대로 다른 대출을 갖고 계신 분이 전세대출을 받을 때도 한도가 감소합니다.
두 번째는 기관들의 보증금액을 축소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원래 전세대출을 주택금융공사 등의 보증이 필요하죠. 통상 90~100%인데요. 만약 주금공에서 보증 비율을 낮춘다면 그만큼 은행이 부담해야 합니다. 은행들이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려면 한도가 줄어들겠죠.
또 한 가지는 금리인상입니다. 고승범 위원장이 언급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우대금리를 낮추고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향, 여기에 기준금리까지 얹어지는 형태겠죠. 대출에 대한 저항감을 높이는 방향일 테고요. 참고로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2.11~3.46% 수준입니다. 평균적으로 2% 후반대에서 신규 대출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규제들이 처음 나오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 간접적으로 전세대출을 규제한 적은 있었습니다. 2018년 9·13 대책에서 처음 제한이 생겼고, 이후 2019년 12·16 대책, 2020년 6·17 대책을 거치면서 주택가격이나 주택수에 따라 보증 제한을 걸거나 대출을 회수하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다시 규제가 나온다면 직접적으로 한도를 관리하는 첫 규제가 될 수 있겠죠.
이렇게 하면 과연 집값이 잡힐까요? 방금 설명한 세 번의 규제가 전셋값이나 집값을 잡았었나요? 결과적으론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내년 8월 임대차법 개정 2년을 맞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 계약갱신을 거절한다면 세입자를 바꾸면서 보증금을 상한 없이 증액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변 전셋값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한 번에 올리는 폭이 클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세대출이 잠겨 있다면 집주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전셋값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드니까 가격을 낮출까요?
반전세로 가게 될 겁니다. 반전세화, 월세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집주인이 보증금을 증액했는데 세입자가 그만큼의 대출을 일으킬 수 없다면, 집주인은 증액한 보증금만큼을 월세로 돌리는 겁니다. 반전세가 되는 것이죠. 기존 전세보증금은 반전세보증금으로 승계되고 증액분이 월세가 되는 것입니다. 집주인 입장에선 손해보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대출규제와 가격의 문제는 지금 15억 초과 고가주택들이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없는 집들도 거래가 일어나면서 신고가를 기록하는 중이죠. 최근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가 42억에 거래되고 39억8000만원에 거래된 것도 레버리지가 없었죠.
그리고 이 통계는 지난해 주거실태조사 자료입니다. 주거사다리를 굉장히 잘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월세로 사는 분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월세보조와 전세로 옮겨갈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전세로 사는 분들에게 물었더니 전세자금과 자가로 옮겨갈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세대출 규제가 작동하면 월세입자들이 전세로 옮기는 것에 대한 지원과 전세입자들이 계속 전세로 머무는 것에 대한 지원이 끊기는 것이죠. 규제가 주거사다리를 깨버리는 방향성을 잡아버린 것입니다.
앞서 전세의 반전세화, 월세화에 대한 설명을 드렸는데요. 같은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조금 더 볼게요. 이번 장에선 전세로 살고 가는 분들은 월세로 옮기는 걸 굉장히 꺼리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통계에서 자가, 전세, 월세, 무상거주의 합을 100으로 봤을 때 40은 기존에 전세로 살다가 집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40중에서 절반이 넘는 24는 자가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3분의 1가량인 12는 여전히 전세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세에서 월세로 옮긴 분들은 3.8밖에 되지 않습니다. 원래 전세로 살던 사람들의 10%도 안 되는 분들만 월세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다운그레이드로 인식한다는 의미죠. 월세 전환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예전에 썼던 기사를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사실 전세대출이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전세라는 제도가 이런 상황의 원인이 된 거죠. 전세는 기본적으로 사금융의 성격을 갖고 있어요. 임대인의 부채로 인식되지도 않죠. 그래서 다양한 월세시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세대출을 받으면 월세보다 싼 이자를 냅니다. 사실상 은행이 내둔 싼 월세를 사는 셈이죠. 그런데 월세화가 진행되면 세입자들의 주거비부담이 높아집니다. 월세 임차인의 주거비부담은 월소득의 32.1%, 전세입자는 22%라는 통계를 기사에 썼는데요. 특히 30세 미만 청년층과 60세 이상 고령층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주거비부담이 증가합니다. 그래서 반전세나 월세화가 진행될 경우, 급여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지 못한 분들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세대출을 잠근다는 신호가 나오자 수요자들의 마음이 급해지고 있습니다. 줄을 서서 전세계약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대출이 막히기 전에 전세 물건부터 구한다는데요. 주담대 잠글 때와 똑같습니다. 대출규제가 발표되면 다음날 실행되기 전에 밤까지 중개업소에서 계약을 걸죠. 전세시장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단기적으로 전세수요자가 몰린다면 집주인 입장에선 '보증금을 올려칠 수 있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대출규제가 임박했기 때문에 내용을 짚어봤습니다. 10월 초중순 발표되는 대로 다시 실시간으로 짚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획 집코노미TV 총괄 조성근 디지털라이브부장
진행 전형진 기자 촬영 정준영 PD
제작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한경디지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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