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귀농은 경영..지자체 지원금부터 노려선 안돼"

박영래 기자 2021. 9. 25.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남 장성 '참자연 이파리농장' 이혁재 대표
10년여 만에 친환경 쌈채소로 억대부농 반열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전남 장성 '참자연 이파리 농장' 이혁재 대표./뉴스1 DB © News1 박영래 기자

(장성=뉴스1) 박영래 기자 =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인터뷰 요청이 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추석용 물건 납품도 마무리되면서 어느 정도 여유를 찾고 있을 시간이라 판단했다.

너무 바빠 인터뷰하기 힘들다는 전화 상대방에게 1시간의 양해를 구하고 장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농촌현장의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기자의 오판이란 건 금세 확인됐다.

추석연휴에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판매할 물건을 납품해야 하고, 연휴 뒤 개학하는 학교급식용 물량도 미리 준비해야하는 상황인 이곳에서 닷새간의 추석연휴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성공요인이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했죠"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18일 오후 찾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 입구의 '참자연 이파리 농장'. 명절 연휴가 시작됐지만 남면농협 로컬푸드직매장과 삼계농협 로컬푸드직매장에 납품할 깻잎 수확이 한창이었다.

농장주 이혁재씨(46)는 지난 2009년 고향인 이곳으로 귀농했고 10년을 넘어서면서 어엿한 억대부농의 반열에 오른 성공 귀농인이다.

귀농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첫 질문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과 광주에서 과일 도매상, 공산품 유통업, 홈인테리어 사업 등을 했던 그는 2009년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인 장성으로 눈을 돌렸다.

전남 장성에 자리한 참자연 이파리농장./뉴스1 DB © News1

다행히 고향에서는 동생이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었고, 1년여 동안 광주와 장성을 오가면서 동생의 도움을 받아 차분히 귀농을 준비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채소쌈을 좋아한다는 데 착안점을 두고 귀농업종을 '친환경 쌈채소'로 정했다.

그리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처음부터 무농약 기반의 친환경농법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기농퇴비를 활용하고 작물을 갉아먹는 해로운 벌레를 일일이 제거하면서 버텨나갔고, 다행히 친환경농법을 시작한 지 5개월여만에 무농약 인증도 받았다.

◇애써 키운 상추 비닐하우스 태풍에 휩쓸리기도

무난하게 출발은 했지만 친환경으로 키운 상추는 노력한 만큼 공판장 도매를 통해서는 별다른 수익을 올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공판장에 내놓는다는 게 유통비로 다 나가고 내가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별로 안됐다."

유통경로를 고민하던 그는 공판장 중심에서 광주지역 대형식당 중심으로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어느 정도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당거래에도 맹점은 있었다. 물품공급 계약만 한 상황이라 식당들은 물건값이 싸면 시장에서 사다 쓰고, 비싸면 이 대표한테 달라고 하는 주먹구구식 운영에 이 역시 안정적인 판매처는 되지 못했다.

개선책으로 식당과 수량계약을 하고 납품을 했는데 이제는 자연재해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으로 상추 비닐하우스는 완전히 물에 잠겼고, 결국 식당과의 납품계약을 지키기 위해 가격이 오를대로 오른 상추를 시장에서 구입해 납품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농사 1년째 됐을 때 태풍에 모든 게 무너지면서 농장을 닫아야 하나 와이프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여러 고난을 헤쳐나간 이들 부부는 주요 거래처였던 식당을 정리한 대신 6년전부터는 학교급식을 시작해 전체 생산물량의 90%가량을 납품하고 있다.

장성 참자연 이파리농장에서 깻잎을 수확하는 이혁재 대표./뉴스1 DB © News1

코로나19 발생으로 작년에는 1년 동안 학교급식도 고전을 했지만 후반기에는 공판장 시세가 오히려 좋아 현상유지는 했다. 올해는 초중고가 정상개교하면서 매출을 이끌고 있다.

현재 농장은 200평 기준 비닐하우스 24개동 규모로 상추, 깻잎을 비롯해 케일, 비트 등 특수채소 10여가지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농장의 연매출은 3억원을 기록했다.

◇세 아들도 아버지 뜻 동참 4부자가 농사일

이혁재 대표의 이같은 성공의 이면에는 아버지의 농사철학에 반한 세 아들이 큰 힘이 됐다. 삼형제는 나란히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농사일 동참을 선언,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현재 참자연 이파리 농장은 이혁재 대표와 큰아들인 호엽씨(24)가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아버지가 비닐하우스 14개동, 아들이 10개동을 책임지고 운영 중이다.

둘째인 민엽씨(22)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 중이며, 제대후 아버지, 형과 함께 일할 예정이다. 막내인 진엽씨(19)는 현재 한국농수산대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다.

"제가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단지 아빠는 이렇게 하고 있고, 이렇게 할 것이다고만 말했는데 나름 아이들이 아버지의 비전을 봤는지 모두 농업대학에 들어갔다."

아들들의 후원에 힘입어 2년 후에는 단지를 1800평 정도 더 늘릴 예정이고 기후변화에 따른 작물 전환도 연구 중이다.

참자연 이파리농장은 친환경농법을 고수하면서 곳곳에서 개구리 등을 쉽게 볼 수 있다./뉴스1 DB © News1

아열대기후로 바뀌는 상황에서 전남지역에서 쌈채소 재배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열대작물을 친환경으로 재배해보려는 구상을 세웠다.

"기후가 계속 더워지면 쌈채소를 못하는 환경이 될 것이고 그 전에 준비를 해놔야 실패를 안 할 것이다."

◇"선도농가 찾아가 4계절 경험해봐야"

이 대표는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섣부른 귀농 결정을 경계하라는 게 그의 첫 당부였다.

"섣불리 결정하려 말고 최소한 1년 정도는 경험을 쌓은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 저도 농촌으로 들어오기 전에 6개월을 고민했다."

귀농을 준비 중이라면 1년 정도는 자신이 하고싶은 작물의 선도농가를 찾아가 4계절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귀농을 최종 결정했다면 최소한 '10년 플랜'은 짜가지고 들어와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대신 처음부터 너무 큰 그림을 그리고 귀농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각종 귀농 지원금을 멀리하라는 점을 거듭 당부했다.

"많게는 수억원의 자금 지원을 받아서 사업을 크게 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분들이 많은데 처음에 많은 지원금을 받으면 매년 그 돈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어진다. 귀농도 사업이고 경영을 잘해야 한다. 때문에 최소한의 귀농자금은 준비해서 들어가야 안착할 수 있다."

성공 귀농인 이혁재 대표는 '귀거래사' 원칙을 이렇게 말했다.

"농사를 쉽게 생각해선 절대 안된다. 뼈를 묻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와야만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

yr200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